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춘의 문장들 : 작가의 젊은날을 사로잡은 한 문장을 찾아서
김연수
마음산책 2004년 05월 01일
이 책이 처음 나온 건 2004년이다.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도 이 책을 만나는 사람이 많다, 많겠지. 내가 언제 김연수를 알았는지 잘 모르겠다. 그때 난 소설가라는 것만 알았던 것 같다. 시를 먼저 썼다는 건 나중에 알았다. 김연수가 시를 먼저 썼다는 말 다른 책에서 봤을 텐데 잊어버렸나보다. 이름을 알고 소설도 조금 만났지만 이런 소설가가 있구나 했을 뿐이다. 예전에 난 책을 제대로 읽지 못했다. 지금이라고 잘 읽는 건 아니지만. 김연수가 쓴 소설 여러권 만났지만 그렇게 좋다 생각하지 않았다. 이 말 언젠가 한 것 같기도 하다. 몇해 전(그 책 보고도 시간이 흘렀다니)에 《소설가의 일》을 보고 말한 것 같다. 몇해 뒤에 또 하다니. 예전에 본 건 거의 잊었지만 몇해 전에 본 단편집은 조금 생각나기도 한다(《사월의 미, 칠월의 솔》). 그것보다 먼저 나온 《세계의 끝 여자친구》도. 이렇게 말한다고 뭐가 좋은 건지. 책 읽었다, 말하고 싶은 건지도.
여기에 나오는 다른 사람 글은 거의 한자로 쓴 것으로 오래전 사람이 쓴 글이다. 내가 그런 글을 본 건 학교 다닐 때뿐이다. 한문 시간에. 한문은 잘 모르지만 한문 시간이 있어서 한자를 조금 익혔다. 별로 자랑할 만한 일은 아니구나. 그런 게 쓸데없다 여길 수 있지만 아주 쓸데없지 않다. 내가 그때 조금이라도 공부해서 한자를 아는 거다. 영어는 오래 공부하고도 잘 모르지만. 한자 몰라도 살지만 일본말 공부하는 데 도움이 된다. 누군가는 중국말을 공부하겠다. 김연수는 영어에 중국말 일본말도 아는가 보다. 이 생각 《소설가의 일》을 보고도 했다. 《소설가의 일》에서 본 건 중국과 일본에서 책을 사온 일이다. 아주 똑같은 말은 아니지만, 비슷한 생각을 하게 하는 글을 썼다니. 그게 안 좋다는 건 아니다. 나도 한번 한 말 또 하기도 한다. 시간이 흐르고도 다시 말하는 건 여전히 그것을 생각해서겠지. 난 오래 생각하는 것보다 잊어버리는 게 더 많다. 김연수는 기억을 잘하는 걸까, 잘 기억해 내는 걸까. 잘 기억하고 어떤 일을 기회로 잘 떠올리는 거겠지. 다 그렇지 않겠지만, 많은 소설가가 그럴 것 같다.
자신이 어렸을 때 겪은 일을 자기 아이도 겪기를 바라는 사람 많을까. 많은 부모는 자신이 하지 못한 것을 아이가 하기를 바랄지도. 그리고 이렇게 말하겠지, ‘다 널 위해서야.’ 어릴 때 제대로 공부하지 못한 사람은 아이한테 공부하게 한다. 그건 아이를 위한 게 아니고 부모 자신을 위한 일인데. 부모 자신이 어렸을 때는 좋았던 일이라 해도 아이는 별로 좋아하지 않을지도. 부모가 하지 못한 걸 아이가 하기를 바라는 것보다 자신이 좋게 여긴 일을 아이도 하기를 바라는 건 좀 낫겠다. 김연수는 자신이 어렸을 때 아버지가 자전거 앞자리에 태워준 걸 좋게 기억하고 딸한테 그것을 해주려 했다. 아이가 갓 태어났을 때는 작아도 한두해 지나면 크겠지. 그건 아이한테 좋은 기억을 남겨주려는 것인지 자신이 좋은 기억을 가지려는 것인지. 처음에는 딸을 생각하고 한 일이겠지만 지나고 나니 자기한테도 좋은 일이었을 것 같다. 사는 건 거의 그렇다. 그때는 잘 모르고 지나고 나서야 깨닫는다.
다른 사람 이야기를 보고 자기 일을 생각하기도 할 텐데, 내가 김연수 글을 보고 떠올린 일은 없다. 난 지금까지 뭐하고 산 걸까. 어릴 때도 별로 좋은 일 없었고 자라서도 없었다. 아주 없지 않았을 텐데 그저 김연수와 비슷한 일이 없는 거겠지. 아니 아주 없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시간 많은 거, 난 지금도 시간 많다. 그 시간에 글쓰기보다 책을 본다. 《소설가의 일》을 보고 나도 날마다 뭔가 써 보려 했지만 아무것도 쓰지 못했다. 쓰려 한 건 단 하루고 생각만 했다. 쓸 게 없어도 쓰려 해야 할지도. 사람은 왜 글을 쓰고 싶어할까. 모든 사람이 그런 건 아닌가. 시간이 많다고 해도 누구나 글을 쓸 수 있는 건 아니다. 소설이라 해야겠구나. 그게 재능만으로 되는 거냐 하면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하지도 못하는 이야기를 하다니. 하고 싶지만 못해서 그렇겠지. 다른 사람이 쓴 글이라도 잘 읽어야 할 텐데. 어떤 사람은 몇해 동안 꾸준히 쓴 게 소설 한권이 되었다고 한다. 난 날마다 이어서 쓰기보다 그날 바로 쓰려 한다(이 말도 한 적 있구나, 요새는 아무것도 못 썼다). 소설가나 작가처럼 글을 잘 쓰거나 많이 못 쓰겠지만 긴 이야기 한번 써 보고 싶다. 그러려면 이렇게 말하기보다 써야 할 텐데. 여전히 난 책을 더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쓰기보다 읽기를 더 좋아하는 건지도.
몇해 전에 본 《소설가의 일》보다 이 책에 글쓰기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것도 아닌데 그 이야기를 더 보았나보다. 이 책에서 느낀 건 쓸쓸함이다. 좋았던 날도 이야기하지만 그런 일도 쓸쓸하게 보인다. 이렇게 생각하는 건 내가 나이를 먹어설까, 그때로 돌아갈 수 없어설지도. 김연수와 몇살 차이 나지 않는 조카가 죽다니. 그 글 라디오 방송에서 들은 것 같기도 하다. 제대로 듣지 않아서 그런 이야긴지 몰랐지만. 조카가 죽었을 때보다는 덜 슬프겠지만 지금도 마음 아플 것 같다. 무엇이든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 끝난다 생각하면 아쉽지만 다른 시작을 생각하면 좀 낫겠다. 책도 한권을 다 보면 다른 책을 볼 수 있다. 사람 삶과 책 한권은 무게가 다를까. 그것도 생각하기에 따라 다르겠다. 지난날을 떠올리고 그때 그랬지 하는 것도 괜찮고, 지금을 사는 것도 괜찮겠지. 지금이 있을까, 바로 지나가서. 지난날은 지나갔기에 더 좋게 기억할지도 모를 일이다. 지나고 나면 아쉽지 않은 게 없겠지만, 지금이 가장 좋은 때다 생각하고 살면 좋겠다.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