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카 평전 - 실존과 구원의 글쓰기 서강인문정신 16
이주동 지음 / 소나무 / 2012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프란츠 카프카는 독일계 유대인으로 1883년 7월 3일에 체코 공화국 프라하에서 태어났다. 작가이고 보험공사관리였다. 아버지 헤르만 카프카는 거칠고 엄격한 군생활을 해서 그것은 카프카의 어린시절에 안 좋은 영향을 미쳤다. 어머니 율리에 카프카는 착했지만 카프카한테 마음쓰기보다 아버지 말에 따라서 살았다. 카프카는 어린시절에 부모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일을 하고 카프카를 다른 사람한테 맡겨두었다. 카프카를 돌봐준 가정부가 좋았다면 좀 나았을지도 모르겠지만 별로 좋지 않았다. 카프카가 초등학교에 다니게 되었을 때, 가정부가 카프카를 학교까지 데리고 가면서 선생님한테 카프카가 잘못한 일을 말하겠다고 겁을 주었다. 그것을 카프카는 아주 두려워했다. 집에서 학교까지는 10분밖에 걸리지 않았지만 어린 카프카는 그 길을 아주 멀게 느꼈다. 아버지의 엄격함 때문에 카프카는 학교 선생님도 무서워하고 학교 자체도 무서워했다. 그래서 카프카는 자신이 좋은 선생님을 만났다는 것을 잘 몰랐다. 친구도 별로 없었다. 그리고 네 해 뒤에 프라하에서 가장 엄격한 오스트리아 왕립 김나지움에 다니게 되었다. 카프카가 작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 것은 중학교 때다. 카프카는 아무도 모르게 글을 썼다. 하지만 그 글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카프카는 글을 쓰고는 없애기도 했다. 카프카는 공부를 잘하는 편이었는데 수학은 싫어했다. 카프카는 낯선 나라들의 지형·기후·생물·사람을 보여주는 지리를 좋아했다. 그리고 언젠가는 따듯하고 햇빛이 찬란하게 비치는 남쪽 나라에서 살고 싶다고 평생 꿈꾸었다.

 

대학에 들어갈 때 카프카는 전공 때문에 아버지와 말다툼을 했다. 카프카는 철학이나 문학을 공부하고 싶었는데 아버지는 카프카가 법학과에 가기를 바랐다. 대학을 나온 뒤 좋은 일자리를 구하기를 바란 것이다. 이것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같다니. 카프카는 처음에 화학과에 다니다가 바로 법학과로 바꾸었다. 법학을 공부하면서도 카프카는 글에 대한 마음을 버리지 않았다. 카프카가 즐겨 읽은 책은 작가의 자전 요소가 담긴 일기, 전기, 편지 모둠이었다. 그러한 책을 찾아서 열심히 읽었다. 카프카는 대학 졸업 시험에 합격하지 못할까봐 무척 걱정했다. 이런 마음에 대해 앞에서는 못 썼는데, 카프카는 늘 불안했다. 낯선 일은 더욱. 누구나 그런 마음을 느끼지만 카프카는 누구보다 더 심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도 카프카는 대학 생활에서 좋은 친구들을 만났다.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으로 일하게 된 곳은 카프카를 힘들게 했다. 일을 아주 많이 해야 해서. 카프카한테는 글 쓸 시간이 필요했다. 얼마 뒤 일자리를 옮겼다. 그곳은 아침 8시부터 오후 2시까지 일하는 노동자재해보험공사였다. 시간은 그렇다 해도 여전히 일은 많았다. 카프카가 일을 잘했기 때문에. 노동자재해보험공사는 카프카한테 잘해주었다. 카프카가 아프면 쉴 수 있게 해주었으니까. 카프카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주는 곳이 있었는데, 카프카는 그 점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나라면 기뻐했을 것이다. 지금은 사람은 언제든 바꿀 수 있는 부품으로밖에 생각하지 않나 싶다. 그렇다고 카프카가 살았을 때 아주 좋았던 것은 아니다. 몸을 쓰는 일을 하는 사람들은 아주 힘들었다. 카프카는 그런 사람들 편에 서서 많이 도와주려고 했다. 그런 따듯한 마음 때문에 카프카도 다른 사람이 도와준 게 아닌가 싶다.

