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신의 7일 이사카 코타로 사신 시리즈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소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4년 7월
평점 :
절판


 

 

소설은 우리한테 어떤 일을 할까. 가장 먼저 심심할 때 보면 덜 심심하다. ‘소설을 시간 때우기 위해 본다’고 하는 말 싫어하는데 이 말을 하다니. 심심할 때만 책을 보는 건 아니다. 우울할 때 책을 보면 우울함이 조금 사라진다. 이것은 소설이 재미있고 없고와 상관없이 활자가 그런 일을 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소설은 생각하고 상상하게 한다. 아쉽게도 나는 좋은 생각을 떠올리지 못할 때가 많지만. 실제 없는 것을 보여주기도 한다. 어쩌면 우리 눈에 보이지 않아서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고 실제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 책 《사신의 7일》에는 현실에서 만나기 어려운 사신이 나온다. 책 제목에서는 ‘사신’이라 하지만, 책 속에는 사신이라는 말은 나오지 않는다. 치바는 정보부에서 죽을 사람을 가르쳐주면 그 사람을 조사한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전설의 고향’에서 저승 차사(사자)라고 했다. 검정 두루마기와 검정 입술이 생각난다. ‘전설의 고향’에서 본 저승 차사는 거의 남자였던 것 같다. 그런 것에 성이 나뉘었을 것 같지 않지만, 왜 남자만 그것을 했을까. 남자 모습이라고 해야겠다. 이 저승 차사와 치바 비슷한 게 하나 있다. 그것은 옷이 검다는 거다.

 

몇해 전에 《사신 치바》를 보았다. 시간이 흘러서 그 책 내용은 거의 잊어버렸다. 생각나는 건 이름이 치바라는 것과 음악을 좋아하는 것 정도다. 치바만 별나게 음악을 좋아하는가 했는데, 앞으로 죽을 사람 조사를 하는 치바 동료도 다 음악을 좋아했다. 음악은 가리지 않고 다 좋아한다. 음악을 듣기 어려운 때도 치바는 ‘음악 들을 수 없을까’ 하는 말을 해서, 그 말을 들은 사람이 어이없어하기도 한다. 마음속으로는 짜증낸다. 저 사람은 이런 때 잘도 음악을 듣고 싶어하는구나 하고. 책 속에 나오는 사람은 치바가 어떤 일을 하는지 모른다. 어딘가에서는 사신이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사람 앞에 나타나서는 남은 시간을 잘 보내라고도 하는데 치바는 아니다. 치바는 이레 동안 사람을 조사하고 관찰해서 그 사람한테 죽음을 줄지 주지 않을지 결정한다. 지난번에 봤을 때는 딱 한번 ‘보류’였고, 거의 다 죽음을 맞게 했다. 결국 죽음을 줄 텐데 왜 이레 동안 조사할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치바 동료는 조사 대상을 잠깐 만나고 모두 죽음을 준다. 치바는 그런 동료들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결과가 정해져 있다 해도 치바는 성실하게 사람을 조사한다. 이것은 치바가 저도 모르게 곧 죽을 사람을 이레 동안만이라도 힘껏 살게 이끄는 일 같다.

 

이번에 치바가 만나는 사람은 한해 전에 하나뿐인 딸 나쓰미를 잃은 야마노베 료와 야마노베 마키다. 치바가 야마노베 집에 온 날 비가 내리고(이 말은 어디에 넣어야 할지 몰라서 여기에 넣었는데 뜬금없구나. 치바가 일을 할 때면 늘 비가 내린다고 한다), 야마노베 딸을 죽인 혼조 다카시가 재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고 풀려났다. 치바는 정보를 가지고 왔다고 하고 야마노베와는 유치원 때 친구라고 했다. 야마노베가 그 말을 다 믿은 건 아닌 듯하다. 야마노베는 작가로 텔레비전 방송에도 나간 적이 있어서 사람들한테 이름이 잘 알려졌다. 집앞에는 기자들이 있었다. 거기에서 치바는 기자와는 다르게 보였다. 그래서 야마노베는 치바를 집안에 들였다. 치바는 야마노베한테 복수할 거지 한다. 이런 말 들으면 마음이 들킨 것 같아 가슴이 철렁할 것 같은데 야마노베 부부는 침착했다. 치바가 진지하게 말해서, 아니 아무렇지도 않게 말해서. 치바는 에도시대에는 원수를 갚는 게 인정받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거기에 자식과 배우자는 들어가지 않았다. 에도시대에 복잡한 절차를 밟아 원수를 찾아내 죽인 사람 많았을까. 그때는 그렇다 해도 지금은 살인을 살인으로 갚을 수 없다. 치바는 사람 일에 관심 없다. 복수를 돕지 않아도 야마노베 부부와 함께 움직인다.

