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교사 안은영 오늘의 젊은 작가 9
정세랑 지음 / 민음사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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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 다닐 때 난 보건실에 한번도 가 본 적 없는 것 같다. 그저 보건실에 간다는 아이를 보고, 그것을 조금 부럽게 여겼다. 학교에서 아픈 적이 한번도 없었던 건 아닐 테지만 ‘보건실에 좀 갈게요’ 하는 말 한번 못해봤다니, 어쩐지 좀 아쉽다. 아프다고 학교 쉰 적도 거의 없지만, 아니 초등학교 1학년 때 며칠 쉬었다. 그때 한번이다. 학교 다니기 싫었는데도 빠지지 않았다니. 지금 생각해도 신기하다. 그때는 학교를 빠지면 안 된다고 생각했을 거다. 난 딱히 우등생도 모범생도 아니었는데, 마음속으로는 삐딱한 아이 부러워한 것 같다. 삐딱하기보다 자기 생각대로 행동하는 아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 아이 많이 못 본 것 같다. 책이나 드라마에서 본 건 아닐까 싶다. 학교 다닐 때 난 여러 생각을 하지 못했다(고등학생 때도). 지금이라고 그렇게 많이 달라진 건 아니구나. 학교 다니는 걸 즐기지 못한 게 조금 아쉽다.

 

 어쩌다 보니 난 초등학교를 세군데 다녔다. 첫번째는 오래 못 다니고, 세번째는 한해 조금 넘게 다니고, 두번째 학교에 오래 다녔다. 그 학교는 소풍이나 행사가 있으면 비가 온다는 말이 있었다. 그런 말이 있다 해도 실제 비가 온 적은 없었는데 한번 비가 와서 소풍 가지 못했다. 학교 밑에 무언가를 묻어서 그렇다는 말을 들었는데, 이런 이야기는 어느 학교에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게 한국에만 있는 건 아니다. 한국과 가까운 일본도 학교에 전해오는 이야기가 많고 학교가 있는 땅이 별나기도 하다. 학교가 있는 땅이 별난 건 만화에서다. <결계사>는 학교가 있는 땅이 요괴한테 힘을 주는 곳이어서 밤이면 그곳에 요괴가 나타났다. 그 땅을 대대로 지키는 두 집안 아이가 밤에 요괴를 잡는다. 어떤 이야기에서는 학교에서 다른 세계로 가기도 한다. 일본만화는 학교에 다니는 아이가 이야기를 이끌 때가 많다. 선생님 같은 어른이 이끄는 이야기가 아주 없는 건 아니겠지만 많지 않을 것 같다. 이 소설을 보니 일본만화가 생각났다. 그걸 많이 본 건 아니지만.

 

 학교에는 사람이 많아서 이런저런 마음이 쌓이는 걸까. 풍수지리 잘 모르지만 학교는 좋은 자리에 짓는 게 나을 것 같기도 하다. 학교는 좀 높은 곳에 있을 때가 많은데, 그건 왤까. 여기 나오는 학교는 M고다. 제목에 나오는 보건교사 안은영은 남이 못 보는 것을 본다. 안은영만 그런 걸 볼 수 있는 건 아니겠지만, 그것을 보는 사람이 적겠지. 안은영은 학교에서 일하기 전에 간호사로 병원에서 일했다. 병원도 이런저런 이야기가 많은 곳이다. 그곳은 사람이 죽기도 해서겠지. 병원보다 학교에서 일하는 게 나을 것 같다. 안은영 별명은 ‘아는 형’이다. 책 뒷면에서 이 말 봤을 때는 다른 걸 생각했다. 그게 뭔지 나도 잘 모르겠지만, 책을 보면서 이름 때문이라는 걸 바로 알았다. 발음이 비슷해서. 별명이 있는 사람은 친구가 많은 것 같기도 하던데, 안은영은 친구 별로 없어 보인다. 안은영이 중학생 때는 아이들한테 따돌림 당하기도 했다. 그래도 친구 김강선과 만화부 아이들이 있어서 괜찮았다. 한사람과 한사람은 한쪽으로 치우쳐서 생각하지 않기도 하지만, 집단은 한사람이 다르면 따돌리기도 한다. 그런 일은 학교에서만 일어나는 건 아니다.

 

 남과 다른 힘이 있으면 그걸로 돈을 벌려는 사람도 있을 거다. <나츠메 우인장>에도 요괴를 물리치는 일로 돈을 버는 사람이 나온다. 모든 사람이 그렇지 않아서 이 세상이 망하지 않는 게 아닐까 싶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남을 위해 일하는 건 쉽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은영은 세상이 공평하지 않아도 자신의 친절함을 버리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건 꼭 남다른 일을 할 때만 말하는 건 아닐 거다. 길을 걷다 쓰레기를 줍는다거나, 길을 묻는 사람한테 길을 가르쳐주거나, 넘어진 아이를 일으켜주는 아무것도 아닌 일도 친절함을 베푸는 일이다. 누군가 볼 때만 잘하는 게 아니고 아무도 보지 않을 때 잘하는 것도 있구나. 은영은 무심한 것 같아도 마음은 따듯하다. 옴잡이로 스무해밖에 못 사는 백혜민을 도와주기도 한다. 현실에 그런 일은 없겠지만. 그건 내가 모르는 거고 어딘가에 정말 ‘난데없는 사람’이 있을지도.