 

아무리 좋은 일자리라 해도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할 수 없으면 괴롭다. 카프카는 글을 자유롭게 쓸 수 없는 것을 괴로워했다. 아니, 그것보다는 글 쓰는 것 때문에 잠을 못 자서 힘들었을지도. 카프카는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면 조금 자고 산책을 하고 밤에 글을 썼다. 그런데 집이 시끄러웠다. 카프카는 식구들 모두가 잠들 때를 기다렸다가 글을 썼다. 어느 날은 글이 아주 잘 써져서 밤을 새우기도 했다. 카프카는 자신을 잊고 글을 써내려가는 것을 좋아했다. 그게 어떨지 한번 경험해보고 싶기도. 카프카가 글을 그렇게 썼는데도 끝까지 쓰지 못한 게 많은 것은 여러 작품을 함께 썼기 때문이다. 그런 모습을 보고, 하나 먼저 끝내고 다른 거 쓰지 하기도. 사람마다 글 쓰는 방식이 다를지도 모르겠다. 카프카는 하나를 쓰다가 다른 게 떠오르면 그것을 그냥 둘 수 없었던 거다. 쓰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일할 때 쓰는 글도 늘 문학을 생각하며 썼다. 이것도 쉬운 일은 아닌데. 카프카는 일기와 편지도 많이 썼다. 일기로 글쓰기를 단련했다. 어떻게 쓰면 그럴 수 있을까. 나도 일기를 꽤 열심히 썼던 때가 있다. 그냥 별 생각없이 썼기 때문에 도움이 되지 않았던가 보다. 지금부터라도 일기를 잘 쓰면 나아질까. 하지만 카프카와 같은 글은 쓰지 못할 것이다. 그냥 그런 생각이 든다. 내가 평범하게 생각해서 말이다. 카프카는 꿈도 잘 적어두었다. 카프카의 글은 꿈과 비슷하다고(카프카 소설은 아직 하나도 못 읽어봤다). 꿈은 일이 쉽게 바뀌고 여기저기 갈 수 있다. 꿈에 대한 설명을 이렇게 밖에 못하다니. 카프카는 글쓰기와 책읽기뿐 아니라 연극을 보는 것도 좋아했다. 늘 프라하가 아닌 곳에 가서 작가로 살고 싶어했는데 그 일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글쓰기는 카프카가 살아가는 것과 같았다. 그래서 결혼을 하면 글을 쓸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었다. 처음 만난 펠리스 바우어와는 아주 많은 편지를 주고받았다. 처음에는 거의 날마다 썼다고 한다. 그 부분을 볼 때는 재미있기는 했는데. 카프카한테 펠리스와 편지를 나누는 일이 처음에는 좋았지만 나중에는 괴로운 일이 되었다. 카프카는 자신은 그대로 있고, 펠리스만이 바뀌기를 바랐다. 그런 마음이면 잘 안 되는 것은 당연하다. 펠리스와는 약혼을 두번이나 했지만 결혼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이런 일은 카프카가 글을 쓰게 했다. 글을 써서 사랑이 깨져버린 일을 이겨냈다. 하지만 몸은 별로 좋지 않게 되었다. 펠리스와 두번째 약혼했을 때 카프카는 폐결핵이 되었다. 카프카가 펠리스한테 폐결핵 때문에 결혼할 수 없다고 했다. 카프카가 펠리스한테 그 말을 할 때 마음속으로는 좋아한 것 같기도 하다. 그 글에서 그런 마음을 느끼다니. 내가 이상한 것인지도. 카프카는 펠리스와 자주 만나지 않고 편지만 엄청 썼다. 두번째 율리 보리체크와는 실제로 만나서 이야기하다가 결혼하고 싶어했다. 하지만 아버지의 반대와 집을 얻지 못해서 잘 안 되었다. 그때 카프카는 <아버지에게 드리는 편지>를 썼다. 율리 보리체크와 아주 헤어지지 않고 카프카는 밀레나 폴락과 편지를 나누었다. 밀레나는 결혼한 사람이었다. 결혼한 남자는 아내와 헤어질 마음이 없으면서 다른 여자를 사귀기도 하는데, 밀레나도 그랬다. 밀레나를 사귀고 헤어진 일 때문에 카프카의 건강은 아주 나빠졌다. 카프카가 끝내 결혼은 못했지만, 카프카를 진정으로 이해해준 사람을 만났다. 도라 디아만트다. 카프카가 죽음을 맞이할 때도 도라가 함께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고 고흐보다는 낫다는 생각이 든 것은 왜였을까. 고흐를 누구보다 잘 알아준 동생 테오가 있었지만. 그런 사람이 아주 없는 사람도 있다.

 

옛날에는 결핵에 걸리면 모두 죽는다고 생각했는데, 카프카가 살았던 시대에는 낫기도 했나보다. 하지만 카프카는 결핵치료를 제대로 못했다. 이런저런 일 때문에. 결국 후두 결핵까지 걸려서 죽게 되었다. 몸이 안 좋을 때도 카프카는 책을 읽고 글을 썼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예전에 나도 어떤 것을 쓰지 못해서 조금 괴로웠던 적이 있다. 그것은 편지다. 다른 글을 쓰지 못해서 괴로워했으면 더 좋았을까. 책을 보다보면 그 안에서 자기 자신을 만나기도 하는데 나도 만난 듯하다. 하지만 다른 점도 많다. 카프카는 친구들과 잘 어울렸고 여기저기 다니는 것을 좋아했다. 편지쓰기를 좋아하는 것은 같지만, 나는 사람 자체를 두려워하기도. 이것은 아마 나한테 자신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카프카는 글을 써서 자기 자신의 문제를 알아내려고도 했다. 나는 그런 일은 해 본 적 없다. 그런 것을 알아야겠다는 생각은 못했겠지만 나 자신도 모르게 문제를 알게 되지 않았을까. 카프카는 자신이 느끼는 괴로움을 이겨내기 위해 글을 썼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그래서 마음도 별로고 지금까지 제대로 된 글 하나 쓰지 못한 것인지도. 나는 그저 쓸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만 하고 있다. 그런데 얼마 전에 어떤 책을 읽고 쓴 것을 타이핑하고 나니 아주 기분이 안 좋았다. ‘이따위로 쓰다니’ 했다. 요새는 이런 생각을 자주 하는 것 같다. 어쩌면 지금 쓰고 있는 것도 나중에 보면 아쉽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카프카 이야기를 하다가 내 넋두리를 늘어놓고 말았다.

