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임버 뮤직

  제임스 조이스   공진호 옮김

  아티초크(Artichoke Publishing House)  2015년 05월 12일

 

 

 

 

 

 

 

 

 

 

 

 

 

 

얼마전에 정끝별 이름은 알지만 시집은 처음 본다고 했는데 예전에 책 두권 만났다. 그걸 본 지 오래돼서 잊어버린 거다. 그렇게 책을 보고도 봤다는 것을 잊어버리는 일 가끔 있다. 산 것 같은 책이 보이지 않는 건, 내가 사지 않은 건가. 그래도 난 한번 산 책 두번 사는 적은 없는데, 샀다는 것을 잊어버리는 책은 있다. 그런 책은 슬프겠다, 내가 자기를 잊어버려서. 책 그렇게 많지도 않은데.

 

책은 누군가 펴보아야 비로소 책이 된다. 지금 책을 펴자.

 

 

 

1

 

이 세상에는 이름은 알지만, 내가 아직까지 만나지 못한 작가 책 많다. 제임스 조이스도 다른 데서 이름은 봤지만 글은 한번도 못 보았다. 소설이 아닌 시를 먼저 보다니(제임스 조이스는 시를 먼저 썼다), 언젠가 소설도 만날 수 있을까. 어쩐지 제임스 조이스 소설은 어려울 것 같다. 정신분석가는 제임스 조이스 책을 보고 여러가지를 알기도 했다던데. 정신분석가만 그런 건 아니고 많은 작가가 제임스 조이스 소설을 만났겠지. 제임스 조이스는 글을 써서 정신의 균형을 지킨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딸 루치아는 신경쇠약과 정신분열 증세로 치료받기도 했다. 잘 아는 것도 아니고 책에서 본 걸 쓰다니. 제임스 조이스 소설에서 제목 아는 건 《더블린 사람들》과 《율리시즈》다. ‘더블린’이라는 곳 들어봤지만 어디에 있는 곳인지 확실하게 몰랐다. 제임스 조이스가 난 곳은 아일랜드고 죽은 곳은 스위스 취리히다. 더블린은 아일랜드에 있다. 아일랜드 정부는 왜 제임스 조이스 유해를 아일랜드에 묻지 못하게 했을까.

 

위장 수술을 받고 의식불명에 빠진 뒤 숨을 거둔 제임스 조이스 이야기를 보니 마왕 신해철이 떠올랐다. 제임스 조이스는 스물다섯에 왼쪽눈에 홍채염이 생겨서 몇번이나 수술을 받았지만 낫지 않았다. 지금은 그거 고칠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시집 《체임버 뮤직》은 제임스 조이스가 처음으로 낸 책이다. 시에 제목은 따로 없고 번호가 쓰여 있다. 제임스 조이스 식구는 모두 음악을 좋아했다. 여기 실린 시도 여러 사람이 곡을 붙이고, 제임스 조이스가 곡을 붙인 것도 있다. 한때 제임스 조이스는 오페라 가수가 되려고 성악을 배웠다. 영어나 다른 나라 말로 쓰인 시를 우리말로 옮기면 느낌이 다르다. 영어 잘 모르는데 이런 말을. 우리말로 쓰인 시를 다른 나라 말로 옮겨도 느낌이 그대로 전달되지 않을 거다. 아주 좋은 시는 어느 나라 말로 옮기든 좋을까. 말장난이 있는 건 그 나라 말과 문화를 모르면 알기 어려울지도. 예전에 라디오 방송에서 <캐논>을 들은 적이 있다. 내가 듣기에 연주가 좋았다. ‘~체임버 오케스트라’가 연주했다고 했다. 그때 체임버가 무슨 뜻인지 몰랐다. 오케스트라는 거의 바깥보다 안에서 연주하지 않나. 체임버는 실내, 안, 방이라는 뜻이다. 여기에서는 오케스트라보다 적은 사람이 연주하는 음악이 아닐까 싶다.

 

 

 

9

 

 

오월 바람, 바다에서 춤추네,

기쁨에 들떠 고랑에서 고랑으로

둥글게 돌아가며 춤추고

거품은 날아올라 화환 되어

은빛도 둥글게 공중에 걸치는데,

내 애인 어디에 있는지 보셨나요?

아, 슬퍼라! 아, 슬퍼라!

오월 바람이 있어!

