괴담 : 두 번째 아이는 사라진다 문학동네 청소년 13
방미진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연못 위에서 형제가 사진을 찍으면 둘째가 사라진다.

 

― 연못 위에서 일등과 이등이 사진을 찍으면 이등이 사라진다.

 

― 연못 위에서 첫번째 아이와 두번째 아이가 사진이 찍히면 두번째 아이가 사라진다.  (40쪽)

 

 

이 세상에 가장 잘 알려진 두번째 사람은 모차르트를 샘하여 미워한 살리에리다. 살리에리도 나름대로 잘했을 텐데 모차르트 때문에 자신이 첫번째가 되지 못해서 괴로워했다. 아니, 첫번째가 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던가. 그것보다는 살리에리도 모차르트와 같은 천재가 되고 싶었던 것일지도. 살리에리는 어느 누구보다 모차르트를 인정했고 자신이 모차르트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살리에리는 차라리 모차르트가 이 세상에서 사라지기를 바랐다. 그러면 더는 괴로워하지 않아도 되니까. 모차르트가 힘들었던 때 살리에리는 모차르트한테 곡을 만들게 했다. 이것은 영화에서 본 것인데 실제로는 어땠을지. 모차르트가 그 곡을 끝냈는지 어쨌는지 잘 모르겠다. 그 곡을 쓰고 죽었던 것 같다. 그것은 진혼곡(레퀴엠)이었다. 천재라 해도 자기관리를 제대로 못하면 그렇게 되고 마는 것이다. 살리에리가 품은 나쁜 마음도 조금 영향을 미쳤을 테지만. 몸이 아픈 모차르트가 말해주는 것을 살리에리가 받아적었던 것 같기도 한데. 모차르트가 죽고 나서 살리에리는 좋았을까. 어쩐지 그 반대였을 것 같다. 모차르트는 살리에리한테 경쟁 상대였다. 모차르트는 살리에리를 어떻게 생각했을지 모르겠지만. 경쟁할 상대가 없어지면 재미없지 않을까. 살리에리는 모차르트가 죽어서 모든 게 덧없게 느껴졌을 것 같다. 자신을 불태웠던 감정이 사라졌을 테니까. 그것을 바랐던 것일까.

 

많은 사람이 생각하고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고 하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는 일등한테만 빛을 비춘다. 그 보기를 가장 잘 볼 수 있는 것은 바로 네 해마다 열리는 올림픽이다. 세계운동회. 선수들은 올림픽에 나가기 위해 무척 애쓴다. 아마 거의 하루종일 운동과 그것만 생각하지 않을까. 거기에 나갈 수 있는 사람은 아주 조금이고 이것은 어느 나라나 같을 것이다. 사실 올림픽에 나가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일이다. 올림픽에 나갔으니 선수가 메달을 따고 싶어하고 따기를 바라는 것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메달 소식은 우리나라에도 알려진다. 방송에서는 금메달을 딴 사람을 더 잘 보여준다. 어쩌다 처음으로 메달을 딴 종목이면 은메달이든 동메달이든 상관하지 않지만. 솔직히 말하면 나도 우리나라 선수가 금메달을 따면 더 좋기는 하다. 그러나 은메달도 동메달도 모두 값지다. 올림픽 같은 큰 경기에서 우리나라 사람이 메달을 따는 것은 대단한 일 아닐까. 메달 색깔과는 상관없이 말이다. 보기만 하는 우리가 그렇게 생각해야 하지만 선수 자신도 그래야 한다. 메달을 따건 따지 못하건 올림픽에 나간 것 자체를 자랑스럽게 여기면 좋겠다.

 

내가 아는 괴담은 별로 없다. 들은 적이 아주 없지는 않겠지만 지금 바로 생각나는 것은 없다. 이 책을 보다보니 아야츠지 유키토의 《어나더》가 떠올랐다. ‘어나더’는 한 마을에 일어나는 일이어서 더 섬뜩하기는 하다. 그 책을 보고 그런 일이 실제로는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기도 했다. <지옥소녀>도 생각났다. 누군가 때문에 괴로워하는 사람은 ‘지옥소녀’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리고 그 사람은 0시가 다 되어갈 때 인터넷에서 지옥소녀 사이트를 찾는다. 0시가 되면 그곳에 접속한다(거기에는 0시에만 접속할 수 있다). 진심 반 호기심 반으로 찾아보고 그곳이 나오면 지옥에 보내고 싶은 사람 이름을 적는다. 잠시 망설이는 사람도 있지만 결국에는 지옥에 보내기로 한다. 거의 누군가한테 괴롭힘을 당하다 참을 수 없어서 그곳을 찾았다. 어쩐지 그 안에는 두번째 사람도 있었을 것 같다. 자신이 첫번째가 되기 위해서. 여기에는 그런 사람이 나온다. 자기보다 더 나은 사람을 샘하고 미워해서 사라지기를 바라는 사람 말이다. 청소년 소설인데 이렇게 어둡다니(생각해보니 어두운 게 이것만 있는 것은 아니구나). 제목부터 ‘괴담’이니 이것은 어쩔 수 없는지도 모르겠다. 이 소설은 사람 마음속 깊은 곳을 비추고 있다.

 

어떤 이야기에는 착한 사람만 잔뜩 나오기도 하는데, 여기에 나오는 사람은 반대다. 그렇다고 나쁜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고 보니 착한 사람만 나온 이야기에서는 서로를 인정해주고 서로가 잘되기를 바랐다. 여기에서는 왜 자신이 더 사랑받지 못하고 가진 것이 없는가 생각했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게 학생만은 아니었다. 엄마는 자기 아이가 다른 아이들보다 더 잘해야 했다. 그렇게 되게 하기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어떤 선생님은 학생을 샘하고 미워했다.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가졌기 때문에. 그 아이를 괴롭히기 위해 다른 아이들을 끌어들였다. 책을 보고 실제로 이런 사람들이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첫번째, 두번째는 되어본 적이 한번도 없다. 누군가를 샘하고 미워하는 것도 상대가 있어야 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그렇다고 그런 마음을 가져본 적이 한번도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그저 그런 마음이 오래 가지 않을 뿐이다. 나 자신이 더 괴로우니까. 그리고 이렇게 생각한다. 내가 더 모자라잖아. 조금 슬픈가.