 

어떠한 책이든 끝이 다가올 때면 아쉬운데, 이 책을 볼 때도 카프카의 죽음이 다가와서 마음이 안 좋았다. 카프카가 된 것 같은 마음은 아니었지만 카프카와 가까운 사람 같은 느낌은 들었다. 결핵치료를 좀 잘 하지 왜 그런 거야 하면서 책을 봤다. 카프카를 나흘 동안 만나서 그랬을까. 그런데 카프카가 결핵치료를 잘 하고 조금 건강해졌다면 그 뒤에도 잘 살아남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어쩐지 카프카가 그 뒤에 일어난 일을 모르는 게 나을 것 같기도 하다. 그것 때문에 아주 괴로워했을 테니까. 아니, 그것은 그것대로 문학이 되었을까. 카프카처럼 나한테도 글쓰기가 살아가는 게 된다면 좋을 텐데.

 

 

*덧붙임

 

이 책은 평전인데 나는 평전보다 소설에 가깝게 읽은 것 같다. 한 사람이 나고 자라고 죽기까지 이야기이니 소설과 같다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다만 카프카는 실제 있었던 사람이다. 카프카가 행복하게 글을 쓰던 시절도 있었다. 다른 식구들은 카프카가 글을 쓰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여동생은 카프카 마음을 알아주었다. 카프카는 여동생이 빌린 집에 다니면서 마음껏 글을 썼다. 그냥 거기에서 자면 안 될까 하는 생각도 했는데 글을 쓸 때만 그곳에 갔다. 한때는 시골에 가기도 했는데, 그곳도 조용하지 않았다. 그래도 밤에는 조용했을 것 같지만 쥐가 많았다. 다른 소리 때문에 집중하지 못하는 마음 잘 안다. 그래도 다른 것을 하다보면 그 소리를 잊기도 하는데 카프카는 그것도 힘들었던가 보다. 폐결핵은 마음 때문에 생겼다는 말을 했는데, 이것은 맞는 말이다. 내가 잘 아는 것은 아닌데 마음이 편하지 않으면 폐가 나빠지는 게 아닌가 싶다. 심장인가. 공기가 나빠도 폐가 안 좋아질 수 있다. 지금은 폐결핵에 걸려도 약만 잘 먹으면 낫는다. 조금 오랫동안이지만.

 

이것은 대체 왜 썼을까. 본래 생각했던 것과 조금 다르게 쓴 것 같기도 하다. 맞다, 내가 하고 싶었던 말 생각났다. 그것은 책을 읽는 동안 카프카가 걸었던 곳을 함께 다닌 느낌이 들었다는 것이다. 한번도 가 본 적 없는 곳인데. 그게 참 좋았다. 여동생이 빌린 그집에 갈 때가 가장 좋았다.

 

 

 

희선

 

 

 

 

☆―

 

모든 사람은 저마다 고유하고, 그 고유성을 발휘하도록 되어 있다. 물론 저마다 가진 고유성에서 좋은 점을 찾아내야 한다. 그러나 내가 경험한 바로는 학교도 가정도 이 고유성을 지우려고만 애쓴다. 그렇게 해야 가르치기 쉽고 아이 삶도 편해진다. 그러나 그에 앞서 아이들은 강요가 가져다주는 괴로움을 맛보아야 한다. ……그렇듯 내 고유성은 인정되지 않았다(KKANI 7).  (46쪽)

 

 

카프카는 작품을 쓰지 않을 때에도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편지나 일기, 그밖에 무엇이든 글 쓰는 일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카프카가 글을 쓰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는 것은, 글쓰기가 바로 카프카의 타고난 운명이고 카프카의 실존이고 삶 자체였기 때문이다.  (479쪽)

 

 

 

 


댓글(2)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가연 2013-10-10 1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저도 그 생각 했어요. 카프카가 걸었던 곳을 같이 걷는 그런 기분을.

희선 2013-10-11 01:21   좋아요 0 | URL
가연 님도 그랬군요 책을 읽다보면 다 그런 기분을 느낄 것 같습니다
프라하에 카프카 박물관이 있다고 하더군요 조금 전에 알았습니다
세계에 이름이 알려진 작가이니 당연한 것이군요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