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기, 괴물
임철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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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해 전에, 오랜만에 한국 단편소설을 봤을 때는 단편소설이 예전보다 짧아졌다고 생각했습니다. 임철우 단편소설은 긴 편이네요. 임철우는 예전부터 알았는데 소설은 그다지 자주 만나지 못했습니다. 제가 만난 것에서 가장 처음 생각나는 건 《봄날》입니다. 그리고 곽재구 시 <사평역에서>를 보고 <사평역>이라는 소설을 썼지요. 그 소설 읽었는지 읽지 않았는지 잘 생각나지 않는데, 어렸을 때 드라마 본 것도 같아요. 생각나는 건 역에 사람이 모여있는 것뿐이지만. 눈 오는 밤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지금도 소설로 드라마를 만들지 않는 건 아니지만, 단편소설로는 거의 만들지 않지요. 영화로 만들까요. 제가 한국소설을 보기 시작했을 때는 그때를 말하는 소설보다 더 옛날 이야기를 하는 걸 본 것 같기도 합니다. 어쩌다 그랬는지. 아니 어쩌면 그때 소설가가 예전 이야기를 쓴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말했지만 예전에 단편소설 많이 못 보고 잘 못 봤어요. 지금도 잘 보는 건 아닙니다.

 

 여기 담긴 소설은 거의 어둡습니다. 슬픔과는 다른 것도 같아요. 언젠가 어떤 소설집을 보니 소설마다 나오는 사람이 다른데도 그 사람들이 비슷한 것 같기도 했습니다. 그게 대체 뭐였는지 잘 모르겠어요. 은희경 책 《중국식 룰렛》이었던 것 같기도 한데(조해진 소설 《빛의 호위》도 비슷했습니다). 그때 다른 사람이면서 비슷한 건 소설마다가 그 사람의 평행우주여서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쓰지는 않았나 봐요. 지금 생각하니 평행우주에 사는 건 다른 사람이 아니고 같은 사람이군요. 다른 사람일지라도 비슷한 점이 있기도 한데. 그래도 그렇게 생각하고 싶습니다. 여기 담긴 소설을 보고도 다른 사람이지만 비슷하기도 하다고 느꼈습니다. 연작소설은 아니지만 이어져 있는 소설 같아요. 예전에 박완서 님 소설을 보고 같은 사람이 여기저기 나온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거야말로 연작소설인데 그때는 그런 것도 몰랐습니다. 지금도 아는 게 별로 없군요. 이런 말로 잘 못 써도 이해해달라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2017년에 나온 소설집인데 여기에는 지금보다 예전 이야기가 더 많아요.

 

 네번째 소설 <간이역>을 보니 어렸을 때 본 흑백영화가 생각났습니다. 제목은 생각나지 않는데 여자가 아이 있는 남자와 결혼하고 자기 아이는 낳지 않는 게 나왔어요. <간이역>에도 그런 사람이 나오더군요. 그 사람은 췌장암으로 살 날이 얼마 남지도 않았습니다. 그동안 남편은 지금 아내보다 예전에 차 사고로 죽은 아내를 생각하고 시를 썼어요. 남편은 세상을 떠날 아내보다 두번이나 아내를 떠나 보내야 하는 자신을 더 불쌍하게 여겼군요. 나중에는 지금 아내보다 예전 아내를 생각한 걸 미안하게 생각한 것 같기도 합니다. 소설에 시인이 나오는 거 한편 더 있어요. <남생이>예요. 여기에서 남자는 같은 아파트에 사는 어떤 여자를 보고 어릴 적에 만난 친구를 떠올렸습니다. 남자가 어릴 적에 만난 미화와 여자가 같은 사람인지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미화 아버지와 오빠는 한센병에 걸렸다가 나았지만 한 곳에서 살 수 없습니다. 그 일을 누군가한테 들키면 미화는 다른 곳으로 떠나야 했어요. 남자가 어렸을 때 그걸 알고는 바로 다른 친구한테 말해서 미화는 그곳을 떠났습니다. 나이를 먹은 남자가 그 일을 생각하고 죄책감을 느끼는 거군요.

 

 사람은 누구나 언젠가 죽습니다. 소설에서는 죽음을 우울하게 그릴 때가 많더군요. 그건 결국 산 사람이 생각하는 죽음이잖아요. <흔적>과 <세상의 모든 저녁>은 그런 이야기예요. 두 소설에 나오는 사람은 다르지만 아픈 데는 같은 것 같기도 했습니다. <흔적>에 나오는 사람은 아들과 아내를 먼저 떠나 보내고, 병든 개도 떠나 보내고 자신이 살았던 흔적을 모두 없애려 합니다. <세상의 모든 저녁>에 나오는 사람은 쪽방에 혼자 살았어요. 오래전에 옹기를 만들었는데 시간이 흐르고는 그것을 쓰는 사람이 줄어들고 그걸 그만뒀습니다. 그때 결혼한 사람과는 헤어지고 혼자 살다 죽음을 맞았습니다. 그것을 알아채는 사람도 없었어요. 혼자 살던 사람이 죽고 그것을 시간이 흐르고 알았다는 이야기는 가끔 들리기도 합니다. 사라진 일을 말하는 소설 하나 더 있어요. <물 위의 생>은 아우라지 뗏사공 이야기예요. 소설에 나오는 사람은 왜 그렇게 삶이 평탄하지 않은지. 소설에는 잘되는 사람보다 이런저런 일을 겪고 역사에 휩쓸리는 사람 이야기를 더 쓰는군요. 임철우는 1980년에 일어난 광주민중항쟁을 《봄날》로 썼습니다.

 

 죽음이 나오는 소설이 앞에서 말한 두 편만은 아닙니다. 여기 담긴 소설에는 다 죽음이 나옵니다. <연대기, 괴물>은 송달규가 지하철에 몸을 던져 죽었다는 기사로 시작합니다. 아니 처음에는 이름이 없군요. 송달규라는 이름도 자기 이름이 아니었습니다. 한사람 삶을 말한다기보다 보도연맹 사건, 베트남 전쟁, 5 · 18 그리고 세월호에 이르는 굵직굵직한 이야기를 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 역사는 실체없는 괴물이 만들어낸 일일지. 그 괴물은 사람 마음이기도 하겠지요. <이야기집 - 단추눈 아짐>도 이제는 이 세상에 없는 단추눈 아짐 이야기면서 부용도 해송리 이야기기도 합니다. 예전에는 단추눈 아짐처럼 산 사람이 많았을 것 같기도 합니다. 나이가 차면 적당한 사람과 혼례를 올리고, 남편이 다른 여자를 만나 헤어지고 아이가 있는 사람과 다시 사는 일. 조금 쓸쓸해 보이지만 단추눈 아짐 삶이 아주 안 좋은 건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죽음을 말해도 덜 안타깝게 덜 쓸쓸하게 하면 좋겠습니다. 그런 소설이 아주 없지 않을지도 모르겠군요.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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