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

허수경

 

 

 

처음 하는 말은 아니지만, 예전에는 잘 몰라도 시를 보았다. 시에서 멀어지고 다시 몇해 전부터 ‘올해는 시를 좀 봐야지’ 하는 생각을 했지만 쉽게 못 보았다. 그런 생각을 하고 몇해가 지난 뒤에야 시를 가끔 보게 되었다. 여전히 시 잘 모른다. 얼마전에 박준 시집 보고 기형도 시가 떠오른다고 썼다. 그 말 쓰고 다음에는 기형도 시집을 다시 봐야겠다 생각했는데 바뀌었다. 허수경은 박준 시집 끝에 글을 썼다. 박준은 <슬픔은 자랑이 될 수 있다>는 시를 썼다. 우연히 그 시 봤을 때는 양귀자 소설집 《슬픔도 힘이 된다》가 떠올랐다. 허수경이 박준 시집 끝에 글을 써서 허수경 첫번째 시집 제목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가 생각난 건지도 모르겠다. 이런 식으로 책을 볼 수도 있는 거겠지. 늘 그러는 건 아니다. 거의 그때그때 보고 싶은 것을 본다. 허수경 시집 이야기를 누군가 한 걸 보고 여러가지가 이어진 건지도 모르겠다. 나한테 허수경 시집은 두권밖에 없다. 난 허수경을 어떻게 알았을까. 이런 건 왜 기억하지 못하는 걸까.

 

지난해 《마왕 신해철》에서 허수경 글 보았다. 두 사람은 라디오 방송 때문에 만났다. 마왕이 처음에 낸 책에 작가 누나 이야기가 조금 나오는데, 그 작가 누나가 허수경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때 라디오 방송 작가가 있다는 거 알았지만, 시인이 하는지 몰랐다. 시 쓰고 라디오 방송 작가 했다는 걸 아는 사람은 이병률뿐이다. 더 있을지도 모를 텐데. 허수경 첫번째 시집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는 1988년 11월에 나왔다. 한달 뒤 대학가요제에서는 무한궤도가 <그대에게>로 대상을 받는다. 1988년이 거의 끝날 때 무한궤도는 알았지만 허수경은 몰랐다. 허수경 언제 알았는지 모르지만, 허수경이 독일에서 산다는 건 알았다. 그건 언제 어떤 글을 보고 안 건지. 우연히 안 걸 잊지 않았던가보다. 허수경 시집은 두번째 나온 《혼자 가는 먼 집》을 먼저 본 것 같다. 그걸 보고 첫번째 시집 알고 사 봤을지도. 제목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시집 제목은 시 모두를 보고 지을 때가 많을까, 괜찮은 구절을 제목으로 쓸 때가 많을까. 시 제목을 시집 제목으로 쓸 때도 있다. 이 시집 제목은 <탈상>이라는 시에 든 구절이다.

 

사람은 살면서 여러가지 감정을 느낀다. 기쁨 노여움 슬픔 즐거움(喜怒哀樂) 그 안에서 슬픔은 사람한테 힘이 될까. 슬픔에 빠진 사람한테 그런 말하면, 그 말 받아들이지 못할 거다. 사람은 기쁘고 즐겁게 살고 싶어하지 누가 슬픔이 찾아오길 바라겠는가. 슬픔이 찾아오면 그때가 지나야 비로소 슬픔도 힘 거름 자랑이 된다는 걸 깨닫는다. 슬픔이 찾아왔을 때 그게 잘 지나가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하면 잘 지나갈지 모르겠지만. 사람은 여러 일을 겪고 단단해진다. 난 아직도 단단하지 못하지만. 단단한 게 하나만 고집하는 건 아니고 작은 일에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 사람만 슬픈 일을 겪고 자라는 건 아니다. 이 세상에 살아있는 모든 게 그렇지 않을까. 자신한테만 슬프고 안 좋은 일이 일어나는 건 아니다.

 

 

 

 

 

 

강은 꿈이었다

너무 먼 저편

 

탯줄은 강에 띄워 보내고

간간이 강풍에 진저리치며

나는 자랐다

 

내가 자라 강을 건너게 되었을 때

강 저편보다 더 먼 나를

건너온 쪽에 남겨두었다

 

어느 하구 모래톱에 묻힌 내

배냇기억처럼  (67쪽)

 

 

 

 

근대사

 

 

 

입술만큼 여린 게 없다

우리가 그대들 가슴을 짓이겨 놓았다

뜬 눈으로 밤을 새운다

멀리 새벽은 우리가 아프게 한

그대들 가슴에 걸려 있고

우리는 새벽달 되어 그 가슴에

떠다닌다.

 

용서해다오.

안 된다.  (70쪽)

 

 

 

 

아버지, 저를 신고하지 마세요

흔하디 흔한 집에서조차

우리가 분단되어 버린다면

 

<우리는 같은 지붕 아래 사는가 3>에서, 127쪽

 

 

 

이 시집이 나온 1988년 우리나라가 어땠는지 잘 모른다. 그리 밝지 않았다고 한다. 지금도 그리 밝지 않다. 경제가 안 좋다는 말은 늘 끊이지 않을 것 같다. 경제가 아닌 다른 데 마음을 쓰면 더 나을 것 같지만. 힘들어도 사람은 그 안에서 나름대로 즐거움을 찾을 거다. 별로 밝지 않은 1988년을 추억하는 것은 어린시절 맛본 따스함 때문일 듯하다. 이 시집에는 1980년대 이야기도 있지만, 그때보다 지난 이야기가 많아 보인다. 한국전쟁, 일제강점기. 1988년에 그때를 생각한 건 힘들 때와 1988년이 다르지 않아서였을까. 그것보다 역사 이야기를 쓰고 싶은 마음이었을 것 같다. 그때 사람들이 잊어가는 이야기를. 지금도 그때와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지난 일이라고 잊어야 하는 건 아니겠지. 잊어야 하는 것도 있지만.

 

시가 어떤지 잘 말하지 못한다 해도 시 볼까 한다. 슬픔을 거름 삼아.

 

 

 

희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