 

서로가 가진 것을 더 끌어올리기 위한 경쟁은 좋은 것이다. 하지만 상대가 사라지면 자신이 첫번째가 될 텐데 하는 생각은 잘못되었다. 사람은 다 다르고 가지고 있는 것도 다른데 왜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부러워하는 걸까. 이런 말을 하는 나도 그러기는 한다. 아주 부질없는 일인데, 그것을 더 빨리 알게 된다면 좋겠지만 어려운 일이다. 안다 해도 다른 사람을 부러워하는 마음은 쉽게 사라지지 않기도 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다른 사람이 가진 것을 인정해주고 자신이 가진 것을 찾아서 갈고 닦아야 한다. 사회가 바뀌어야 한다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이 첫번째가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사회도 그렇게 바뀌지 않을까. 자기보다 더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사라지면 그걸로 끝일까. 그렇지 않다. 상대는 끊임없이 나타난다. 다른 사람을 샘하고 미워할 게 아니고 좋은 경쟁을 하는 게 더 좋지 않을까.

 

 

두번째 아이가 사라진다.

 

거짓말.

 

애초부터 모든 게 추측에 불과했다. 프리즘처럼 던져진 한 문장의 괴담이 있었을 뿐.

 

늘 사라지는 건 두번째 아이. 남는 건 첫번째 아이. 지연은 언제나 남았다. 하지만 지연은 한번도 첫번째 아이가 될 수 없었다. 두번째 아이가 눈앞에서 사라져 가는 그 순간조차도 지연은 자신이 첫번째 아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없었다. 그래서 언제나 두번째 아이였다.

 

― 두번째 아이가 사라진다.

 

어쩌면 이 괴담 자체가 위험할 정도로 끝이 없는 거짓말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모두 두번째 아이니까. 사라지는 것도 남는 것도 모두 두번째 아이.

 

남은 우리 역시 언젠가는 사라질지도 모른다. 지금 남아있는 건 그저 먹잇감을 끌어오는 미끼 노릇이 남아있어서일 뿐.  (238쪽)

 

 

 

희선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가연 2014-01-03 2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위의 세 문장이 정말 섬찟하네요...

희선 2014-01-05 23:13   좋아요 0 | URL
어떤 것 무생물 이런 이야기도 그런 것에 가깝잖아요 시간이 흐르면 그 이야기 자체에 어떤 힘이 생기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절로 움직여서 그런 말이 필요한 사람한테 나타나는 거예요 그렇구나 하고 덥석 물어버리면 안 될 듯합니다^^

도박을 하는 사람의 마음을 먹고 사는 바쿠치간이 생각나기도 하는군요


희선
 
비트겐슈타인 평전 - 천재의 의무 Meaning of Life 시리즈 8
레이 몽크 지음, 남기창 옮김 / 필로소픽 / 2012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처음 뵙겠습니다, 비트겐슈타인 님. 저세상에서 비트겐슈타인 님은 잘 지내고 있습니까. 저는 아시아의 작은 나라 한국에서 살고 있는 사람입니다. 제가 ‘비트겐슈타인’이라는 이름을 알게 된 게 언제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철학자라는 것도요. 언젠가 우연히 알았던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그 뒤로도 그냥 이름만 알고 있었습니다. 예전에 한국에는 ‘비트겐슈타인’이라는 밴드가 있었습니다. 어쩌면 그때 제가 이름을 기억한 것인지도 모르겠군요. 음악은 어땠더라, 안 들은 지 오래돼서 거의 잊어버렸습니다. 그래도 그거 재미있지 않나요. 밴드 이름이 ‘비트겐슈타인’이라는 것. 아마 그 밴드를 만든 사람이 비트겐슈타인 님을 좋아했을 거예요. 저는 지금까지 철학과 관계있는 책은 거의 안 봤는데, 제가 철학에 관심을 가졌던 것은 중학생 때예요. 그저 관심만 갖고 어떻게 알 수 있는지는 몰랐습니다. 학교 다닐 때 윤리 시간에 철학자에 대해 배웠던 것 같습니다. 철학을 깊이 배운 게 아니고 아주 조금이었습니다. 그때 배운 것은 거의 잊어버렸습니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제가 아는 이름이라곤 이 정도뿐입니다(나중에 더 생각났지만). 비트겐슈타인 님 평전을 보다보니 괴테가 문학뿐 아니라 철학도 했나 했습니다. 제가 너무 모르고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괴테와 니체를 함께 떠올렸던 것 같습니다.

 

처음 생각한 것보다 오래 걸려서 비트겐슈타인 님 평전을 읽었습니다. 어쨌든 끝까지 읽었지만 다 알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제가 올해 읽다 만 책이 몇 권 있는데, 비트겐슈타인 님 평전은 보다가 그만두지 않았습니다. 이것만으로도 기뻐해주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조금 부끄러울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르는 사람이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읽어서. 비트겐슈타인 님은 자신의 평전이 나온다는 것을 알았을 때 기분이 어땠나요. 사실과 다르게 쓰는 것은 없을까 하는 걱정은 되지 않던가요. 비트겐슈타인 님은 세상에 이름을 남긴 사람이니 평전이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평범한 사람한테 관심 갖는 사람은 거의 없으니까요. 아니, 식구들은 오래 생각하겠습니다. 두달전에 저는 ‘카프카 평전(이주동)’을 보았습니다. 카프카 소설을 읽어본 적도 없었는데 말이에요. 한국사람이 써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재미있었습니다. 그래서 비트겐슈타인 님 평전도 한번 볼까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보기 시작했는데 ‘카프카 평전’과는 아주 다르더군요. 카프카 평전을 보면서도 생각했던 게 있는데 그게 맞았습니다. 카프카가 조금 일찍 세상에 나왔지만 비트겐슈타인 님과 같은 시대를 살았다는 거예요. 그때 살았던 사람 가운데 이름이 알려진 사람이 많이 있군요. 그렇게 중요한 일은 아니지만 비트겐슈타인 님한테도 유대인 피가 흐른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그저 독일 사람이겠지 생각했거든요. 제2차 세계전쟁 때 비트겐슈타인 님은 어떻게 했을까 하는 걱정도 했습니다. 그것보다 전쟁에 나갔을 때를 더 걱정해야 했는데 말입니다.

