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번째는 역사가 조금 나오기도 한다. 덧붙이는 말(주)이 꽤 긴 것도 있다. 본문보다 그게 더 길 때도 있다. 아프리카에서 미국으로 오게 된 흑인 이야기(이것만 말하다니). 그렇다고 아주 자세한 건 아니다. 거기에 관심 있다면 여기에서 소개하는 책을 봐도 괜찮겠다. 나는 그냥 넘어갔지만. 한번 보면 괜찮겠다 생각한 게 있었는데. 내가 게을러서 그렇다. 두번째는 넓지 않다. 우리나라 대중음악만 다루고 거기에 담긴 여성을 말하니까. 여성이라고 했지만 여성만 말하는 건 아니다. 이 말 밑에도 쓴 것 같다.

 

 

 

 

 

음악으로 말하다

 

  전복과 반전의 순간

  강헌

  돌베개  2015년 06월 29일

 

 

 

 

 

 

 

 

 

 

 

 

 

서로 말이 통하지 않아도 사람을 하나로 만들어주는 게 음악이 아닐까 싶다. 노랫말이 있는 건 어렵다 해도 그 안에 담긴 느낌은 조금 알 수 있겠지. 그렇기는 해도 나도 우리나라 노래를 더 많이 듣기는 했다. 내가 아는 다른 나라 음악 얼마 없다. 라디오 방송(음악캠프)은 오래 들었는데, 음악은 외워도 제목은 잘 외우지 않았다(지금도). 라디오 듣다가 마음에 드는 음악이 나오면 관심 갖고 CD 사는 사람도 있을 텐데. 나는 CD 산 지도 오래되었다. 한동안은 일본음악을 듣기도 했다. 그렇다고 넓게 들은 건 아니고 듣는 것만 들었다. 아직도 라디오 방송에서 일본말로 하는 노래는 나오지 않는다. 전에 한번인가 들은 적 있는데. 왜 이 말로 흘렀을까. 다른 책에서 일본 문화 개방이 나온 걸 봐서 그럴지도. 그거 보고 그런 일도 있었지 했다. 이 책 마지막에서는 일제강점기 때 나온 노래 <사의 찬미>와 <목포의 눈물> 이야기를 한다. 이것도 조금 영향이 있는 거겠지. 지금은 텔레비전 안 봐서 어떤 음악이 나오는지 모른다. 어느 때부턴가 아이돌 음악만 나온다는 말을 들었는데, 여전히 그럴 것 같기도 하다. 그건 오래 가는구나.

 

이 책을 쓴 강헌은 대중음악 평론가다. 그런 말 본 것 같기도 한데. 책은 이게 처음이라고 한다. 잡지 같은 데도 글쓰지 않았을까. 그런 건 썼을 것 같은데. 책 제목을 보고 음악을 생각할 수 있을까. 나도 책 제목 처음 봤을 때 무슨 책일까 했다. 음악과 함께 역사를 말한다. 긴 역사는 아니고 어떤 음악이 나온 배경이라고 할까. 그것을 참 자세하게 썼다(이건 주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는 건지도). 이런 건 볼 때는 재미있는데 정리하는 건 어렵다. 여러 번 보고 익숙해지면 모를까. 내가 책 한권을 여러 번 본 적 있던가, 없다. 미국 재즈에서 로큰롤, 우리나라 통기타 음악과 밴드 음악, 클래식에서 이름을 남긴 모차르트 베토벤, <사의 찬미>와 <목포의 눈물>의 음모. 트럼펫을 연주하고 노래를 해서 많은 사람이 좋아한 루이 암스트롱, 영화 <굿모닝 베트남>에 나온 노래가 루이 암스트롱 노래던가. 재즈는 규칙이 없는 음악이다. 재즈가 미국에서 널리 퍼진 건 30년 동안이고 그 뒤에는 예술로 흘러갔다. 미국에 중산층이 나타나고 아이들 세상은 지옥이었다. 우리나라는 지금도 다르지 않은 것 같은데. 학교에서는 공부해야 한다고 했겠지. 이때 엘비스 프레슬리가 나와서 어른 세계를 무너뜨렸다. 그 뒤에 비틀스와 롤링 스톤스가 나왔다. 비틀스는 처음에 어른 마음에 들게 하려고 옷을 얌전하게 입었다. 롤링 스톤스는 비틀스와는 다르게 처음부터 불량스럽게 나왔다. 비틀스가 언제까지고 모범생 모습을 보여주지는 않았다. 시간이 조금 흐른 뒤에는 본성을 드러냈다. 매니저가 죽고는 비틀스는 흩어졌다. 매니저가 약물에 중독되지 않고 살았다면 비틀스 음악은 더 나왔을까.