사랑은 사랑이 멀리 있어 슬퍼라!  (45쪽)

 

 

 

여기 실린 건 제임스 조이스가 자기 아내 노라 바나클을 만나기 전에 쓴 사랑시다. 사랑시는 누군가를 좋아할 때 써야 할 것 같은데. 누군가를 만나기를 바라고 쓴 것일지도 모르겠다. 만남도 있지만 헤어짐도 있다. 대상이 없어도 시를 쓰는구나. 그나마 알기 쉬운 게 사랑시라고 생각하는데, 여기 실린 시는 알듯 모를듯하다. 있는 그대로 봐도 될 것 같은데 누군가는 숨은 뜻과 상징을 억지로 갖다붙이기도 했다고 한다. 제임스 조이스 소설을 본 다음에 시를 봤다면 나도 그렇게 생각했을까. 시는 느끼라고 한다. 이런 말 들어도 잘 알기 어렵기도 하다. 시만 느끼는 건 아니다. 음악도 그렇다. 시와 음악은 가까운 사이구나.

 

 

 

16

 

 

이제 골짜기 서늘하니

우린 그리로 가요 내 사랑

임이 언젠가 갔던 곳

이제 수많은 새들이 노래하잖아요

개똥지빠귀들이 부르는 소리,

우리더러 오라는 소리가 안 들려요?

오, 골짜기는 서늘하고 쾌적하니,

그대여, 우리 거기에 머물러요.  (65쪽)

 

 

 

2

 

정확한지 모르겠지만 초등학교 6학년 때 피아노를 배웠다. 처음에는 친구가 배운다고 해서 나도 같이 배운 것 같다. 피아노 치는 건 즐거웠다. 혼자 연습하는 때가. 난 어렸을 때부터 어른이나 선생님을 아주 어려워했다(지금도 바뀌지 않았다, 모든 사람이 어려울지도). 피아노 연습한 것을 선생님한테 들려주는 시간은 그리 좋지 않았다. 편하게 생각하면 좋을 텐데. 그렇다고 그때 잘 못 친 건 아니다. 그때도 피아노 배우는 건 돈이 많이 들었던 것 같다. 피아노 배운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바이엘 다음으로 넘어갈 때 그만두어야 했다. 그게 아쉬웠다. 집에 피아노가 있는 친구가 부러웠다. 6학년 때 피아노 잘 치고 피아노 있는 친구가 같은 반에 있어서 몇번 친구 집에 놀러갔다. 그 친구하고 그 뒤에 어떻게 됐던가. 피아노 그만 둘 때 언젠가 피아노 다시 배우고 싶다고 생각했다. 중학생 때 피아노 대신 배운 게 있다. 그건 타자다. 타자 치기도 두 손으로 하는 거니까(피아노 치는 것과는 아주 다르지만). 이젠 수동 타자기 없는데(박물관에 있을지도), 타자기가 거의 사라져갈 때쯤 배운 거다. 그것도 겨우 몇달. 시험도 한번 보라고 했는데, 내가 다니는 학교와 좀 멀어서 그만뒀다. 그때 타자를 배워서 나중에 컴퓨터 자판 외울 필요없었다. 영타는 여전히 천천히 한다.

 

피아노를 생각하고 타자를 배우다니 지금 생각해도 좀 우습다. 피아노 생각은 그 뒤로도 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집에 일이 있어서 5학년이 되고 바로 다른 곳으로 이사했다. 어릴 때 동네에서 사귄 친구와는 초등학교 두해, 중학교 세해 동안 만나지 못했다. 고등학생이 되어서 다시 만났다. 처음에는 좀 어색했지만 어릴 때 친구여서 그런지 조금 뒤 괜찮아졌다. 그 친구는 나와 나이는 같지만 한 학년 위였다. 어릴 적에 친구로 만나서 죽 친구로 지냈다. 고등학생 때는 아니고 시간이 흐른 뒤에 그 친구 집에 가서 피아노를 쳤다. 잘 못 치는 피아노 소리는 듣기 싫은가보다. 그런 것에 별로 마음 안 쓰고 자기 집에서 피아노 치게 하다니, 그때 제대로 고맙다는 말도 못했다. 그 친구 집이 멀어서 그것도 오래 하지 못했다. 어쩐지 핑계를 찾고 그만둔 듯한 느낌이다. 내 성격이 살가웠다면 달랐을까, 무뚝뚝해서. 지금 집에 피아노는 없다. 피아노 오래 배우지 못한 일 늘 아쉬움으로 남았다. 이렇게 쓴 걸로 그만 아쉬워할까 한다. 내가 피아노 오래 배웠다고 해도 잘 쳤을 것 같지 않다. 언젠가 피아노 이야기 써 보고 싶다.

 

 

 

한때는 차갑고 묵직한 건반 위에서 열 손가락이 춤 추려 했지,

지금 내 손은 덜 차갑고 가벼운 컴퓨터 자판 위에서 때때로 춤추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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