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해 전 오랜만에 시가 보고 싶어서 고른 게 이 시집이다. 다 제목 《다정한 호칭》 때문이다. 이 시집을 받았을 때 ‘시집이 예전보다 커졌다’고 쓰려 했다. 시집 보기도 전에 그런 생각을 하다니. 제목만 보고 고른 시집인데, 알기 쉬운 시나 마음에 드는 시 못 찾았다. 시 한편은 아니어도 마음에 드는 구절은 조금 있었지만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서 못 썼다. 오랜만에 본 시집이 이해하기 어려워서 지금 시인은 모두 이렇게 시를 쓰는가 하고 다른 시인 시 못 봤다. 내가 알기 쉬운 시를 봤다면 그 뒤에도 시 만났을지도 모르는데 아쉽다. 나는 잘 모른다 해도 이 시집 좋아하는 사람도 있겠지. 몇해 전에 이것을 보고 바로 여러 시를 못 봤지만, 시간이 흐르고 잘 몰라도 보자고 마음먹고 다시 보게 되었다. 어떤 시인은 시를 느끼라고 말하니까. 나와 잘 맞는 게 있는가 하면 잘 맞지 않는 것도 있는 거겠지. 이 시집 다시 보면 괜찮을까 하고 펼쳤는데 여전히 잘 모르겠다. 밝은 것 같기도 하고 어두운 것 같기도 하고, 이런 말은 어떤 것을 보든 할 수 있겠다. 자연을 바라보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것 같기도 하다.

 

얼마전에 다른 시집을 보고 시집 제목은 어떻게 정할까 하는 말을 잠깐 했는데, 이 시집 제목은 <심야발 안부>에 나오는 한구절이다. 시집 제목이 시 제목일 때도 있고 시에 나오는 구절일 때도 있다. 이 두 가지가 아닌 시집 제목도 있을 텐데. 다정한 호칭은 무엇일까 잠깐 생각하기도 했다(몇해 전에도 그랬는데). 너, 그대, 당신……. 이름도 호칭에 들어간다. 난 이름이 좋다고 생각한다. 이름은 자신이 붙이기보다 다른 사람이 지어주는 거지만. 자기 이름은 자신보다 남이 많이 부르는 것이구나. 다른 사람, 친구가 내 이름 부르는 건 듣기 좋은데 나는 말로 잘 못한다. 어릴 때도 그랬고 지금도 다르지 않다. 쓰는 건 하지만. 말 자체를 거의 안 하는데 언제 친구 이름을 부를까. ‘~야 놀자, ~야 학교 가자.’ 처음 시인 이름 보고 남자 시인인가 했다. 은규가 아닌 은교였다면 여자겠지 했을지도. 몇해 전에는 남자가 하는 말로 보고(좀 이상한 느낌이 든 것 같기는 하다), 이번에는 제대로 여자가 하는 말로 보았다. 나처럼 이은규 시인을 남자라 생각한 사람 없을까. 시인은 남자여도 여성스러운 말을 쓰기도 한다(어떤 글이든 그런 면이 있던가). 시를 많이 본 것도 아닌데 이런 말을 했다.

 

시를 보면 여러 사람이 떠오른다. 내가 시를 보고 알아본 사람은 기형도 이상 고흐 윤동주 김수영 체 게바라다. 철도원 아버지를 둔 시인은 누굴까(전에도 이 말 한 것 같다, 한번 한 말 또 하다니). 앞에 말한 사람 말고 더 있을지도 모르는데 아는 게 별로 없다. 이은규는 저런 사람 시와 글 그림을 좋아하고 본 걸까. 그런 것을 시에 녹여내다니. 봄이 느껴지는 시도 여러 편이다. 나무 바람 구름 꽃 나비. 이런 시도 있다는 걸 안 것만으로 잘됐다 생각해야겠다. 행과 행 사이를 잘 보아야 할 텐데. 잘 보아야 하지만 잘 듣기도 해야 한다.