 

비트겐슈타인 님은 어렸을 때부터 철학을 하였더군요. 그때는 자신이 철학을 한다는 생각을 못했을 것 같습니다. 여덟아홉 살 아이는 그저 밖에서 노는 데 마음이 더 갈 텐데. 형제들도 아주 많은 집안의 막내였지요. 그러면 더 철이 없을 것 같은데 비트겐슈타인 님은 그러지 않았군요. 집안 분위기가 비트겐슈타인 님을 그렇게 만든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아니, 다른 형제들은 음악에 더 관심을 가졌던가요. 그게 비트겐슈타인 님한테 어떤 영향을 미쳤을 테지요. 공학을 공부하다 철학을 하게 된 것은 버트런드 러셀을 만나서였지요. 러셀은 비트겐슈타인 님을 천재라고 말해주었습니다. 그 말을 들은 비트겐슈타인 님은 아홉해 동안 해온 죽고 싶다는 생각에서 벗어났습니다. 하지만 나중에도 그런 생각을 아주 안 한 것은 아니군요. 책을 내지 못하고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잖아요. 그때 저는 에드거 앨런 포가 떠올랐습니다. 포는 자신이 일찍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장편보다는 단편을 더 많이 썼다고 합니다. 포를 많이 아는 것은 아니고 우연히 라디오에서 들은 거예요. 비트겐슈타인 님이 케임브리지에 다닐 때 사귄 친구 핀센트와 함께 어디에 간 이야기는 재미있었습니다. 비트겐슈타인 님은 핀센트와 있을 때 편했겠지만 핀센트는 조금 달랐다고 하더군요. 누구보다 친했던 친구가 먼저 죽어서 마음이 아팠겠습니다. 전쟁이 끝나면 다시 만나서 어딘가에 함께 가자고 했잖아요.

 

전쟁이 끝나고 비트겐슈타인 님은 많이 달라졌다면서요. 전쟁에 나간 게 자신이 바뀌기를 바라서였군요. 전쟁터에서 글을 쓰고 그 글들로 책을 내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지요. 그 뒤에 비트겐슈타인 님은 초등학교 아이들을 가르치게 되었지요. 저는 수학을 잘 못했습니다. 제가 수학문제를 푼 것은 중학교 3학년 때까지였던 것 같아요. 고등학교 1학년 때도 조금 풀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저도 나름대로 공부한다고 했는데 잘 안 되더군요. 며칠전에는 수학시간에 앞에 나가서 문제를 풀어야 하는 꿈을 꾸기도 했습니다. 재미있는 일입니다. 제가 그 꿈을 언제 꾸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그 꿈을 꾸고 나서 비트겐슈타인 님 평전을 보게 되었어요. 그런데 비트겐슈타인 님 학생들을 때렸다면서요. 좀더 부드럽게 아이들을 가르쳤다면 좋았을 텐데.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 맞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고 다시 철학을 하기로 해서 다행입니다. 철학 연구를 할 때 비트겐슈타인 님은 마치 소설쓰기에 푹 빠진 작가처럼 보이기도 했어요. 대학에서 학생들한테 철학을 가르치고 연구해야 해서 힘들지 않았습니까. 누군가를 만나고 강의한 것이 책으로 묶이기도 하고 여러가지 일이 있었군요. 왜 비트겐슈타인 님이 쓴 글을 스스로 타이핑하지 않고 타자수한테 시킨 건가요. 이런 것을 물어봐도 대답을 들을 수는 없겠군요. 타자수가 타이핑한 것을 비트겐슈타인 님이 다시 읽어봤겠지요.

 

조금 신기한 일이 있더군요. 비트겐슈타인 님이 미스터리 소설을 즐겨읽은 겁니다. 어쩌면 미스터리가 논리학과 관계가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그런 것은 거의 생각 안 하고 책을 보기도 하거든요. 비트겐슈타인 님은 자신을 좋게 바꾸는 게 세계를 바꿀 수 있는 단 하나의 방법이다고 했잖아요. 맞는 말입니다. ‘내가 바뀌니 세상이 바뀌었다.’는 말도 있으니까요. 비트겐슈타인 님이 저세상에 가기 전 두해는 친구와 제자들 집에서 살았군요. 마지막에 비트겐슈타인 님이 ‘멋진 삶을 살았다.’고 말하였는데, 그렇게 말할 수 있어서 좋았겠습니다. 그 말을 보고 저도 그런 말을 할 수 있게 살아야 할 텐데 했습니다. 비트겐슈타인 님이 쓴 글을 거의 못 봤고 앞으로도 볼 수 있을지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조금이라도 비트겐슈타인 님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보아서 좋았습니다. 비트겐슈타인 님 평전을 볼 동안은 기분이 조금 좋지 않았지만요. 그것을 비트겐슈타인 님 탓으로 돌리면 안 되겠지요. 저는 다 알기 어려웠지만 비트겐슈타인 님 평전이나 비트겐슈타인 님이 남긴 책을 보고 잘 알려고 하는 사람은 많습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마시고 편히 쉬십시오.

 

 

 

희선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3-12-20 17: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2-21 00: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일본편 2 - 아스카.나라 아스카 들판에 백제꽃이 피었습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3년 7월
평점 :
품절


 

 

저는 옛날에 우리나라 백제였던 곳에서 살고 있습니다. 백제 때 쓰던 지역 이름이 지금 얼마나 남아 있을까요. 저도 잘 모릅니다. 설마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니겠지요. 한때 일본은 우리나라가 쓰고 있던 것을 많이 바꾸어버렸습니다. 그게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는 것도 있고, 그런 것은 없애야 한다 하고 본래 이름을 되찾은 곳도 있을 겁니다. 대충만 알고 혼자 생각한 것을 이렇게 말하기까지 했습니다. 일제강점기는 우리나라 역사에서 부끄러운 때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한 그때 생긴 것을 없애려고 했을 것 같기도 하지만 정말 그랬을까요. 우리나라가 독립을 하고 다시 높은 자리에 앉은 사람 가운데 친일파도 많았다는 게 지금 떠올랐습니다. 일본 하면 이런 것을 생각 안 할 수가 없군요. 아무리 시간이 흐른다 해도 이 일은 지워지지 않을 거예요. 이것은 우리 피 안에 새겨져 있고 앞으로도 이어지겠지요. 하지만 이제는 마음을 열고 힘을 합쳐서 함께 세상을 살아가야 할 때입니다. 이런 말을 하니까 일본과 우리나라 사이가 아주 안 좋은 것 같기도 하군요. 그런 사람은 아주 많지 않을 거예요. 서로의 문화, 예술을 나누며 지내는 사람도 많잖아요. 이 책 일본말로도 나온다는군요.

