死者のための音樂 (角川文庫) (單行本)
山白朝子 / メディアファクトリ-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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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사람을 위한 음악

야마시로 아사코(오츠이치)

 

 

 

여기 실린 이야기들을 뭐라고 말하면 좋을까요. 괴담(괴상한 이야기) 기담(이상야릇하고 재미나는 이야기). 괴담과 기담 뜻은 조금 다른 것 같기도 하네요. 괴담은 좀 무서운 이야기일 것 같은데, 그런 이야기도 이 안에 있습니다. 괴담과 기담이 섞여있다고 하면 괜찮겠네요. 저는 이런 이야기로 말하려고 하는 게 뭔지 잘 모릅니다. 그러니 사회 현상 때문에 생기고 퍼지는 이야기도 있잖아요. 아이 버릇을 가르치기 위해 어른이 만드는 무서운 이야기도 있네요. 그런 것은 옛날에만 그랬을까요, 지금은 그런 일 없을까요. 아주 없지는 않겠지요. 그런데 제가 그런 이야기를 별로 만나지 못하고 만났다 해도 알아채지 못했을 겁니다. 저는 이야기는 재미있으면 되고 그 안에서 무슨 뜻을 꼭 찾아야 할까 하는 생각을 해서. 말은 이렇게 하지만 책을 보면 작가는 무슨 이야기가 하고 싶었던 걸까 합니다. 작가 가운데는 이 이야기 안에 중요한 걸 담겠어 하고 쓰는 사람도 있겠지만, 사람들이 재미있게 보면 좋겠다 생각하고 쓰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요. 제가 글(이야기)을 많이 써 본 건 아니지만, 써 보니 첫번째 생각보다 거의 두번째 생각으로 바뀌었네요. 이건 지금도 그렇습니다. 떠오르는 게 없어서 거의 못 쓰지만. 어쩌면 이건 제가 이야기를 잘 읽어내지 못해서 하는 변명인지도 모르겠네요.

 

먼저 이 작기 이야기를 해야겠네요. 잘 모르지만. 전에도 한번 이 작가 책 만났습니다. 길을 떠나면 길을 잃고 여행책을 쓰는 작가 이즈미 로안이 나오는 《엠브리오 기담》입니다. 그 책을 봐서 이 책 보고 싶다 생각한 겁니다. 아쉽게도 여기에는 이즈미 로안이 나오지 않습니다. 나오는 거였다면 더 좋았을 텐데. 이즈미 로안이 한번쯤 가 봤을 것 같은 곳에서 온 사람도 있는 듯합니다. 발음하기 어려운 이름이라고 해서 그런 생각을 했네요. 이 작가 본래 이름은 아다치 히로타카로 제가 조금 본 책은 오츠이치라는 이름으로 썼습니다(전에도 말했군요). 이 책을 보니 오츠이치라는 이름으로 쓴 이야기가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진짜 알 수 없었던 건 《ZOO》인데. 그건 지금 봐도 그럴 듯합니다. 거기에 단편이 실렸는데, 그 가운데서 한편은 여러 사람이 누군가한테 잡히고 그 사람들은 알 수 없는 곳에 갇힙니다. 하루에 한 사람씩 죽는 거예요. 그 사람들을 가둔 사람이 죽이는 거겠지요. 방이 여럿이고 위에서 밑으로 내려와요. 이것을 어떻게 알았느냐 하면, 누나와 남동생이 잡히고 갇혔기 때문입니다. 방 옆에는 물이 내려가는 길이 있었습니다. 몸집 작은 남동생은 그곳을 지나서 다른 방에 갇힌 사람을 만납니다. 남매 방 차례가 왔을 때 누나가 둘을 가둔 사람을 막고 남동생이 그곳에서 빠져나가게 합니다. 이 이야기 생각하니 여기에 나온 <도깨비 이야기>와 비슷한 것 같기도 하네요. 여기에서는 남동생이 누나와 마을 사람을 위해 도깨비를 다른 곳으로 이끌지만.

 

작가 이야기하다 다른 말을 했네요. 더할 말은 없습니다. <도깨비 이야기>에서 도깨비는 무엇일까 싶기도 합니다. 그러고 보니 도깨비가 나타난 일을 벌받는 거다고 했네요. 그 마을 사람들은 전쟁으로 죽은 사람 갑옷과 검을 팔아서 돈을 얻었습니다. 죽은 사람이 모여 도깨비가 되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네요. 미야베 미유키 소설에도 비슷한 이야기 있었군요. 제목은 잊었지만. “남한테 친절함을 베풀렴. 약한 사람을 못 본 척하면 안 돼. 저주받은 이 땅이 바뀌려면 그것 말고는 분명 아무것도 없어.” (125쪽)와 같은 말을 할아버지 어머니가 했습니다. 증조할머니네요. 남매는 쌍둥이로 남동생은 자신이 괴롭힘 당해도 남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증조할머니 말을 실천한 게 남동생이 아닐지. 다른 사람을 위해 경을 읽고 다녀도 강도한테 죽임 당하기도 합니다. 남의 것을 빼앗으려고 하는 사람이 나쁜 거네요. 맨 처음 이야기 <긴 여행의 시작>은 아버지와 딸에서 어머니와 아들 이야기가 되는데, 그건 딸을 생각한 아버지 때문일까요(아버지는 강도한테 죽임 당하고 딸은 그곳에서 달아났는데, 얼마 뒤 아이를 가졌다는 것을 압니다. 딸한테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강도가 아버지를 죽인 칼에 찔렸을 뿐입니다. 낳은 아이는 아버지와 많이 닮고 여러가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우물을 내려가다>는 진짜 우물 밑을 내려가서 살게 된 사람 이야기예요. 남자는 죽을 때가 다가와서 자신이 왜 그런 곳에서 사는지 자기 아이들한테 이야기하는 건지도. 아니 자신보다 아이들이 왜 어둠속에서 살게 됐는지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곳에서 산 건 사랑 때문이고, 아이들이 언젠가 해가 뜨는 곳으로 나가기를 바라고 자기 이야기를 한 것도 사랑 때문이네요.