 

 여기에서 재미있는 건 한문 선생이면서 M고를 물려받을 홍인표다. 할아버지 사랑을 받아서 보호막으로 둘러싸여 있고 은영이 그 힘을 빌리기도 한다. 힘을 빌릴 때는 손을 잡는다. 손 잡다 정들었다고 해야겠구나. 우리가 볼 수 없는 것을 보고 물리친다고 해서 우리가 사는 세상과 아주 동떨어진 이야기는 아니다. 현실에 환상을 더했다고 생각하면 된다. 학교에서 역사 교과서를 고를 때 다른 것 때문에 어디 것을 써야 한다고 말하는 교장 선생님도 있을 것 같다. 선생님은 아이한테 역사를 생각하게 해야 한다. 시험을 잘 보려고 공부하는 것이 아닌 역사를. 나도 역사를 잘 아는 건 아니지만. 책을 재미있게 봐도 꼭 거기에서 무언가를 찾으려고 한다. 언제부터 이렇게 됐을까. 그건 책을 보고 생각하는 거니 괜찮겠지. 아이가 사랑과 보호를 받아야 할 때가 있다는 말도 생각난다. 집과 학교 어디에서도 사랑을 받지 못하면 아이가 쓸쓸하겠다. 그럴 때 은영 같은 보건 선생님이 있다면 괜찮겠구나. 왜 난 보건실에 한번도 못 가 봤을까.

 

 

 

희선

 

 

 

 

☆―

 

 은영은 문득 크레인 사고 뉴스를 얼마나 자주 보았던가 되짚어 보았다. 어째서 그렇게 크고 무거운 기계가 중심을 잃고 부러지고 휘어지고 떨어뜨리고 덮치는 일이 흔하단 말인가. 새삼스럽게 받아들일 수 없이 이상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비싸서 그래. 사람보다 크레인이. 그래서 낡은 크레인을 자꾸 쓰는 거야. 검사를 하긴 하는데 무조건 통과더라.

 

 사람보다 다른 것들이 비싸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살아가는 일이 무척 값없게 느껴졌다.  (1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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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7-05-05 02: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닭장처럼 생긴데 갇혀 경쟁하며 사는데 학교가 좋은 기운 모이기 쉽겠습니까ㅎ 그러니 여고괴담 같은 귀신 얘기들도 많은 것이고.
입시 지옥이 심한 일본이나 한국은 그런 풍조가 더 강하죠.
대개 이야기 속에서 죽는 아이는 시기를 당하던 전교 1등이라거나 따돌림을 당한 아이죠.
환경 중요한 줄 알면서도 참 지독히 안 바뀌는 건 안 바뀝니다.

희선 2017-05-06 00:02   좋아요 1 | URL
시간이 많이 흘러도 많이 바뀌지 않은 곳이 학교가 아닌가 싶습니다 확실하게 아는 건 아니지만, 이런 소설 같은 걸 보면 많이 달라지지 않은 것 같더군요 학생은 줄었지만 여전히 공부를 잘해야 한다는 것에서는 벗어나지 못했겠죠 대학에 간다고 그다음에도 잘된다는 보장은 없는데... 그런 데서 벗어난 사람이 아주 없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조금이라도 있기를... 그런 사람은 그런 사람대로 자신이 가는 길이 괜찮을까 걱정할지도 모르겠네요


희선

AgalmA 2017-05-06 01:47   좋아요 1 | URL
슬픈 이야기로 끝났지만 대학 안 가고도 참 똑똑했고 사람을 울리고 웃길 줄 알며 대통령까지 한 노무현 대통령도 있었잖아요. 그리고 많은 사람을 바꿨죠.
저도 늘 생각합니다. 생각과 마음을 바꾸면 지금의 내 삶도 충분히 바꿀 수 있지 않겠는가 하고...

희선 2017-05-08 00:44   좋아요 1 | URL
사람은 많이 알면 알수록 자신을 낮추어야 할 텐데, 무언가를 많이 안다고 고개가 뻣뻣한 것만은 아니군요 높은 자리에 있으면 달라지기도 하죠 사람이기에 그런 것일지도... 자기 마음 다스리기가 가장 어려운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것만 잘해도 사는 게 좀 괜찮을 텐데... 아니 늘 편하면 안 되겠군요 어려움도 있어야 배우려 하고 그것을 넘으려고 하겠죠


희선

목나무 2017-05-07 13: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친구들이 재밌다고 해도 손이 잘 안가던 소설인데.... 안은영이 나츠메처럼 남들은 못보는 걸 보는가 보군요. 제가 워낙 <나츠메 우인장>을 좋아하다보니 리뷰를 보고는 반가운 마음에 몇 자 적습니다. ㅎㅎㅎ 요즘 저의 낙은 <나츠메 우인장>6기를 챙겨보는 거네요. ^^
요 소설도 시간 나는 대로 읽어봐야겠어요. ~

희선 2017-05-08 00:47   좋아요 0 | URL
친구 분들이 이 책을 보셨군요 안은영은 죽은 사람 혼 같은 걸 보기도 하고 안 좋은 마음 덩어리 같은 것을 보기도 해요 안 좋은 건 안은영이 없애요 병원이나 학교에 그런 게 많겠죠 설해목 님도 <나츠메 우인장> 좋아하시는군요 이번 거 여는 노래(플로리아) 처음 들었을 때부터 좋았어요 다른 때도 노래 괜찮았군요 나츠메와 어울린다는 느낌도 듭니다 나츠메뿐 아니라 여러 사람한테 힘을 주는 노래예요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