 

우리나라 사람도 일본에 많이 가겠지요. 이 책을 보고 그곳에 가 보는 사람도 있을 것 같습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가는 것보다 조금 알고 가면 느낌이 많이 다르겠지요. 아스카는 나라현 다카이치군 아스카촌이라고 합니다. 지금은 ‘촌’으로 작아졌지만 먼 옛날에는 지금과 달랐다고 합니다. 이런 일은 그곳에만 있는 일이 아니기는 합니다. 어디에나 있는 일입니다. 5세기에는 가야에서 건너간 사람이 일본에 철과 말, 그리고 가야 도기를 전해주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가까운 아스카’에 자리를 잡았답니다. 6세기 신라가 삼국을 통일했을 때 백제에서 많은 사람이 왜로 건너갔다고 합니다. 가야도 백제도 살아갈 곳을 잃은 사람이 새로운 곳을 찾아나선 것으로 어떻게 보면 슬픈 일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억지로 끌려간 사람들보다는 나았겠습니다. 왜에 불교와 문자를 전해준 것은 백제 왕실입니다. 왜는 백제뿐 아니라 고구려 문화의 영향도 받았습니다. 나중에는 당나라 문화를 받아들이지요. 아스카라는 지명은 40곳이나 있고 오사카의 아스카를 ‘가까운 아스카’ 나라현의 아스카를 ‘먼 아스카’라고 했습니다. 아스카시대가 열린 곳은 ‘먼 아스카’입니다. 아스카는 우리나라 부여와 비슷하다고 합니다. 일본사람이 우리나라 부여에 와서는 아스카를 떠올렸다고 하더군요. 나라를 잃고 새로운 땅에 가서도 고향을 잊지 못해 고향과 닮은 땅을 백제 사람들은 찾아내서 살았던 거예요.

 

왜는 한반도에서 건너온 사람을 도래인이라고 했어요. 이 말도 역사책에는 ‘귀화인(천황의 덕을 흠모하여 귀순한 사람)’이라고 했다가 1975년 무렵부터 도래인으로 바꾸어 표기했다고 합니다. 아스카시대 때 도래인은 왜가 고대국가가 되도록 도움을 주었습니다. 우리나라도 그랬지만 정치를 하는 사람한테는 적이 많기도 하고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소가씨는 야마토 정권의 실권을 쥐고 있었고 도래인은 소가씨 편에 섰습니다. 그런데 ‘임신의 난’ 때 소가씨가 무너졌습니다. 도래인도 마찬가지였다는군요. 그렇다고 모두 죽지는 않았겠지요. 그 뒤에는 후지와라씨가 정권을 쥐게 됩니다. 어쩌다 보니 이번에는 이런 것을 쓰게 되었군요. 제가 잘 아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아스카 · 나라에서는 절, 불상을 많이 돌아본 듯한 느낌이 듭니다. 일본은 불교를 하나로만 받아들이지 않고 신도와 합친 신불습합이었습니다. 이름 있는 집안 소가씨와 후지와라씨는 자기들 집안 절을 짓기도 했습니다. 일본에 메이지유신이 들어섰을 때 불교와 신도를 나누는 신불 나누기 정책을 펴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절과 불상이 많이 없어졌다고 합니다. 후지와라씨 절인 흥복사는 아주 넓은 땅을 차지했는데 지금은 나라 공원 안에 들어간 모습이 되었다는군요. 모든 게 다 사라지지는 않아서 다행이 아닌가 싶습니다.

 

처음에는 다른 곳에서 들어온 것을 따라하기도 합니다. 그러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자기만의 것을 만들어냅니다. 일본 불교문화도 그러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아스카시대에는 도래인한테 영향을 받았지만 시대가 바뀌면서 당의 문화를 많이 받아들여 바뀌었습니다. 그게 불상에 드러난다고 합니다. 사진이 아닌 실제로 보면 다른 느낌이 들까요. 우리나라 절에도 거의 가 본 적이 없어서 절 모습이 어떤지 잘 모릅니다. 일본에서 문화유산도 볼 수 있지만 멋진 풍경도 볼 수 있습니다. 나라에는 요시노 사쿠라(벚꽃)가 잘 알려져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보는 벚꽃과는 조금 다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곳에 가는 길은 좁답니다. 그런 모습을 유홍준은 좋게 말했습니다. 우리나라는 산을 깎고 길을 넓히고, 문화유산과 가까운 곳에 차를 세우게 만들어서 그곳 모습이 안 좋아진다고요. 이 말은 맞는 말입니다. 우리나라는 오래 잘 지켜가기보다 낡고 오래되면 부수고 다시 만들려고 할 때가 더 많고, 길은 좁은 채 놔두지 않고 넓히지요. 그래서 옛날의 정감있는 모습이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이런 일은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아직 남아있는 것은 그대로 놔두면 좋겠습니다. 잘 아는 것도 아닌데 이런 말을 한 것 같기도 하군요. 아니, 제가 지금 살고 있는 곳만 해도 아주 많이 달라졌습니다. 빈 터를 그대로 두지 않고 무엇이든 짓더군요. 복잡하고 시끄러운 것을 제가 좋아하지 않아서 그래요. 예전에는 조용한 편이었는데.

 

일본에는 역사를 제대로 알고 전하려고 하는 학자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 많아지면 좋겠지요. 우리가 일본에만 무엇인가를 바라면 안 될 것 같아요. 우리도 일본을 알고 일본이 가진 좋은 점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첫번째를 보고도 한 말이군요). 다른 나라에 가면 박물관에도 가 봐야 합니다. 이렇게 말하지만 저는 그런 곳에 거의 가 본 적이 없습니다. 나라국립박물관에 갈 때는 어떤 특별전이 열리는지 알아보고 가랍니다. 정창원은 왕실 유물 창고로 우리나라에서 받은 것도 잘 가지고 있답니다. 덴리도서관에는 안견이 그린 <몽유도원도>가 있다는군요. 일본에는 우리나라 보물이 많이 흘러가기는 했지요. 빼앗긴 것도 많고 누군가 몰래 팔아버린 것도 있겠지요. 이런 문제는 어떻게 해야 할지. 앞으로 잘 풀어가기를 바랍니다. 일본 속에 있는 우리문화를 찾아보는 일은 멋진 일입니다. 이것은 일본 사람도 잘 모르고 우리나라 사람도 잘 모르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책은 일본뿐 아니라 우리 자신도 알 수 있는 기회가 될 거예요. 많은 사람이 보기를 바랍니다.

