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탕비실
이미예 지음 / 한끼 / 2024년 7월
평점 :

난 탕비실이라는 곳에 가 본 적 없는 듯하다. 다시 생각하니 꼭 그렇지도 않은가. 병원에서는 물밖에 가져오지 않아서. 거기도 탕비실이겠다. 병원에는 냉장고가 병실에 있다. 난 거기에 뭔가 넣어둔 적 없다. 다른 사람은 반찬이나 먹을거리를 많이 넣어둔 것 같다. 그건 보호자가 넣어둔 거구나. 어디나 여러 사람과 함께 쓰는 곳은 조심해야 하겠지. 자기 마음대로 자기 물건을 늘어놓거나 여러 사람이 먹어야 하는 걸 혼자 많이 가져가면 안 되겠다.
소설 《탕비실》은 ‘공용 얼음 틀에 콜라와 커피를 얼려놓는 사람. 20여개의 텀블러를 가지고 있고, 공용 싱크대에 안 씻은 텀블러를 늘어놓는 자칭 환경 운동가. 정수기 옆에 쓴 컵을 버리지 않고 쌓아두는 사람. 공용 전자레인지 코드를 뽑고 무선 헤드셋을 충전하는 사람. 탕비실에서 중얼중얼 혼잣말하는 사람. 공용 냉장고에 케이크 박스를 몇 개씩 꽉꽉 넣어두고 집에 가져가지 않는 사람. 공용 싱크대에서 아침마다 벼락같은 소리를 내면서 가글하는 사람. (7쪽~8쪽)’과 탕비실을 쓰면 어떤 사람이 가장 싫으냐는 물음으로 시작한다. 이 여덟 사람을 추천 받고 모아두고 리얼리티 방송을 만든다고 한다. 여덟 사람에서 다섯 사람만 남았다. 얼음 커피믹스 텀블러 혼잣말 케이크. 이 사람들이 탕비실에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건 아니다. 탕비실에 가기는 하지만, 다섯 사람에는 추천 받지 않은 사람이 있다고 했다. 가짜(술래)를 알아맞히는 게임이다. 한주 동안 합숙하면서.
텔레비전 방송에서 사람들이 좋아하는 건 어떤 걸까. 자기 둘레에 있을 법한 사람 이야기일 때가 많을까. 다큐멘터리다 해도 진짜 있는 그대로 찍을까. 연출은 하나도 없을지. 그대로 찍은 다음에 괜찮은 장면만 편집할지도. 그런 게 많겠지만 연출도 있을 것 같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 이야기를 좋아한다. ‘탕비실’ 같은 방송 만들면 많은 사람이 볼까. 본래 탕비실은 다큐멘터리로 찍다가 잘 안 돼서 나중에 다른 방송을 만든 거다.
다섯 사람은 규칙을 깨야 자신과 다른 사람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이 말 봤을 때 나는 잘 몰랐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소설에 나온 사람도 처음엔 잘 몰랐다. 탕비실에서 지켜야 하는 걸 어긴 사람한테 다른 사람 힌트를 주는 듯했다. 이 이야기는 게임에 참가한 얼음이 말하는 거다. 다른 사람보다 얼음이 하는 게 가장 잘 보인다. 다른 사람은 얼음이 보는대로 보는 거지. 얼음은 힌트를 얻고 다른 사람 이야기를 하는 음성파일을 들을 때는 목소리를 변조했다 여겼는데, 자기 이야기하는 걸 들을 때는 그 사람이 누군지 바로 알았다. 일터에서 자주 마주치면 말투 같은 거 기억할 거 아닌가. 얼음은 다른 사람을 잘 관찰했다.
얼음은 회사에서 동료가 콜라에 얼음을 잔뜩넣고 먹으면서 싱겁다고 하는 걸 들었다. 얼음은 그 말을 듣고 콜라 얼음을 얼려두었다. 누군가 자기가 한 말을 듣고 마음 써주면 기분 나쁠까. 기분 나빠할지도. 얼음은 콜라가 어떤 건지 알려고 쓰레기통을 뒤졌다. 그건 기분 나쁘겠다. 다른 사람을 생각하고 한 일이어도 그걸 받아들이는 사람은 기분이 다를지도. 난 얼음처럼은 안 해도 조금 마음 쓰려고 한다. 아니 마음속으로만 생각할지도. 다른 사람은 자신을 생각해주는 걸 이상하게 여길지도. 조심해야겠다.
사람이 어떤 일을 왜 하는지 알려고 하지 않고 싫다고 생각하기도 하겠지. 나도 다르지 않다. 그래도 추리소설을 보고 범인이 왜 그랬는지 보는 일이 많아졌다. 동기 없는 범죄도 있기는 하지만. 그런 건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가 벌이는 일이다. 사이코패스는 어쩌다 사이코패스가 되었나 알아보기도 하는구나. 거기에서 더 나아가면 사이코패스는 태어나는 것인가 만들어지는 것인가를 생각한다. 둘 다일 듯하다. 사이코패스로 태어난다 해도 자라는 환경에 따라 달라진다. 탕비실을 보고 사이코패스 이야기를 하다니.
세상에 이상하지 않은 사람 있을까. 나도 내가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누구한테나 남이 이해하기 어려운 면이 있을 거다. 그걸 잊지 않아야지.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