 

맨 처음에 말하는 건 흑인이 하는 음악을 백인이 좋아하고 나중에는 백인이 하는 건데. 이런 말을 안 하다니. 미국에서 저항 음악이 로큰롤이었다면 우리나라에서는 통기타 음악이었다. 로큰롤은 돈이 많이 들어서 그렇게 됐다는 말 맞는 것 같기도 하다. 우리나라는 번안곡을 많이 했다. 1969년에 한대수가 나타나고 그 뒤에는 우리나라 사람도 곡을 썼다. 김민기가 만든 <아침이슬>을 양희은이 불렀다. 김민기는 다른 생각없이 만들었는데 <아침이슬>은 운동권 노래가 되었다. 지금도 어떤 노래든 다 방송에 나오는 건 아니지만, 예전에는 검열이 더 심했다. 이건 일제강점기 때부터 이어져온 거였다. 그럴 수가. 박정희는 자신이 음악을 만들고 노랫말도 써서 그것을 퍼뜨렸다. 지금 생각하면 어이없게 보이지만 그게 우리나라 사람한테 이런저런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싶다. 우리나라가 친일을 깨끗하게 정리하지 못한 건 이승만과 박정희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 음악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은 신중현이다. 신중현은 미8군 부대에서 음악을 했다. 록밴드를 했는데 그게 잘 안 되고 다른 사람한테 준 음악이 잘 되었다. 밴드로 한 음악 가운데 잘된 거 있다. <미인>이다. 강헌은 이 <미인>을 우리나라 사람이 왜 좋아하는지 재미있게 분석했다.

 

모차르트와 베토벤 이야기도 재미있다. 살리에리가 모차르트를 시샘한 이야기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니. 음악 만들고 지금도 이름이 알려져 있어서 나름대로 잘 살지 않았을까 했는데, 모차르트와 베토벤은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다. 모차르트가 더 힘들었다. 모차르트보다 열네해 늦게 태어난 베토벤은 좀 나았다. 베토벤은 아버지 때문에 어릴 때 힘들었다. 베토벤 성격이 별로 안 좋았다니. 어릴 때 아버지한테 맞아서 그렇게 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모차르트와 베토벤은 귀족한테 인정받고 싶어하면서도 반감을 가졌다. 베토벤은 귀족만 듣는 음악이 아닌 곡을 썼다. 이렇게밖에 못 쓰다니. 나도 조선이 근대로 들어가려고 할 때 일본 때문에 그게 잘 안 됐다는 생각이 든다. 명성황후는 일본한테 죽임 당했다고만 생각했다.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났을 때 청나라를 부른 게 조선정부라고만 알았는데 그게 명성황후였다는 말이 나온다. 청나라 군대가 조선에 들어와서 일본에서 군대를 조선에 보냈다. 힘을 가지고 위에 있는 사람은 자기 이익보다 먼저 백성을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 그렇게 생각하고 정치를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러지 않는 사람이 더 많은 듯하다.

 

윤심덕과 김우진이 함께 목숨을 끊었다는 이야기는 전에 잠깐 들었다. 그런데 그게 누군가 꾸민 일이라니. 이룰 수 없는 사랑 때문에 죽기로 했다는 말을 보고, 아내가 있다고 다른 여자와 죽는 사람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에는 그런 게 퍼지기도 했다지만. 정말 축음기를 팔기 위해 그 일을 꾸몄을까. 그때 축음기는 일본 정부가 만들었다고 한다. <목포의 눈물>에 담긴 건, 일본 지배를 받고 서른해가 지나서 나온 노래로 우리나라 사람한테 엔카를 익숙하게 만든 거다. 트로트가 엔카에서 온 게 아니다 말하기도 한다는 말을 보니,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문화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거니까. 일제강점기 때 일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거 많을 것 같다.

 

 

 

*더하는 말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글을 다른 데서 조금 봤는데, 그것만으로는 모자란 듯한 느낌이다. 청나라 군대는 일본 군대와 싸운 건가. 일본과 청이 조선을 두고 싸운 것이 청일전쟁이구나. 일본과 조선 관군은 농민과 싸우고. 동학농민혁명은 기억하지만 자세한 건 모른다. 농민만이 아니고 다른 계층 사람도 함께 했다면 더 나았을 텐데 싶기도 하다(동학을 한 사람은 농민이 아니었을지도). 농민한테 관심을 둔 사람이 얼마나 있었을까. 농민은 이 땅을 살아가는 백성인데.