 

 

 

*미처하지못한말

 

제가 어디에 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가끔은 어딘가에 가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오래전에 처음 간 곳에서 저는 어떤 곳에 가야 했습니다. 처음으로 간 곳이어서 길은 하나도 몰랐습니다. 그런 때는 그곳에 사는 사람한테 물어보면 될 텐데, 제가 그런 거 잘 못합니다. 그때 시간이 많아서 저는 표지판을 보고 그곳을 찾아갔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제가 그렇게 한 게 한두번이 아니군요. 얼마나 말하는 게 어려우면 그럴까 하겠습니다(조금 귀찮기도). 네, 저는 모르는 사람한테 말 거의 못합니다. 무엇이든 할 수 있으면 제 힘으로 다 하려고 합니다. 반대로 모르는 사람은 가끔 저한테 길을 물어봅니다. 저한테 물어본 곳을 알고 있으면 잘 가르쳐주는데 모르면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다른 나라는 잘 모르겠고 가까운 일본에는 한번 가 보고 싶기도 하네요. 이 책에 나온 아스카 · 나라뿐 아니라 일본 속 우리문화유산을 볼 수 있는 곳이라면 말입니다. 잠시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말을 꼭 넣는군요.

 

 

 

희선

 

 

 

 

☆―

 

일본사람들은 불교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토착신앙 속에 녹여냈다. 그래서 쇼토쿠 태자는 신으로 격상됨과 동시에 부처님과 동격으로 숭배되었던 것이다. 일본사람들은 이런 결합을 단순히 복합 · 화합  · 융합이 아니라 습합(習合)이라고 했다. 곧 신불(神佛)습합이다. 삶 속에서 익히면서[習] 신도와 불교가 자연스럽게 저절로 합쳐진[合] 것이었다. 일본은 이런 습합의 귀재다.  (101쪽)

 

 

나는 순간 이것(월광보살과 일광보살)이 일본 나라시대 불상이라는 사실을 잊었다. 가슴속으로 한껏 이 두 보살상을 예찬했다. 우리와 일본의 미묘하고도 불편한 관계를 생각하면 나는 감정을 자제해야 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 감정의 정직성에 따르건데 그렇게 되지 않았다. 독일사람들이 미켈란젤로에 감동하고, 이탈리아사람들이 독일의 뒤러에 감동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또 일본 미술사가들이 우리 석굴암에 끝없는 찬사를 보내듯이 내가 이 두 불상 조각을 예찬하는 것이 하등 이상할 것이 없지 않은가.

 

위대한 예술은 이렇게 시공을 넘고 국적을 뛰어넘어 인류 보편의 가치로 다가오며 우리를 하나로 묶어낸다. 그렇다면 예술이야말로 과거사를 낫게 하는 가장 좋은 약재(藥材)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73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일본편 1 - 규슈 빛은 한반도로부터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3년 7월
평점 :
품절


 

 

유홍준이 우리 문화유산을 답사하고 쓴 글이 책으로 처음 나온 게 20년 전이라는 말이 있어서 조금 놀랐다. 그렇게 오래되었나 해서. 내가 첫번째 책을 본 것은 20년 전은 아니다. 처음 알게 된 게 확실하게 언제인지 잘 모르겠다. 내가 ‘문화유산답사기’를 알게 된 것은 책이 나오고 시간이 지난 뒤였던가 보다. 그때 여러 권이 나와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지난해 제주도를 보고 사진이 컬러가 되었다는 생각은 했다. 20년 전에도 컬러 사진이 있었던 것 같은데 책에는 흑백으로 실었다. 그동안 책 만드는 환경, 기술이 많이 좋아져서 바뀌어온 게 아닐까 싶다. 이 책에 언제부터 컬러 사진을 실었을까. 시간이 흐르는 것과 함께 우리뿐 아니라 우리 둘레에 있는 것은 모두 바뀌어간다. 그 안에서 바뀌지 않고 늘 그곳에서 우리한테 역사와 문화를 가르쳐주고 우리가 가야할 길까지 보여주는 게 있다. 그것은 바로 문화유산이다. 어쩌면 유홍준은 빠르게 바뀌어가는 세상속에서 바뀌지 않고 언제나 그곳에 있는 것을 찾아낸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것은 그저 내 생각일 뿐이다. 유홍준은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저 미술을 공부하고(동양철학도 공부했다) 우리 문화유산을 찾아다니다 사람들이 그것을 많이 알고 소중하게 여기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주제로 글을 써온 게 아닐까. 이 말은 좁게 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문화유산을 소중하게 여기기만 하면 안 된다. 잘 지켜가야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그 안에서 배우고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도 생각해야 한다.

 

어디 멀리에 떠나는 일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다른 곳에 가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은데 세상에는 나같은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과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사람을 위해 책이 나온다. 유홍준의 문화유산답사기는 놀러가는 것과는 조금 다를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문화유산 하면 조금 딱딱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그것에 대한 이야기만 하지는 않는다. 여기에는 자연과 사람 이야기도 있다. 역사도 빼놓을 수 없다. 문화유산답사는 공부를 하는 느낌이 들지도 모르겠다. 따로 시험을 보는 것은 아니니 잠시 공부해보는 거 좋지 않을까. 뜻밖에 재미있을지도 모른다. 책을 들고 실제로 그곳에 찾아가면 훨씬 좋겠지만 책으로나마 역사와 문화를 아는 것도 좋다. 유홍준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일본, 중국에도 다니면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우리나라를 다 끝내고서 그것을 내려고 했는데 올해 들어 우리나라와 일본 사이가 안 좋아지는 것을 보고 일본편을 앞당겨서 펴냈다. 지금까지 나온 문화유산답사기와는 다르게 책 겉이 눈에 띈다. 먼저 두권이 나왔는데 앞으로 몇권이나 더 나올까. 일본 속 한국문화를 찾아가는 답삿길은 네 갈래로 나뉜다고 한다. 오사카 · 아스카 · 나라 · 교토의 긴키 지방, 도쿄를 중심으로 한 간토 지방, 우리가 대마도라고 하는 쓰시마, 그리고 규슈다. 가장 처음 나오는 곳은 규슈 지방이다.

