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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비키초의 복수
나가이 사야코 지음, 김은모 옮김 / 은행나무 / 2024년 5월
평점 :
처음 시작을 잘못했다. 어떻게 잘못했느냐 하면 여기 나오는 게 가부키, 연극 같은 것인지 알았다. 이건 소설인데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뭔가 묻는 사람은 말이 없어서 그랬을까. 혼자 말하지만 그 사람 앞에 그걸 듣는 사람이 있다는 느낌은 든다. 소설 제목인 《고비키초의 복수》는 극장 마을에서 일어난 복수를 나타낸다. 기쿠노스케는 아버지 원수인 사쿠베에한테 복수했다. 에도시대에는 복수를 허용했다. 어떤 까닭으로 원수인 누구를 죽이겠다는 허가장을 받고 행정 재판 사무를 보는 부교소에 신고하고, 복수하기 전에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단다. 복수를 못하면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는구나. 에도시대에 복수를 이루지 못한 사람도 있었을 것 같다.
기쿠노스케가 아버지 원수인 사쿠베에를 죽이고 두해가 흐르고 고비키초에 누군가 나타나서 그때 일을 물어본다. 기쿠노스케가 복수하는 모습을 본 극장 호객꾼(문전 게이샤) 잇파치, 극장에서 무술 연기 담당을 맡은 요사부로, 바느질과 여장 배우를 하는 2대 요시자와 호타루, 소도구를 담당하는 규조와 아내 오요네, 각본을 쓰는 시노다 긴지. 이 사람들은 기쿠노스케 친구다 하는 무사한테 두해전 일어난 일을 이야기한다. 기쿠노스케는 고향에서 아버지를 죽이고 에도로 와서 도박꾼이 된 사쿠베에를 죽이고 목을 잘라 갔다고 했다. 이런 거 들었을 때는 기쿠노스케가 그런 일을 하다니 했다. 기쿠노스케를 아는 것도 아닌데. 여러 사람이 말하는 기쿠노스케는 예쁘장하게 생긴 무사였다. 예쁘장해도 무사는 무사다. 잇파치를 시작해 요사부로와 요시자와 호타루 규조와 오요네 부부 그리고 긴지는 기쿠노스케와 잘 지내고 여러 가지 도움을 주었다.
처음에 여러 사람은 거의 똑같은 말을 한다. 기쿠노스케가 멋지게 복수를 해냈다는. 그 다음엔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그건 이야기를 듣는 무사와 기쿠노스케가 부탁한 거기도 했다. 여러 사람 이야기를 듣다 보니 기쿠노스케의 복수보다 여러 사람 이야기가 더 중요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극장 마을은 에도시대에 막부가 안 좋은 곳으로 여겼다(악처). 그런 곳에는 유곽도 들어갔다. 가부키는 연극 같은 거여서 괜찮을 것 같은데, 일본도 그런 걸 낮잡아 봤나 보다. 한국도 광대를 천민으로 여겼던가.
자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지금은 극장 마을에서 자기 일을 하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고생했다. 요시와라에서 태어나고 그곳을 나와야 했던 잇파치, 하급무사였지만 무사라는 것에 의심을 가진 요사부로, 엄마와 고향을 떠나오고 엄마가 죽은 다음엔 화장터에서 지낸 일로 차별 받은 2대 요시와라 호타루, 목각 직인이었다가 아들을 잃고 극장 소도구를 만들게 된 규조 그리고 오요네. 상급무사였다가 남이 준비해 준 길을 가는 것이 싫어서 재미있게 살려고 한 각본가 시노다 긴지. 앞에 사람들은 안 좋은 환경에서 나고 자라고 차별도 받았다. 긴지는 좀 다르구나. 극장 마을에 오고 나아진 것 같구나.
누구나 이 책 《고비키초의 복수》를 읽다 보면 어느 순간 눈치 챌 거다. 기쿠노스케가 사쿠베에를 죽이고 목을 잘라서 가지고 간 ‘고비키초의 복수’가 어떤 건지. 이 말만 해야겠다. 이런 말도 안 해야 했는지도. 예나 지금이나 사람은 이야기를 좋아한다. 에도시대에 있었던 극장 마을에 가서 사람들은 연극을 보고 그날 있었던 안 좋은 일을 잊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영화나 드라마가 거기에 들어가겠다. 소설도 다르지 않지. 이건 소설이구나. 사람은 소설을 보고 울고 웃는다. 소설, 이야기가 현실과 다르다 해도 잠시나마 다른 걸 생각하기도 한다. 이야기를 보고 자신만 생각하지 않고 다른 사람도 생각하겠다. 여기에서 말하는 여러 사람을 보니 한쪽 문이 닫히면 다른 쪽 문이 열린다는 말을 떠올리게 한다. 누구한테나 그런 일이 일어나는 건 아니지만. 난 문이 다 닫힐 것 같다. 이 책을 보고 따듯한 사람들 마음을 느꼈다. 복수 이야기지만, 누구나 이 소설을 보면 마음이 따듯해질 거다.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