 

 

 

봄날 나비를 쫓는 일이란

내 기다림의 일처럼 네게 닿는 순간 꿈이다

꿈보다 좋은 생시가 기억으로 남는 순간

그 시간은 살아서 죽은 나날들

바람이 앵초 꽃잎에 앉아

찰랑, 허공을 깨뜨린다

기록되지 않을 나비의 문장에 오래 귀 기울인다

꼭 한 뼘씩 손을 벗어나는 나비처럼

꼭 한 뼘이 모자라 닿지 못하는 곳에 네가 있다

 

어느 날 저 나비가

허공 무덤으로 스밀 것을 나는 알지 못한다

봄날, 기다리는 안부는 언제나 멀다

 

<놓치다, 봄날>에서, 62~63쪽

 

 

 

잡으려고 손을 뻗으면 뻗을수록 잡히지 않는 게 많다. 그럴 때는 잡으려 하기보다 그냥 놓아두는 게 나을지도. 이런 생각을 하다보니 <어느 새의 초상화를 그리려면>(자크 프레베르)이라는 시가 생각난다. 그 시는 새를 바로 그리기보다 그리려는 새가 그곳에 오기를 기다리고 그 새가 오면 그곳에서 편안하게 있게 한다. 이건 자신보다 상대를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떤 말을 바로 하는 것보다 시로 쓰는 것도 좋구나. 바로 알기 어렵고 사람마다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렇다 해도 감정은 비슷하지 않을까.

 

 

 

숨 막히는 뒤태

 

 

 

당신을 뒤로 하고 길을 건널 때

 

왜 가시 돋친 말은 등 뒤에 와 박히는 걸까

 

언젠가 등 뒤 점을 바라볼 수 없는 데에서

 

인간의 고독이 시작된다는 문장을 읽은 적 있다

 

가시 돋친 마음이 와 빅히는 뒤태

 

오늘 새로운 흑점 하나 생겼다, 숨 막히는  (77쪽)

 

 

 

뭐라 설명하기 어렵지만 예전에도 이번에도 이 시간 마음에 들어왔다. 만화에서는 어떤 말이 심장에 꽂히는 것처럼 그릴 때가 있다. 이 시는 앞이 아닌 뒤다. 앞에서 꽂히는 건 재미있게 보이지만 등 뒤에서 꽂히는 건 어쩐지 슬프게 보인다. 뒤에서 그 사람 모르게 말하는 건가. 몰래 뒤에서 이러쿵저러쿵하는 것보다 앞에서 말하는 게 훨씬 낫겠다. 앞에서는 가시 돋친 말 못할 테니까. 그런 건 아닌 것 같은데 어쩌다 보니 그런 생각을 잠깐 했다.

 

언젠가 이 시집을 다시 펼쳐볼 때가 있을지, 그때는 지금보다 더 잘 보거나 느끼면 좋겠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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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6-06-11 14: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은규 시인이 여자분인걸 알고 살짝 당황 ...ㅎㅎㅎ저는 [별이름 작명소]가 넘 좋더라고요...희선님은 요즘 시보단 운율이나 그런걸 봐도 옛 시들이 더 이해편할실지도..모르겠어요. 주제와 얘기가 확실한 ..면에서요!^^

희선 2016-06-12 01:44   좋아요 1 | URL
말씀 고맙습니다 책이나 글도 연이 닿아야 볼 수 있는 거 아닌가 싶습니다 제가 잘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 책은 연이 닿았습니다 그것만으로도 괜찮지 않을까요 시를 많이 아시니 저런 말을 하셨겠네요


희선

[그장소] 2016-06-12 09:41   좋아요 0 | URL
음 ..그렇네요 ..인연이 닿아서 만났다는것이 중요한듯~^^ 이해는 더 나중에 찾아 오기도 하니까 ...천천히 자주 봄..더 예뻐질 거예요~^^
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