 

일본은 섬나라로 혼슈, 홋카이도, 규슈, 시코쿠와 같은 큰 섬 4개와 작은 섬 약 7천개로 이루어져 있다. 섬나라라는 것을 다르게 생각했던 것 같다. 내가 일본이 우리나라보다 크다는 것을 안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지도를 자주 보는 편이 아니어서 말이다. 일본말을 조금 알게 되고 지도를 찾아봤다. 그때도 그저 길기만 하다고 생각했다. 큰 섬 네개가 모여 있다는 것은 이 책을 보고 알았다. 혼슈, 홋카이도, 규슈, 시코쿠라는 말은 들었는데 그게 어떻게 그렇게 된 것인지 몰랐다. 가까이에 있는 사람을 잘 모르는 것처럼 가까이에 있는 나라를 잘 모르고 있었다. 아주 오래전 빙하기 때는 지구에 있는 모든 땅이 이어져 있었을지도 모른다. 빙하기가 끝날 때 땅이 떨어져서 섬이 된 곳이 많을 것이다. 일본도 그렇게 넓은 땅과 떨어져 섬나라가 되었다. 그곳과 가장 가까이에 있는 곳은 바로 한반도다. 저기 멀리에 있는 터키를 우리는 형제 나라라고도 하는데, 가까이에 있는 일본은 원수처럼 여긴다. 사실 이것은 일본도 마찬가지다. 모든 사람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우리 마음 깊은 곳에는 그런 마음이 뿌리내리고 있지 않을까. 우리나라와 일본은 왜 그렇게 되었을까. 가까운 곳에 살고 같은 동아시아 사람으로 좀더 잘 지낼 수도 있었을 텐데, 앞으로 좋아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서로가 서로를 인정해준다면 말이다. 벌써부터 그렇게 하고 있는 사람도 많이 있다. 일본이 역사를 사실과 다르게 꼬고 있다고 하는데 우리는 그런 일이 없을까. 남의 잘못만 볼 게 아니고 우리 자신도 잘 들여다보아야 한다.

 

역사 시간에 들었는지, 책에서 본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아주 옛날에 우리나라 사람이 일본에 갔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 뒤 조선시대에 일어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는 도공이 많이 끌려갔다. 그리고 일제강점기 때도. 처음 일본에 간 사람들은 한반도에서 삶의 터전을 잃고 새로운 땅을 찾아나선 것이다. 일본에 간 사람들은 청동기문명과 벼농사를 일본에 전해주었다. 이것을 일본 역사책에서 ‘한반도를 거쳐서’들어왔다는 식으로 쓰고 있다고 한다. 중국 것이 한반도를 거쳐서 일본으로 갔다는 뜻이다. 2002년에 ‘건너왔다’가 ‘전해졌다’로 바뀌었다고 한다. 4세기에서 6세기까지는 고구려 · 백제 · 신라 삼국시대가 아닌 가야 · 왜까지 오국시대였다고 할 수 있다고 한다. 이렇게 보는 거 재미있는 생각이 아닌가 싶다. 백제 무령왕은 일본에서 태어났고 백제와 왜는 친하게 지냈다. 왜는 가야에서 철기문화를 받아들였다. 우리나라가 일본과 사이가 멀어진 것은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뒤였다. 이때 백제 사람들이 일본으로 많이 떠났다. 지금 일본 사람 DNA에는 오래전 한반도 사람의 DNA가 들어있다. 일본은 이 일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우리나라 사람이라고 모두 한민족이라고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오래전부터 ‘한민족’이라는 말을 하는데 이제는 이 말에서 벗어나야 하지 않을까. 같은 나라 사람으로 느끼는 자랑스러움은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도 부끄러운 일은 많이 있다. 그런 일을 잘 보고 고쳐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일본에서는 한반도에서 그곳에 간 사람을 도래인이라고 했다. 도래인이 그곳에서 발전시킨 것은 한국문화가 아닌 일본문화다. 이것은 우리가 새겨두어야 하는 일이다.

 

일본 센고쿠시대 때는 다문화가 널리 퍼졌다. 차를 마시는 모임이기도 하고 음모를 꾸미기도 하는 자리였다. 마지막에는 모임을 연 사람이 그곳에 있는 사람한테 다기를 보여주었다. 거의 ‘나는 이런 것도 가지고 있어’하는 자랑하는 자리였다. 그때 일본에는 도기가 거의 없었다. 그것을 만들 기술이 없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조선에서 들여온 도기는 아주 비싸게 팔렸다. 조선에서는 서민이 쓰는 막사발인데 일본 사람은 그것을 아주 좋아했다. 센고쿠를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조선을 지나 중국, 인도까지 갖고 싶어했다. 먼저 조선에 쳐들어왔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은 도자기 전쟁이라고도 한다. 이때 우리나라 지방에 살던 도공이 아주 많이 일본으로 끌려갔다. 그 안에는 요새 드라마로 하고 있는 백파선도 있었다(드라마 끝났을까). 유홍준은 일본은 생활 도자문화가 아주 발달했는데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은 일을 아쉬워했다. 그것은 조선시대가 그런 시대였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조선시대는 유교사회로 학문을 가장 첫째로 생각했다. 기술을 가진 사람은 평민보다 못한 대접을 받았다. 이 점은 정말 아쉬운 점이다.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지만 그런 생각이 아직도 우리 마음 깊은 곳에 있는 것 같으니까 말이다. 조선시대 도공은 억지로 일본으로 끌려갔다. 그곳에서 살아가는 게 힘들었겠지만 사람들은 도자기를 만들고 그게 지금까지 이어져왔다. 조선 도자기가 아닌 일본 도자기가 되었지만. 조선 도공 이삼평을 신으로 받들고 신사도 지었다. 일본에는 이런 문화가 있다. 무엇이든 신으로 모시고 받드는. 일본에 있는 많은 신사 가운데는 도래인 신사와 백제 왕 신사도 있다.

 

규슈 지방이라는 말을 하고 다른 것은 거의 쓰지 못했다. 한번만 보고 쓰니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가고시마가 예전에는 사쓰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이고 다카모리라는 이름도 들은 적 있다. 사카모토 료마에 대한 것은 아주 조금밖에 나오지 않았다. 삿초동맹을 맺게 한 사카모토 료마. 규슈 남부에 있는 남향촌 백제마을에서 12월에 하는 시와스마쓰리는 오랫동안 이어져온 것이지만, 서정창원이라는 전시관은 억지스럽다. 일본 역사에 대해 보다보니 하나 재미있는 것을 알았다. 그것은 만화 《원피스》에 일본 역사가 나오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벌써 알고 있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어인섬편을 볼 때 느꼈다. 그때 이상하게 일제강점기가 생각났다. 일본에는 바깥에 알려지지 않은 100년(한세기)이 있다고 한다. 원피스에도 ‘공백의 100년’이 나온다. 일본에서 기독교를 탄압했을 때는 예수를 믿는 사람을 찾기 위해 사람들이 자주 오가는 다리 위에 예수 초상화를 펴놓고 그것을 밟게 했다. 초상화를 밟지 않으면 예수를 믿는다고 여겼다. 이것과 비슷한 게 원피스에도 나온다. 어인섬에는 어인과 사람이 함께 살아가야 한다고 말한 오토히메 왕비가 있었다. 이런 모습을 안 좋게 여긴 어인이 있었다. 그 어인 호디 존스는 어인해적단이 되고 나중에 어인섬에 와서는 오토히메 왕비 초상화를 사람들한테 밟게 했다. 이것 말고도 더 있을지도 모르는데 내가 일본 역사를 잘 아는 게 아니어서. 내가 잘 모르는 것이지 오래전에 있었던 일을 조금 바꾸어서 쓰는 일이 많겠지.