 

자식이 부모보다 먼저 죽어도 슬픔이 클 텐데, 누군가한테 자식 목숨을 빼앗기면 그때는 슬픔보다 화가 더 클 듯하다. 이렇게 말하지만 나는 자식을 잃은 부모 마음을 다 안다고 말하기 어렵다. 야마노베 부부가 복수를 결심한 것은 나쓰미를 죽인 혼조 다카시가 보통 사람이 아닌 사이코패스기 때문인 듯하다. 여기에서는 스물다섯 가운데서 한사람은 사이코패스라고 하는데, 다른 책에서는 소시오패스라고 했다. 소시오패스, 사이코패스 어떻게 할 수 없는 건 마찬가지구나. 사람을 죽인 사람이 자신이 저지른 일을 깨닫고 용서를 빌어도 그 말을 들을까 말까 할 텐데, 혼조 다카시는 야마노베 부부를 큰 슬픔에 빠뜨리고 절망하게 하려 했다. 야마노베 부부 두 사람만 혼조 다카시를 찾아갔다면 혼조 다카시가 친 덫에 그대로 걸려들었을 거다. 하지만 거기에는 치바가 있었다. 겉모습은 사람이지만 실제는 사람이 아닌 사신. 치바가 있어서 혼조 다카시 계획은 틀어지고 야마노베 부부는 세 사람을 구했다. 치바 식으로 말하면 그 사람들은 아직 죽을 때가 아니어서일지도 모르겠다.

 

잠깐 잘못된 표지판 이야기가 나온다. 이것은 정보부에서 사람을 빨리 죽게 해서 균형이 맞지 않는다는 이야기로 이어졌다. 균형을 잡으려고 사람 목숨을 돌려주는 일을 한다고. 이것은 어떻게 생각하면 좋을까. 실수하면 제대로 사과하고 바로잡아야 한다. 목숨을 빼앗았을 때는 사과하기 어렵겠다. 치바는 그 일을 별로 좋게 여기지 않았다. 익숙하지 않은 제도를 갑자기 하면 다른 문제가 일어난다고. 우리나라에서도 표지판 잘못된 거 알면 벌금 낸 사람한테 그 돈 돌려줄까. 그렇게 안 하고 아무도 모르게 고칠 것 같다. 다른 것은 잘못해도 바로잡을 수 있지만 사람 목숨과 관계있는 건 잘못하면 안 된다. 치바는 정보부에서 전화를 받고 지금 조사하는 사람 수명을 늘려도 된다는 말을 듣는다. 나라면 그렇게 해주고 싶을 텐데. 한해 전에 딸을 잃고 자신도 죽는다면 억울할 듯해서. 다시 생각하니 죽은 사람은 자신이 죽은 걸 모르겠다. 남은 사람이 이제 없는 사람을 생각하고 슬퍼하는 거지.

