츠나구 - 죽은 자와 산 자의 고리
츠지무라 미즈키 지음, 김선영 옮김 / 문학사상사 / 2011년 7월
평점 :
절판


 

 

츠나구 : 죽은 사람과 산 사람을 만나게 해주는 창구.

 

 

사람이 살아가면서 쉽게 잊어버리는 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 죽음이 아닌가 싶다. 오늘이 지나고 밤에 잠을 자면 어김없이 다음날이 찾아오리라고 믿는다. 늘 같은 날이지만 사실 오늘이라는 날은 늘 다른 날이다. 나도 내일은 언제나 오는 거야 한다. 그래서 언제나 ‘내일부터’ 한다. 어쩌면 그렇게 태평할 수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시간이 한참 지난 뒤에야, ‘아니 벌써 이렇게 된 거야.’  한다. 어리석은 사람이라 그럴 수밖에 없는 걸 어떻게 하나. 오래전에는 내가 무엇이든 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 것 같기도, 하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무엇인가를 하기에 아주 늦은 때는 없다고 하지만, 이 말은 그저 자기 위안일 뿐이다. 때가 있는 것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사람이 억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런 것은 내버려두고, 지금부터라도 몇 해 뒤 내가 어떻게 되기를 바라는지 생각하고 그렇게 되려고 애쓰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몇 해 뒤에 내가 살아있을지 그것도 알 수 없는 일이기는 하다. 그렇다고 해도 그냥 살아가는 것보다는 나을지도 모르겠다(생각만으로 끝나지 않으면 좋을 텐데). 목숨이 끊어지기 전까지 조금이라도 나은 내가 되었으면 좋겠다. 역시 책을 보면 자신을 더 생각하는 듯하다.

 

아직 나는 죽은 사람 가운데서 만나고 싶은 사람이 없다(아주 가까운 사람이 죽지 않아 다행이다). 언젠가는 생길까. 그런 사람이 있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지만 나한테는 언제까지나 없을 것 같기도 하다. 이것은 조금 쓸쓸한 일일지도. 실제 우리는 죽은 사람을 만날 수 없다. 사람 영혼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른다. 신이 있으면 귀신도 있다는 말이 있는데. 그래도 책 속에서는 살아있는 사람이 죽은 사람을 만날 수 있다. 그것은 살아있는 사람이 그런 일을 바라서 지어낸 것이지만. 책을 읽는 사람은 책 속에서 살아있는 사람뿐 아니라 죽은 사람도 만난다. 한동안 본 책들을 생각하니 죽은 사람이 나온 책은 없었다. 이런 이야기가 많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아주 가끔 만나게 된다. 앞에서 말하지 않았나 죽음을 자주 잊는다고. 사고나 사건으로 죽는 사람이 나오는 책은 볼 때도 있지만, 그 뒤는 알 수 없다. 그러면 여기에서는 그 뒤를 알 수 있느냐 하면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 하지만 아주 모르는 채로 있는 것도 아니다.

 

죽은 사람과 숫자 7은 깊은 관계가 있는 것일까. 위화의 《제7일》은 읽지 못했지만, 아사다 지로의 《쓰바키야마 과장의 7일간》은 보았다. 여기에서 7일은 죽은 사람이 이승에 있을 수 있는 시간이다. 다른 데서도 7일이 나온 것 같기도 한데. ‘츠나구’는 죽은 사람보다 산 사람이 주체다. ‘쓰바키야마 과장의 7일간’은 죽은 사람이 주체다. 갑자기 죽음을 맞은 사람이 이승에 오는 것이고, ‘츠나구’는 산 사람이 죽은 사람을 만나고 싶어하는 거다. 주체가 누구건 서로 미련이 있는 것은 마찬가지일지도 모르겠다. ‘츠나구’에서 산 사람이 죽은 사람을, 죽은 사람이 산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것은 단 한번뿐이다. 이렇게 말하면 더 쉽겠다. 살아있을 때 한번, 죽었을 때 한번. 살아있을 때는 죽은 사람 가운데서 한번 더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더라도 죽은 뒤에는 아무도 찾아주지 않을 수도 있겠다. 이런 생각을 하다니. 죽은 사람과 산 사람의 세계는 다르다. 그러니 이런 규칙을 만든 게 아닌가 싶다. 경계란 확실히 있어야 하니까. ‘츠나구’에도 7이 나온다. 죽은 사람을 만나는 호텔방 번호 뒷자리가 모두 7이다. 그리고 거의 저녁 7시부터 만나고, 그 방에서는 달이 잘 보인다고 한다. 죽은 사람을 가장 오래 만날 수 있는 날은 보름달이 뜬 밤이다.

 

갑자기 죽음을 맞은 탤런트 때문에 살아갈 힘을 잃은 사람은 탤런트를 만나고 싶어한다. 장남으로 두해전 암으로 돌아가신 어머니를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 사고로 죽은 단짝 친구를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 그리고 일곱해 전에 사라져버린 약혼녀를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이 츠나구를 만난다. 죽은 사람과 이야기를 먼저 하는 사람은 고등학생 남자아이다. 처음에는 예전부터 그 일을 해온 것인가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 아이 이야기는 마지막에 나온다. 다른 사람들을 만날 때는 조금 차가워 보이기도 했는데 그 아이가 이야기를 할 때는 또 달랐다. 본래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츠나구’는 남자아이 할머니 친정 집안에서 사회공헌으로 하는 일이란다. 소문은 돈이 많이 든다고 나 있지만 실제로는 돈을 받지 않는다. 다른 네 사람이 죽은 사람을 만나고 마음이 풀어지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츠나구가 되어 사람들을 보고 남자아이가 한층 자라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남자아이한테도 다른 사람한테 쉽게 말할수 없는 일이 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이상하게 죽은 일이다. 이 일은 할머니한테도 아픔이었는데 그게 풀렸다. 이렇게만 써두면 나도 무슨 말인지 모를 것 같지만 어쩔 수 없다.