 

 

 

 

 

 

 

시간은 흐르고 마음은 바뀌고

 

 

  이영미

  대한민국역사박물관  2014년 12월 31일

 

 

 

 

 

 

 

 

 

 

 

 

 

대중음악은 언제부터 생겼다고 해야 할까. 서양뿐 아니라 우리나라도 음악을 즐길 수 있는 건 높은 사람뿐이었다. 음악을 즐기는 사람은 그랬지만 그 음악을 하는 사람은 낮잡아 보았다. 그래도 서양은 잘 하면 잘되기도 했다고 한다. 대중음악은 많은 사람이 들을 수 있을 때 생겨났다고 해야겠지. 그렇다고 서민이 음악을 아주 몰랐던 건 아닐 거다. 그건 지역마다 달랐겠지(이때 생각한 건 민요, 풍물놀이가 있다는 건 나중에 생각났다). 음악은 널리 퍼지기에 어려운 면이 있다. 조금씩 바뀔 수도 있을 테니까. 이야기도 입에서 입으로 퍼지면 조금씩 바뀌는데(지금은 정보 전달이 쉬워서 다르겠다). 이 책 제목에 ‘대중가요’라는 말이 있는 걸 처음에는 그런가 보다 했는데, 이 책보다 먼저 본 《전복과 반전의 순간》(강헌) 때문에 ‘가요’라는 말 괜찮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것을 먼저 본 게 나았는지 낫지 않았는지. 거기에서 가요 대신 어떤 말을 쓰면 괜찮은지 말했을지도 모르는데 생각나지 않는다. 대중음악이었는지, 유행가였는지. 가요라는 말은 일제강점기 때 일본 사람이 ‘국민가요’라는 말을 쓰고 여기에서 국민만 빼고 가요가 되었다고 한다. 이 말 하니 국민학교가 생각난다. 일본은 소학교라고 하면서 우리나라에서는 국민학교라고 하다니. 우리도 소학교라고 한 때가 있었을지도. 국민학교는 이제 초등학교로 바뀌었지만 일제강점기 때 것들을 그대로 쓰는 거 많겠지. 가요는 바뀌기 어려울지도.

 

축음기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이 얼마 없었을 때 기생 두 사람이 <희망가>를 노래했다. 우리나라 대중음악에서 첫번째라 할 수 있는 건 윤심덕의 <사의 찬미>다. 대중음악이 아닌 그 안에 담긴 여성인데. 일본 엔카가 우리나라에서는 트로트가 되고 그 첫번째가 이난영이 노래한 <목포의 눈물>이다. 일제강점기 때는 음반극이라는 것도 나왔는데 거기에 나온 여성은 기생일 때가 많았다. 음반극이라는 말을 보니, 이제 우리나라에는 나오지 않지만 일본에는 그것과 비슷한 게 아직도 나온다는 게 생각났다. 오디오북과 비슷하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일본에서는 만화나 소설을 성우가 연기한 CD를 내기도 한다. 그것은 음반극이 그렇게 바뀐 게 아닌가 싶다. 일본에는 그런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직 있어서 만드는 건지도. 우리나라에도 성우가 연기한 CD 나올까(우리나라 연기자 백 사람이 우리 단편소설을 읽었다고 하는데 그건 CD로 나왔을까. 책을 그냥 읽는 게 아니고 연기한다). 내가 잘 모르는 것뿐일지도. 그때 기생인 사람이 많아서 기생이 나온 건 아니고 신파성을 나타내기에 기생을 쓰는 게 쉬웠기 때문이다. 서양문물은 일본을 지나서 우리나라에 들어왔다. 그게 그렇게 좋은 게 아니었다는 생각을 《전복과 반전의 순간》을 보고 느꼈다. 영어도 일본말식으로 알았다. 그때 우라나라 사람이 공부하러 간 곳이 일본일 때가 많았기 때문이겠다.