 

다음에 나오는 <황금 공장>은 어쩐지 무섭기도 하네요. 공장이 커다란 벌레라는 것처럼 말하거든요. 마을 공장(산업폐기물 처리장)에서 공장 사람 모르게 한 곳에서 정화되지 않은 액체가 숲으로 흘러나왔습니다. 그것 때문에 곤충이나 살아있는 것이 황금이 됐습니다. 공장이 문을 닫자 황금이 됐던 곤충이 본래대로 돌아와요. 벌레나 작은 동물만 황금이 된 건 아니예요. 황금이 된 곤충을 처음 본 남자아이 엄마는 바람 피우는 남편과 상대 여자를 꾀어내어 황금이 되게 합니다. 그리고 그 황금을 조각냅니다. 황금에서 본래대로 돌아온 걸 생각하면 끔찍하지요. 많은 사람이 공장에서 흘러나오는 오염된 액체 때문에 살아있는 게 황금이 된다는 걸 알았다면 큰 소동이 일어났겠습니다. <끝내지 못한 조각>에도 신기한 여자아이가 나오는군요. 여자아이는 자신이 저지른 죄를 갚기 위해 불상 만들기를 배우려 합니다. 여자아이가 조각한 것은 진짜처럼 움직였습니다. 잠도 안 자고 먹지도 않고 여자아이는 석가여래상을 조각합니다. 조금만 하면 끝나는데 그만 죽습니다. 여자아이가 조각을 끝냈다면 석가여래상도 살아서 움직였을까요. 그런 일도 일어나면 안 될 것 같네요.

 

여섯번째 <새와 패프러츠키스 현상에 대하여>에서는 아버지와 여자아이가 날개 다친 큰 새를 치료한 뒤 같이 삽니다. 새는 까마귀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까마귀는 아니었습니다. 새는 여자아이와 아버지 마음을 잘 알아서 필요한 것을 갖다줬습니다. 그렇게 산 지 세해 뒤 여자아이가 할머니 집에 갔을 때 집에 도둑이 들고 아버지는 도둑한테 죽임 당합니다. 새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여자아이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가져다줍니다. 여자아이는 새가 물건을 떨어뜨리는 것을 패프러츠키스(Fafrotskies) 현상일까 생각합니다. 이것은 하늘에서 생물이나 물건이 떨어지는 일을 뜻하는 말로 무라카미 하루키도 《해변의 카프카》에서 썼네요. 여자아이는 새가 자신을 키운다고 여깁니다. 여자아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큰아버지가 찾아온 날 여자아이는 죽은 사람이 자신의 아버지가 아닌 큰아버지였다면 좋았을 텐데 생각해요. 그날 밤 큰아버지 집에서 큰아버지가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는 전화가 오고, 새가 큰아버지가 끼었던 반지와 심장을 가져다줍니다. 그러고 보니 이때부터 여자아이는 남과 관계를 맺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네요. 자신이 누군가를 미워하면 같은 일이 또 일어날까봐. 여자아이가 가장 미워한 사람은 아버지를 죽인 도둑인데, 그 사람은 뜻밖의 사람이었네요. 아니 뜻밖은 아닐지도. 이건 추리소설 면도 갖고 있군요. 그 새는 대체 뭐였을까요. 죽은 엄마가 새가 되어 나타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잠깐 했지만. 엄마가 죽은 건 시간이 좀 지나서 아닌 것 같기도 합니다. 왜 이런 생각을 했느냐면 여자아이 아버지를 새가 참 좋아해서예요.

 

마지막은 이 책 제목과 같은 <죽은 사람을 위한 음악>이네요. 이것은 어머니가 딸을 생각하는 이야기예요. 어머니와 딸이 주고받는 이야기기도 합니다. 사람이 죽음을 맞을 때 음악이 들릴까요. 귀가 잘 들리지 않는 어머니는 어렸을 때 물에 빠져서 죽을 뻔했는데 그때 아름다운 음악소리를 들었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그 음악이 무엇인지 찾기 위해 많은 음악을 듣지만 찾지 못하고, 아버지와 함께 탄 차가 사고가 났을 때 그 음악을 들어요. 정말 사람이 죽음을 맞을 때 들을 수 있는 음악일지도. 그때 어머니는 죽지 않고, 딸을 낳아 기른 다음에 그 음악을 듣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합니다. 어머니가 깨어났는지 어땠는지 모르겠군요. 어머니는 딸한테 그 음악을 남겨뒀습니다. 똑같지 않을지 몰라도 생각나는 것을 악보에 적었습니다. 그건 딸을 위해서죠. 딸이 아기였을 때는 자장가로 들려줬다는군요. 죽을 때 아름다운 음악을 듣는다면 무섭지 않을지도 모르죠.

 

여기 실린 이야기를 하나로 말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저는 그게 어렵군요.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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