 

우리나라와 일본은 함께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일본을, 일본은 한국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 덮어놓고 일본을 싫어하지 않는다면 좋겠다. 일본사람도 마찬가지다. 이 책이 일본에도 번역되어 나온다면 좋을 텐데 말이다(일본말로 나온다고 한다).

 

 

 

*그냥

 

우리나라에는 생활도자문화가 널리 퍼져 있지 않은 것을 안타깝게 여기는 것을 보고, 이런 생각을 했다. 흙을 써서 그릇을 만들면 그 흙도 언젠가는 다 사라질 텐데 하는. 그렇다고 플라스틱을 쓰는 것은 자연에도 사람 몸에도 좋지 않다. 한번 쓰고 버리는 것이 아닌 다시 쓸 수 있는 것을 쓰면 좋을 텐데. 흙으로 만든 그릇은 오래 갈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산을 깎아서 골프장을 만드는 것보다 좋은 흙으로 그릇을 빚는 게 더 나을 것 같다. 지금 도자기를 만드는 사람은 기술자일까 예술가일까. 기술자이면서 예술가일지도 모르겠다.

 

 

 

희선

 

 

 

 

☆―

 

제국주의자들이 벌인 전쟁놀음에서 희생당한 것은 거기 휘말린 백성들뿐이다. 그 억울함으로 말할 것 같으면 전쟁 중 징용으로 끌려간 한국사람들이 원폭에 죽음을 맞은 것보다 더한 것이 있겠는가. 그러나 이 원폭기념관에는 이들을 애도하는 말은 고사하고 이런 사실조차 밝혀놓은 기록을 찾을 수 없다. 일본사람들이 지난날 일에 대해 섬세하게 반성하지 않고 있음을 말해주는 한 단면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신들의 희생을 말하려면 자신들이 피해를 준 것에 대한 반성을 같이 해야 더 호소력이 있음을 아직 잘 모르는 것 같다.  (200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ビブリア古書堂の事件手帖―?子さんと奇妙な客人たち (文庫) ビブリア古書堂の事件手帖 (文庫) 1
미카미 엔 지음 / アスキ-·メディアワ-クス / 201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ビブリア古書堂の事件手帖  子さんと奇妙な客人たち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 시오리코 씨와 이상한 손님들)

 

 

 

만화를 두권 먼저 봤지만 소설 한권이 다 담겨 있지 않아서 뒷이야기가 알고 싶었다. 그것도 있고 책을 읽지 않고 그냥 놔두는 것도 책한테 미안해서 마음먹고 읽었다. 책을 사두고 한번도 안 본 것은 아니고 가끔 아무데나 펼쳐서 보기는 했다. 일본말로 쓰인 소설을 처음부터 차근차근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책이 우리나라에 나왔을 때 일본에서 나온 것으로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고 찾아봤을 때는 이 책이 보이지 않았다. 내가 잘못 찾아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두번째 책이 우리나라에 나왔을 때 다시 찾아보니 일본에서 나온 책도 보였다. 왜 처음에는 보이지 않았을까. 지금 생각해도 이상한 일이다. 만화는 다른 만화를 찾아봤을 때, 곧 두번째가 나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실은 하나, 아니 둘 더 있다. 뭐냐 하면 그때 ebs 라디오 방송 ‘화제의 베스트셀러’에서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을 읽었고(다는 아니고 중요한 부분만 읽어주었다, 지금은 조금 바뀌었다), 나는 그 주에 이 드라마를 보고 있었다. 가끔 그렇게 하나를 여러가지 방법으로 만나기도 한다. 그랬는데 지난번에는 ‘이 책에 대한 마음이 조금 식었다’는 말을 했다. 소설을 보기 시작했을 때는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다. 벌써 알고 있는 것을 한번 더 본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재미있었다. 고우라와 시오리코 마음을 조금 더 알 수 있었으니까. 책장이 잘리지 않은 채 나오고 다자이 오사무가 쓴 글이 있는 《만년》 때문에 일어난 일에는 드라마에는 나오지 않은 이야기가 있었다. 드라마와 책은 조금 다르기는 하다. 반대로 드라마에도 책에 쓰여 있지 않은 부분이 나왔다.

 

이 책 작은 제목은 ‘시오리코 씨와 이상한 손님들’이다. 이 말처럼 비블리아 고서당을 찾아오는 손님들만 이상할까. 비블리아 고서당 주인인 시노카와 시오리코도 꽤 별난 사람이다. 그게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부럽다. 다른 말은 잘 못해도 책 이야기만은 눈을 빛내고 술술 하니 말이다. 그런 모습을 신기한 듯이 바라보는 고우라 다이스케. 고우라가 시오리코를 처음 본 것은 고등학생 때다. 단 한번 봤는데 잊지 않고 있었고 그때 시오리코한테 말을 건넸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하나 더, 지금도 책을 읽었다면 자기 삶이 지금과 달랐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소설에서는 현실과 다르게 뜻밖의 일이 더 잘 일어난다. 고우라가 고등학생일 때는 들어가보지 못하고 바깥에서만 엿보고 지나친 비블리아 고서당을 여섯해가 지나서 찾아가는 일이 생겼으니 말이다. 그리고 오래전에 잠깐 보고 마음을 빼앗긴 여성 시오리코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고우라는 시오리코가 그때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고 했다. 그때처럼 책을 볼 때면 아주 즐거워하는 모습이고 잘 불지 못하는 휘파람을 불었다.

