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 다시 벚꽃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62
미야베 미유키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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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이 피어날 때쯤 이 책을 만났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 제목에 벚꽃이 들어가서. 단순한 생각이구나. 우리나라에 벚꽃이 필 때 이 책을 본 사람은 없겠다. 벚꽃이 지고 난 다음에 책이 나왔을 테니까. 시간이 가면 잊어버릴 테니까 다른 사람이 썼다 해도 나도 써야겠다. 무엇이냐 하면 본래 제목 이야기다. 본래 제목 ‘사쿠라호사라(桜ほうさら, 벚꽃박죽)’는 “이런 일 저런 일 온갖 일이 벌어져서 큰일났다 난리났다”는 뜻으로 고슈 지방에서 말하는 ‘사사라호사라(ささらほうさら, 뒤죽박죽)’를 응용한 것이다. 몇해 전에 이 책 제목 봤을 때 무슨 뜻일까 했는데. 일본에도 지방에서 쓰는 말(사투리)이 많다. 나도 잘 모르지만. 표준말은 일본 도쿄에서 쓰는 말이겠지. 우리나라는 사투리가 많이 사라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텔레비전 방송에서는 거의 서울에서 쓰는 말을 쓰니까. 지방에서 만드는 방송에서도 사투리 거의 안 쓰겠지. 지방 방송에서는 사투리 쓰면 괜찮을 것 같은데. 언젠가 일본 드라마에서 사투리로 쓰는 말과 표준말 뜻이 달랐던 게 나왔다. 억양이 조금 다르고 같은 말 쓰기도 하지만 발음이 같은 말이 다른 뜻이 되기도 하다니 재미있다. 우리나라에도 그런 말 있을지도 모를 텐데. 우리나라 사람도 뜻 알기 어려운 말은 제주도 말이겠다.

 

흔히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해서 남보다 식구가 더 가깝다는 말을 한다. 이것과는 다른 말, 멀리 있는 식구보다 가까이 사는 이웃사촌이 더 좋다는 말도 있다. 두 가지 말은 다 맞다. 때와 형편에 따라. 피만 생각하면 자기 식구만 챙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웃사촌이라는 말이 있는 거겠지. 몇달 전에 다른 분이 이 책을 보고 쓴 것을 본 적 있다. 그때 어머니가 세번째로 시집을 갔다 해서 아버지가 다른 형제인가 했다. 후루하시 쇼노스케 어머니는 첫번째 혼례에서 남편이 일찍 죽고, 두번째에서는 시어머니와 사이가 나쁘고 아이를 낳지 못해 헤어지고, 세번째는 어머니가 생각하는 것보다 못한 집안 사람과 혼례를 올리고 아들 둘을 낳았다. 쇼노스케 아버지 후루하시 소자에몬은 하급관리(무사)로 뇌물을 받았다는 의심을 받고 그걸 나타내는 문서가 나와 배를 가르고 죽었다. 어머니와 형은 아버지 소자에몬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소심하다 여기고. 누군가는 그런 것을 마음이 깊고 다정하다 말하기도 할 텐데, 보는 사람 마음에 따라 좋은 점이 나쁜 점이 되기도 하는구나. 둘째 아들 쇼노스케는 그런 아버지를 닮았다. 그래선지 어머니는 큰아들을 더 좋아하고 큰아들이 잘되기를 바라고 움직였다. 그 일 때문에 아버지 소자에몬이 죽은 것이기도 하다. 어머니와 형은 아버지가 뇌물을 받았다 믿고 쇼노스케는 아버지가 그런 일 했을 리 없다 생각했다.

 

어머니는 쇼노스케한테 에도에 가서 후루하시 집안을 다시 세울 수 있게 하라 했다. 어머니는 그렇게 알았지만 쇼노스케를 에도로 부른 사카자키 시게히데(도가네 번 대행)는 쇼노스케한테 에도에 있으면서 다른 사람 글씨를 똑같이 쓸 수 있는 사람을 찾게 했다. 그 사람이 쇼노스케 아버지 소자에몬 글씨를 그대로 써서(가짜 문서를 만들어서) 누명을 씌워서다. 그 일은 번 후계자를 둘러싼 싸움 때문에 일어난 거였다. 일본은 높은 사람이든 상인이든 거의 모두 집안 사람이 뒤를 잇는다(없으면 양자를 들이기도 한다). 그렇다고 그 사람이 가진 힘을 높이 산 적이 없는 건 아니겠지. 우리나라도 장남이 집안을 잇기는 하지만 일까지 물려받지는 않는다. 과거시험을 보고 벼슬길에 나갔다. 이건 괜찮은 거 아닌가 싶다(왕은 세습이어서 싸움이 많았겠다). 장인은 소홀하게 대한 건 안 좋았지만. 한 나라에는 좋은 것도 있고 안 좋은 것도 있는 거구나. 일본도 첫째가 뒤를 잇는 게 아니었다면 좀 달랐을지도 모를 텐데. 시대 때문에 생겨난 식구 관계 같은 느낌이 든다. 집안 일을 잇지 못한 둘째는 둘째대로 힘들고. 첫째라고 해서 집안 일 잇는 걸로 만족할까. 더 높은 자리에 앉고 싶은 사람도 있었을 거다. 어머니와 형이 가진 욕심이 죄 없는 아버지를 죽게 만들었구나. 어머니와 형은 자신들과 잘 맞지 않는 아버지를 싫어했지만, 아버지는 그런 두 사람을 넓은 마음으로 감싸안은 것 같다. 그런 아버지 마음을 쇼노스케는 알았겠지.