 

야마노베는 치바를 만나고 가끔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생각한다. 야마노베 아버지는 자신이 죽는 게 무섭고 아들이 죽는 게 무서워서 달아났다. 딸 죽음을 경험한 야마노베가 더 용기있는 걸까. 아니 그건 갑자기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그랬겠다. 복수하겠다는 마음이 지금까지 살게 한 건지도. 야마노베 자신이 죽을 것을 몰랐지만 저도 모르게 느낀 건 아닐까 싶다. 아버지를 자꾸 생각하는 걸 보면. 죽음은 누구한테나 찾아온다. 사람은 죽기에 열심히 살아간다. 야마노베 아버지도 언젠가 죽으니까 그날그날을 잡으려고 했는데 거기에 식구는 없었다. 자신이 나이 들어가면서, 아들이 나이 먹는 모습은 보기 어려웠을지도. 죽을 때가 되어서는 그런 이야기를 야마노베한테 한다. 야마노베는 아버지 때문에 죽는 게 무섭지 않다고 느낀다. 누구한테나 찾아오는 죽음, 이것은 사이코패스 소시오패스한테도 찾아온다. 치바는 혼자 다카시가 다른 사람이 자신을 잊는 것을 두려워하는 게 아닌가 했다. 자기 이름을 세상에 남기기 위해 큰일을 저지른 사람과 비슷할까.

 

이 책을 다 보고는 어떤 일을 당하면 그대로 갚아도 된다고 말하는 걸까 했다. 그런 말을 하려고 이 이야기를 쓴 건 아니겠지. 그대로 갚는다고 해도 죽은 딸이 돌아오고 기뻐하지 않으니까. 복수도 산 사람을 위한 것이구나. 자식을 지키지 못한 죄책감 때문에 하려고 하는지도. 이런 이야기를 보고 죄를 짓고 법망을 피해서 빠져나가는 사람을 잘 잡아달라, 일지도. 죽음은 우리 가까이에 있고 낯설지 않은 얼굴을 하고 찾아온다. 바로 치바. 치바가 사람 일은 자신과 상관없다는 것처럼 말했지만 야마노베를 도와주었다. 일을 빨리 끝내고 음악을 듣기 위해서다 말했지만. 치바 마음 깊은 곳에는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이 아주 조금은 있을 거다. 일천년 넘게 이 일을 하는 걸 보면. 야마노베는 지난 한해는 괴롭게 보냈지만 치바와 함께 한 한주는 어느 때보다 잘 보냈다. 즐거웠다고 했다. 치바가 사람한테 죽음을 주는 일을 하지만 마지막 이레는 잘 보내게 하는 듯하다. 이레 동안 하는 조사 치바는 앞으로도 성실하게 하겠지. 결과가 같아도 그것을 하는 시간을 잘 보낸다면 그걸로 괜찮겠다. 결과는 나중에 생각하기다.

 

 

 

희선

 

 

 

 

☆―

 

“괜찮을 리가 없잖아요. 다리 살이 이렇게 너덜너덜해졌는데. 이제 눈도 같은 꼴이 날 거예요. 앞으로 살아가면서 앞이 하나도 안 보이게 된다는 건 무서운 일입니다. 차라리 죽는 게 나을지도 몰라요.”

 

“아니, 그건 아니야.”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치바 씨가 대꾸했다. 감정이 담겨있지 않은, 굉장히 안정된 말투였다. “사는 것과 죽는 것은 천지 차이야. 눈이 안 보이게 된다고 해도 그건 죽는 것과는 거의 상관없어.”  (274쪽)

 

 

“평화롭게 산다는 건 어려운 일이지만.”

 

“그러게. 살아간다는 건 힘든 일이나 무서운 일이 이어지는 거니까. 죽는다는 건 그 가운데서 가장 큰 거잖아.”

 

“가장 큰 거?”

 

“죽음이 가장 무엇운 일 아닐까. 게다가 무섭게도 그 가장 무서운 죽음은 누구한테든 반드시 찾아와.”

 

언젠가 우리는 죽는다. 그건 결코 피할 수 없는 ‘절대’ 법칙이다. 다시 말해 어떤 사람이든, 어떤 아이든 반드시, 죽음을 맞이할 때가 온다. 어떻게 살든, 성공했든 실패했든 반드시 ‘가장 무서운 일’이 찾아온다.

 

“그래서 네 아버지, 그것 때문에 애썼어.”

 

“무엇 때문에?”

 

“언젠가 죽는 때가 찾아오지만, 그건 결코 무서운 게 아니다는 걸 가르쳐주기 위해서.”  (492~49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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