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울 것
임경선
예담 2017년 01월 30일
산문에는 그것을 쓰는 사람 삶이 많이 드러나기도 한다. 산문이라고 해서 자기 이야기만 쓰는 건 아니지만. 산문에는 자기 둘레 이야기뿐 아니라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평소에 관심 가진 일을 깊이 있게 쓰기도 한다. 지금 생각하니 많은 글이 산문이구나. 임경선은 소설도 쓰는데 소설은 아직도 만나지 못했다. 어쩌면 앞으로도 만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난 ‘연애’와 연이 없어서 말이다. 이 말 다른 책 보고도 했는데, 임경선 책이었던 것 같다. 연애 이야기를 많이 하는 것도 아닌데 또 같은 말을 하다니 그런 내가 좀 우습다. 그렇다고 그 말이 아주 없는 건 아니다. 임경선이 쓴 소설이 그렇고 에쿠니 가오리나 아니 에르노 그리고 마르그리트 뒤라스 같은 연애소설 쓰는 사람 이야기를 한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에서 가장 할 말이 많은 게 사랑일까.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지. 누군가한테는 그게 살아가는 힘이 되기도 하겠다. 사랑은 남녀 사이만을 말하는 건 아니다. 난 넓은 사랑을 생각하면 괜찮겠구나. 어쩌다 이런 말로 시작했을까.
가끔 책속에 나온 작가 소개를 보면 작가가 언제 태어났는지가 없을 때가 있다. 그걸 작가가 쓰지 않기로 하기보다 편집자가 빼자고 할 때가 더 많을까. 그럴지도 모를 일이다. 임경선한테 어떤 편집자가 나이를 빼자고 말했다. 나이 어릴 때는 아무렇지 않게 드러내는데 시간이 흐르면 나이를 드러내지 않는다. 오랫동안 한가지 일을 하는 것처럼 보여서 좋게 보일 텐데. 언제부턴가 한국은 나이 많은 사람을 안 좋게 보게 되었다. 나라고 다르지 않구나. 난 나이만 먹고 한 게 없어서 더 그렇기는 하다. 지금까지 대체 뭐하고 산 건가 싶어서. 그렇다고 바라는 삶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면 지금 삶에 만족하고 살아야겠지. 임경선이 행복과 욕망은 다르다고 말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이 말도 여러 번 했는데 난 행복하게 살고 싶다고 생각한 적 없다. 지금도 다르지 않다. 내가 바라는 것에는 무엇이 있을까. 별거 없다. 그러면서도 가끔 우울함에 빠진다. 무엇이 나를 우울하게 만드는 건지. 그것을 깊이 생각해봐야 할지도 모르겠다.
나하고 임경선이 비슷한 게 하나 있다. 그건 친구와 만나거나 전화로 말하기보다 편지(임경선은 전자편지)로 말하기를 좋아한다는 거다. 임경선은 스물다섯에 회사에 다녔다. 그때 친구와 거의 날마다 전자편지를 주고받고 시간이 흐르고는 그것을 인쇄하고 책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렇게도 하다니. 아쉽게도 난 전자편지를 오랫동안 나눈 친구는 없다. 그것도 쓰다보면 쓰겠지만 함께 나눌 사람이 없다. 쓴다 해도 여러 가지 이야기를 다 못할 거다. 아니 이건 예전부터 그랬다. 가끔 책이나 영화에서 여자친구끼리 별 이야기를 다 하는 걸 보고 여자친구는 저런 건가 하기도 했다. 무슨 말이든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러지 않는 사람도 있는 거겠지. 난 하지 않는 쪽이다. 나한테 쓴 편지에 이런저런 말을 한 사람도 별로 없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한테는 조금이라도 할까. 지금은 전자편지를 거의 쓰지 않지만, 여전히 편지를 쓴다. 내가 더 아날로그스럽지 않나 싶다. 편지를 좀더 재미있게 쓰면 좋을 텐데. 아니 별거 아닌 말이라도 써서 보내고 싶다. 조금은 가볍게 생각해도 괜찮을 텐데 싶다.
예전에 임경선이 하루키 이야기를 쓴 것을 보고, 임경선이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다. 이번에는 한사람 더 말했다. 줌파 라히리다. 나도 많이 좋아하는 소설가가 있고 그 소설가를 말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아주 많이 좋아하는 소설가는 없을지라도 비슷비슷하게 좋아하는 소설가는 많다. 한사람 한사람한테 좀더 관심을 가지고 소설을 만나면 조금은 소설이나 소설가를 말할 수 있을까. 좋아하는 소설가가 단 한사람인 사람은 없을 거다. 임경선은 무라카미 하루키가 노벨문학상을 받지 못해서 시원하면서도 섭섭하게 여겼다. 하루키가 노벨문학상을 받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준비한 사람 많았을 것 같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밥 딜런이 노벨문학상을 받다니. 온 세계 사람이 놀라고 재미있게 생각했겠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가 노벨문학상을 받았을 때도 문학이 넓어졌다 생각했을 텐데. 밥 딜런이 받고는 사람들이 문학을 더 넓게 생각하겠다. 이건 좋은 일이겠지.
난 친구가 아주 적다. 어렸을 때부터 친구를 잘 사귀지 못했다. 인터넷이라고 다르지 않다. 임경선도 친구가 얼마 없다고 했는데 나보다 많아 보인다. 그건 당연한가. 나보다 만나는 사람이 많으니 그렇겠다. 사람은 왔다가도 떠나간다. 그것을 좀더 잘 받아들이고 싶다. 임경선은 그런 걸 잘하는 것 같다. 상대가 자신이 한 말에 기분 나빠 한다 해도 할 말은 했다. 그게 더 나은 거기는 하다. 일부러 다른 사람 마음을 아프게 하는 건 좋지 않지만, 자기 감정에 솔직하지 못하면 자신이 힘들다. 나도 잘 못하는데. 아니 어떤 때는 아쉽기도 하다. 다시 예전과 같은 사이가 될 수 있을까 하고, 하지만 그건 어렵다는 걸 나도 안다. 지금 알고 지내는 사람과 잘 지내도록 해야겠다. 사람 관계도 흘러가는 물과 다르지 않다. 흘러가면 흘러가는대로 두는 게 낫다.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을 거다. 가끔 남은 생각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이 자유다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건 진정한 자유가 아니다. 나도 자유롭게 생각하고 살고 싶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내 마음을 끄는 것을 편하게 하기. 이것밖에 생각나지 않는구나.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라도 어려움은 찾아온다. 그런 게 없는 건 없다. 어려움이 찾아와도 그것을 즐기면 괜찮겠지. 임경선은 글을 그렇게 쓰고 책을 냈겠다. 남을 부러워해도 자신은 그 사람이 될 수 없고, 자신은 자신일 수밖에 없다. 난 앞으로 자유롭게 나로 살까 한다(말은 이렇게 해도).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