 

하급 무사 집안 후루하시 쇼노스케 식구들의 엇갈린 마음이 중심 이야기다. 식구여도 마음이 맞지 않을 수 있는 거겠지. 식구는 아니지만 식구처럼 사는 사람도 있다. 도미칸 나가야에서 사는 사람들이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사람들이지만 서로 돕고 산다. 쇼노스케는 다른 사람과 다르게 본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와카는 얼굴 왼쪽과 몸 한쪽이 멍처럼 보였는데, 쇼노스케는 와카를 처음 봤을 때 벚꽃정령이라 여겼다. 쇼노스케는 겉모습보다 와카 마음을 본 건 아닌지. 꿈인지 생시인지 잘 몰랐지만. 친부모가 아닌 걸 알고 집을 나가려고 한 기치. 기치는 어머니가 자신을 엄하게 대하는 건 자신이 친딸이 아니기 때문이다 생각했다. 그러면서 어머니한테 대들면 쫓겨날지도 모른다 여겼다. 와카는 그런 기치한테 어머니와 말하라고 했다. 부모와 자식이 싸운다고 해서 그게 꼭 나쁜 건 아닐 거다. 아무 말 안 하고 속으로만 생각하는 것보다 말하면 서로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조금은 알겠지.

 

이 책을 보다보니 다른 에도시대 소설에서 본 사람이 떠오르기도 했다(<미시마야변조괴담>에 나오는 오치카는 흑백방에서 사람들 이야기를 듣는다. 그 오치카가 떠올랐다). 그것도 미야베 미유키 소설이기 때문이겠다. 나팔꽃 교배해서 새로운 종을 만들었다는 말에서는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 《몽환화》가 생각났다. 식구라 해도 마음이 잘 맞지 않을 수 있다는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미야베 미유키는 《고구레 사진관》에서도 비슷한 말을 했다. 그때는 가까운 사람이라기보다 친척이었지만. 식구기 때문에 모두 받아들여야 한다고 하는데, 정말 그럴까. 그게 어려울 수도 있다는 거 알아야 한다. 그렇다고 아주 버리라는 건 아니다. 버릴 수밖에 없는 일도 일어날 수 있겠지. 여기에서는 쇼노스케가 그렇다. 쇼노스케는 이해하려고 했다. 혼자만 그렇게 생각하면 엇갈리겠다. 식구가 아니어도 서로 돕고 살면 더 낫겠지. 여기에는 남이어도 서로 돕고 살기를 바라는 마음도 담겼다.

 

 

 

희선

 

 

 

 

☆―

 

작은 일, 별거 아닌 일로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 거짓말은 한평생 이어서 할 각오가 있을 때만 하려무나.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는 훈화가 아니었다. 거짓말을 할 작정이면 그 갈고리를 평생 가슴에 박은 채 살겠다고 생각할 때만 해라, 그 정도로 중요한 거짓말일 때만 해라. 그런 이야기였다.  (401쪽)

 

 

쇼노스케는 고향 노사한테 이렇게 배웠다. 모르는 일에 맞닥뜨렸을 때 조바심 치면 안 된다. 모르는 것을 억지로 알겠다고 느닷없이 생선 배 가르듯 하면, 몰랐던 것의 본체가 어디론가 달아나버린다. 따라서 모르는 것과 마주칠 때는 물고기를 수조에서 기르듯 풀어놓고 찬찬히 관찰하는 게 올바른 이해를 얻는 길이다. 쇼노스케는 온갖 공부에 대해 노사의 이 가르침을 마음에 떠올리곤 했다.  (461쪽)

 

 

세상에는 설령 부모 자식 사이라도 서로가 서로를 받아들일 수 없는 경우가 있다. 서로가 서로를 이해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 감정이 엇갈려 서로가 서로를 용서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

 

아무리 상대를 생각해도 그 마음이 통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처지와 신분이 마음의 진위를 뒤바꾸는 경우가 있다. 어떤 이는 소중히 지키는 것을 다른 이는 헌신짝처럼 버리는 경우도 있다.  (60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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