 

남자아이는 산 사람이 죽은 사람을 만나고 싶어하는 것은 산 사람만 생각하는 게 아닌가 했다. 죽은 사람은 산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것인가 하기도.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죽은 사람은 산 사람이 앞으로도 잘 살아가기를 바라지 않을까 싶다. 죽은 탤런트 미즈시로 사오리는 자신이 있는 곳은 캄캄하다고 했다. 그리고 사고로 죽은 고등학생 미소노 나쓰는 남자아이한테 살아있을 때 하고 싶은 거 많이 하라고 했다. 우리가 죽은 사람 마음을 실제 알 수는 없지만,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 죽은 사람을 만난 사람은 그 사람을 마음에 품고 살아갈 것이다. 우리는 지금을 잘 살아가고, 살아있을 때 서로 마음을 써주는 게 좋겠다.

 

 

 

*그냥

 

이 책을 보고 생각한 것은 아니고, 지난해 언젠가 한 생각이다. 아이가 사고로 죽고 귀신이 되는 거다. 엄마는 일 때문에 아주 바빠서 평소에 아이를 잘 돌봐주지 못했다. 아이를 볼 수 있는 사람은 아이가 다니던 학교에 전학온 아이였다. 그 아이한테 귀신이 된 아이가 말을 해서 엄마와 만나고 마음을 풀고 저세상으로 돌아간다는. 그런 생각만 하고 못 썼다. ‘쓰바키야마 과장의 7일간’과 비슷한 것 같은 생각이 나중에 들었다. ‘츠나구’와 비슷하게 한다면 ‘엄마의 본분’이라 하면 될까. 하지만 ‘츠나구’처럼 쓴다면 아이가 귀신이 되어 나타나지는 않겠다.

 

 

 

희선

 

 

 

 

☆―

 

“세상이 불공평한 건 당연한 거야.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 불공평하지. 아무한테도 정당한 건 없어.”    (46~47쪽)

 

 

“제발 만나세요. 부탁입니다.”

 

그것이 비록 산 사람을 위한 행위일 뿐이라 해도, 남은 사람 또한 다른 사람의 죽음을 짊어질 의무가 있다. 흐르는 일상은 막을 수 없다. 자신을 위해 잃어버린 사람을 살려낸다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뒤에 남아 살아가는 사람들은 끝없이 이기적이고, 또 그럴 수밖에 없다. 그것이 설령 슬프고 뻔뻔한 사고방식이라 해도.  (4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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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거핀 2014-02-07 2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야기는 좀 다르겠지만, 예전에 보았던 고레에다 감독의 영화 <원더풀 라이프>가 생각이 나는군요. 그것도 죽음과 삶 사이에 있는 일종의 중간지대를 배경으로(림보라고 하나요?) 한 이야기였는데, 사후에서의 나머지 시간들을 어떤 기억을 가지고 살아갈 것인가를 묻는 영화였습니다.

대체로 젊은 사람들은 특별히 몸이 안 좋지 않는한 죽음에 대해 거의 생각해 보는 경우가 없습니다만, 아주 가끔 매우 가깝게 다가온다고 느껴지는 경우는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젊은 친구의 장례식에 간다거나 하는...그럴 때마다 느끼는 건, 장례식이란 결국 살아있는 사람을 위해서 이루어지는 것이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게 나쁘다는 것은 아니고, 다만, 조금 마음이 불편해지고는 하지요.

상당히 특이한 느낌의 소설일 듯 합니다.

희선 2014-02-09 01:38   좋아요 0 | URL
잠깐 찾아보니 어떤 사람은 자신이 어떤 기억을 가지고 갈 것인지 생각하지 못한 것 같군요 어쩐지 저도 그럴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쓰바키 야마 과장의 7일간>에서도 이 세상과 저세상 사이에 있는 곳에 먼저 가더군요 <원더풀 라이프> 영화 본 적 없는데 내용은 어디에선가 들어본 것 같은 것은 왜인지 모르겠네요^^

영화 이야기를 보고 생각난 게 있는데 제목이 뭐지 하면서 찾아봤습니다 사실 내용도 가물가물합니다 지난해 본 드라마로 <주마등주식회사>라고 합니다 소개에 나온 말입니다 “자신의 인생을 기록한 영상을 볼 수 있는 '주마등 주식회사'에서 벌어지는 이야기” 자신의 삶을 영상으로 볼 수 있다니, 재미있기도 하지만 조금 무섭기도 하죠 끝은 거의 안 좋았던 것 같기도 합니다 어떤 비밀을 알게 되기도 하거든요

이 세상에 나오는 것은 차례가 있지만 가는 것은 차례가 없다고 하잖아요 누구보다 나이 어린 사람이 죽었을 때 죽음을 더 생각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장례식도 그렇죠 살아있는 사람은 살아가야 하니까요 어쩌면 그것은 죽은 사람과 제대로 헤어지려는 의식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고 잊지는 않겠지만요 이런 생각해본 적 없는데...

죽은 사람이라고 해도 그 사람은 살아있을 때와 똑같아요 한번 만난다고 해서 미련이 다 풀리지는 않는다고도 하더군요 맞는 말이죠^^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