 

대중음악이라는 말이 있지만 그것만 말하지 않고 그때 사회가 어땠는지도 말한다. 일제강점기 때 여자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가난한 집안 때문에 기생이 된 사람이 많았던가보다. 일본도 가난이나 빚 때문에 딸을 기생(게이샤)으로 팔 때 많았는데. 그런 일이 일본이나 우리나라에만 있었던 건 아닐지도 모르겠다. 전쟁이 일어나도 가난해도 여성은 살기 어렵구나. 시간이 흐르고 공부를 한 신여성이 나타나 여성은 경리, 마네킹 걸, 전화교환수를 하게 되었다. 교사, 간호사도 있었겠지만 노래에는 나오지 않았구나. 그전까지 여성은 떠나가는 남성을 보고 울기만 하고 자기 마음을 나타내지 못했는데, 여자가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다는 아니지만. 우리나라가 일본 지배에서 벗어나고 그것을 제대로 정리도 하지 못했는데 전쟁이 일어났다. 이때 일제강점기 때 노래를 조금 바꿔서 했다고 한다. 태평양전쟁과 6·25를 헷갈려하는 사람도 있단다. 한국전쟁이 일어났을 때는 남편이 죽은 여자가 많았다. 그 사람들 가운데는 아이를 키우고 살기 위해 양공주가 되기도 했다. 1960년대에는 가정의 경영자로서 현모양처를 바랐다.

 

내가 잘 아는 건 아니지만 1960년대까지 남성이 바라는 여성이 노래에 담긴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런 것도 있고 사람들이 무엇을 좋아하고 바라는지 그것을 잘 잡아내서 썼겠지. 1970년대에는 순수한 여성을 바랐다. 백치미라고 할까. 그런데 청바지와 긴 생머리거나 짧은 머리를 한 여성도 나타났다. 이 여성은 남성이 할 수 있는 것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첫세대였다. 1970년대에는 어머니한테 느끼는 죄책감에서 벗어났다고 한다. 그 뒤에도 어머니한테 잘못했다고 한 노래 있는 것 같은데. 1970년대에는 많은 사람이 서울로 갔다. 거기에는 여성도 많았다. 공장에서 일하는. 서울에 가면 모두 부자가 된다 생각했을지도. 이건 지금도 그렇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공장에서는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일해야 했다. 우리나라가 좀 잘사는 사라에 들어가는 지금도 여전히 우리나라 사람은 일 많이 한다. 일이 좋아서 많이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어쩔 수 없이 하는 사람도 있을 거다. 1970년대 대중음악에는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 이야기를 하기 어려웠겠지. 민중음악이라고 할까 그런 게 생겨난 건 1970년대일까. 1980년대는 남자가 여린 감성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1990~2000년대에는 또 바뀐다. 그때는 음반이 잘되게 하려고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것을 잡아내서 노래를 만들었다. 음악을 만든 건 남성이고 노래하는 건 여성이었다. 그전에 아주 없었던 건 아니겠지만 1990년대에는 음악을 만드는 여성이 나타났다. 여자가 노래한다고 여자 마음이고 남자가 노래한다고 남자 마음일까. 엄마 인상도 많이 바뀌었다. 말 잘 듣는 아이보다 반항하는 아이가 나왔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었을지도. 아이가 하나밖에 없는 사람이 많아졌으니 엄마 관심은 그 아이한테만 쏠릴 거다. 이건 지금도 다르지 않구나.

 

많은 사람이 듣는 음악에서 그 시대를 읽을 수 있다니 재미있다. 여성뿐 아니라 다른 주제로도 볼 수 있을 거다. 일제강점기를 지날 때는 돈 이야기가 나오고, 1970년대에는 서울로 가고 싶어하는 사람들 꿈이 나타나기도 했다. 대중음악도 산업화 때문에 많이 바뀌었겠지. 많은 사람이 아는 음악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잘 보이지 않는 데서 자기만의 음악을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것도 있다는 거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도 그런 거 찾아서 듣는 거 아닌데 이런 말을 했다.

 

 

 

*더하는 말

 

다른 말보다 늘 더하다니, 하지 않아도 될 말일지도 모를 텐데. 이 책 제목 보고는 한번 보면 괜찮겠다 생각하고 봤다. 이 책도 《전복과 반전의 순간》처럼 볼 때는 재미있었다. 연대별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는데 내가 그걸 잘 기억하지 못해서 별로 못 썼다. 보기를 하나라도 써야 했는데. 노래도 시대와 사람들이 바라는 것에 따라 바뀌겠지. 한동안 남성이 바라는 여성을 노래에 많이 담았다. 지금은 음악이나 노랫말을 쓰는 여성이 늘어나서 좀 달라졌겠지.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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