 

책 이야기하기를 좋아하는 시오리코와 책 이야기 듣기를 좋아하는 고우라가 잘 만났다는 생각이 든다(작가의 설정이라 해도). 처음에는 고우라 외할머니가 남긴 책 때문에 두 사람이 만났지만. 다른 사람은 시오리코가 책 이야기를 하면 잘 들어주지 않았나보다(나도 다른 사람이 이야기해주는 거 좋아하는데 해주는 사람이 없다, 시오리코 씨 저한테도...). 시오리코는 책 내용뿐 아니라 그 책이 언제 나오고 어떤 배경이 있는지도 알고 있었다. 책 내용만 외우고 있기도 힘든데 말이다. 그러고 보니 시오리코는 이야기만 듣고 이야기속 사람한테 어떤 사정이 있는지도 바로 꿰뚫어보았다. 머리가 아주 좋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사람이 마음을 잘못 먹으면 아주 나쁜 사람이 될 수도 있다. 다행하게도 시오리코는 다른 무엇보다 책을 가장 좋아한다. 그러니 길을 잘못 들지는 않겠지. 시오리코가 잘못된 길로 가려 한다면 고우라가 막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그냥 그런 생각이 든다. 이 생각은 다자이 오사무의 《만년》을 갖고 싶어하는 사람을 보고 한 거다. 그 사람은 그 책만 있으면 다른 것은 필요없다고 했다. 그 책이 본래 할아버지 것이었다고 해도 엄청난 집착이다. 사람보다 책을 더 좋아하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이것은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이 세상에서 믿을 수 있는 것은 책뿐이다고. 이런 마음 알 것 같기도 하다.

 

책은 사람과는 다르게 자신이 보고 싶을 때 언제든지 만날 수 있다. 사람을 만나기 어려운 사람한테는 책이 아주 좋은 친구가 되어주기도 한다. 책은 거짓말도 하지 않고 서로 오해할 일도 없다. 하지만 책은 사람이 만들고 책속에는 사람 사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책과 사람은 따로따로 떼어서 생각할 수 없다고 본다. 이야기가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다. 사실 나는 이런 이야기하는 거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살아가는 게 아니기 때문에. 그래도 내가 소설을 보는 것은 사람을 알고 싶어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런저런 사람을 보고 기분이 좋을 때도 있지만 기분이 나쁠 때도 있다. 사람이 가장 무섭다는 것을 느끼기도 한다. 그래도 세상에는 좋은 사람이 많고 남을 깎아내리리려고 하는 사람은 적다고 믿고 싶다. 이런 생각보다 내가 괜찮은 사람이 되도록 애써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런 데 책이 아주 조금 도움을 주지 않을까 싶다. 책을 보면 많은 것을 알 수 있지만, 책으로는 알 수 없는 것도 있다. 그런 것은 어떻게 하면 알 수 있을까. 알고 싶어하는 마음을 잊지 않고 찾는다면 언젠가는 알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다 보니 다른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았다. 일부러 피했다. 전에 만화를 보고 나서 했기 때문이기는 하다. 다른 사람들 이야기도 괜찮고 시오리코와 고우라 이야기도 괜찮다. 두 사람 사이가 갑자기 달라지지는 않을 테지만 조금씩 가까워지는 것도 좋지 않을까. 고우라가 비블리아 고서당에서 일하게 된 뒤에 고우라는 시오리코를 만나러 병원에 가기가 어려웠다. 책 때문에 병원에 갈 일이 생기면 고우라는 좋아했다. 고우라가 비블리아 고서당 일을 그만뒀을 때는 시오리코가 책을 거의 안 봤다고 한다. 고우라는 다시 비블리아 고서당에서 일하기로 하는가보다. 시오리코라는 이름에는 책갈피라는 말이 들어있다. 일본말로 시오리는 책갈피라는 뜻이다. 오래된 책과 그 책을 둘러싼 사람이야기가 재미있다.

 

 

 

 

 

*그냥 짧은 이야기 - 소개

 

 

 

심심한 내가 읽어볼 만한 책 뭐 없을까 하고 물어본 말에 친구는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이 어떠냐고 했다.

 

“비블리아 고서당은 뭐하는 곳이고, 사건수첩이라니 무슨 큰일이라도 일어나는 거야?”

 

“헌책방이야. 그렇게 큰일은 아니고 오래된 책에 담겨 있는 수수께끼를 푸는 거야.”

 

“정말 재미있어?”

 

“사람에 따라 재미있게 느낄 수도 있고, 그저 그렇게 느낄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 이것은 어떤 책이나 마찬가지 아닐까.”

 

나는 그 책을 한번 읽어보기로 했다. 읽어보니 나쁘지 않았다. 지금까지 네권이나 나왔다고 하는데, 이제 겨우 한권밖에 읽지 못했다. 책을 읽으면서 나한테도 책과 관계있는 추억이 생긴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니, 어쩌면 벌써 나한테도 추억이 생긴 것인지도 모르겠다. 친구가 말해줘서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을 읽었으니 말이다. 이 책에 나온 이야기와는 조금 다르지만.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5권이 2014년 1월에 나온다고 한다, 다음이 나온다니...)

 

 

 

희선

 

 

 


댓글(2)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가연 2013-12-01 2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왓.. 부럽군요. 책은 언제나 보고 싶을 때 볼 수 있다는 말이 정말...

희선 2013-12-02 00:57   좋아요 0 | URL
그래도 다른 것보다 책은 언제든 자기가 보고 싶을 때 볼 수 있잖아요 시간이 없어서 보기 어려울 수도 있지만, 아주 잠시라도 시간은 낼 수 있는 거니까요 보고 싶은 게 있지만 책이 없으면 못 보겠군요 그런데 저는 지금까지 아주 보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별로 없는 듯합니다 언젠가 볼 수도 있겠지 합니다 못 보면 말고...^^

다시 생각하니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시간이 가면 그 마음이 덜해지죠 뭐든 그렇군요 그리고 막상 볼 수 있을 때가 와도 안 보는... 그런 책이 많습니다 도서관에서 자주 빌려다보니 이렇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군요


이런 일이 있다면 어떤 책을 주고 싶을까요 아이는 초등학교 6학년(5학년으로 할까)으로 친한 친구가 이사를 가게 되고 학교도 옮기게 된 겁니다 그런 친구한테 줄 만한 책...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이런 게 떠올랐는데 이것을 쓸 수 있을지 모르겠군요 사실 이것은 지난날 이야기입니다 여기에도 별거 아닌 짧은 이야기가 있죠 이 책을 보고 짧은 거 써볼까 해서... 이것을 왜 물어봤느냐 하면 가연 님이 소개한 책을 넣고 싶어서요 이렇게 말해놓고 못 쓰면 안 될 텐데, 재미없어도 써야 할 텐데...^^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