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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게 될 것
최진영 지음 / 안온북스 / 2024년 6월
평점 :

소설집을 보고 나면 무슨 제목으로 쓰면 좋을까 생각하는데, 좋은 제목은 떠오르지 않습니다. 최진영 소설집 《쓰게 될 것》에는 단편이 모두 여덟편 실렸어요. 여덟편인데 더 담긴 것처럼 느끼기도 했습니다. 그건 제가 이 책을 오래 봐선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래 봤다 해서 멈춰서 생각한 건 아닙니다. 책을 보다가 어떤 말에 멈추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겠지요. 저는 그런 거 잘 못합니다. 그러지 않아서 책을 깊이 못 보는 건가 싶기도 하네요.
책 제목과 같은 <쓰게 될 것>을 읽다 보니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전쟁이 떠오르기도 했어요. 이름은 한국 사람인데, 전쟁이 여러 번 일어났다는 말을 보다 보니 그랬습니다. 뒤쪽 작가의 말에 이 이야기는 《전쟁일기》(올가 그레벤니크) 영향을 받았다는 말이 쓰여 있더군요. 전쟁이 일어나지 않으면 좋을 텐데. 전쟁이 끝나기를 바랍니다. 전쟁을 하기 보다 기후 위기를 더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환경을 생각한 건 그렇게 오래 되지 않았네요. <썸머의 마술과학>에서는 엄마도 아이처럼 환경 보호 포스터를 그렸다고 하더군요. 환경을 생각하고 실천하는 건 어린이일 때가 더 많은 듯합니다. 봄이와 여름이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집안 일도. 아빠는 주식으로 빚을 졌는데도 사기를 당한 모임에 나가고 엄마는 엄마대로 현실을 잊고 싶은 모임에 나가요. 아이들이 더 위기를 빨리 감지하기는 합니다. 어른이 아이 마음을 편하게 해주어야 할 텐데. 저도 그렇게 못할 것 같기는 합니다. 부끄럽네요. 나이 차이 많이 나는 언니는 동생을 지키겠다는 생각도 할까요. 멋진 언니네요. 요새 저한테 언니가 있다면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을 했는데. 없는 언니를 바랐군요. 여름이가 부럽습니다.
사람을 믿지 않고 분위기를 믿으라는 건 무슨 말일지. <유진>에서 최유진이 한 말이에요. 이 최유진은 다른 이야기에도 나온 적 있어요. 그때는 조카인 이나가 이야기를 이끌어 갔어요. 이번 이야기 <유진>을 보면서 최유진은 오래전에 만난 이유진과 비슷하게 사는 것 같다고 느꼈어요. 사람이 좀 허름한 집에 산다고 멀어지기도 하다니. 이 소설 보면서 그런 사람도 있구나 했습니다. 평소에는 유진을 닮고 싶어했는데, 좋은 집에 살지 않는다고 마음이 바뀌다니. 다시 생각하니 저라고 그러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을 듯합니다. 제가 가난하게 살지만. 저는 유진 쪽이겠습니다. 다른 사람이 떠나가는. 제대로 하는 게 없어서 아무도 저를 닮고 싶다 생각하지도 않겠습니다. 배울 점도 없고.
초성 <ㅊㅅㄹ>은 첫사랑이겠지요. ‘참사랑’도 있네요. 서진은 어느 날 모르는 사람(아이 은율)이 보낸 메시지를 받고 첫사랑을 생각하기도 합니다. 은율은 영어 캠프에서 만난 유시진한테 메시지를 보냈는데, 전화번호를 잘못 적은 걸지 시진이 잘못 알려준 건지. 생각하기 싫은 건 일부러 다르게 알려준 거지요. 그런 일 없지 않을지도 모르겠네요. 다시 만날 아이가 아니기도 했으니. 서진은 은율이한테 모르는 사람과 채팅하는 건 위험하다고 말하고 사진 같은 거 보내주지 마라고 해요. 모르는 사이였는데. 서진과 은율은 잠시 휴대전화기 메시지로 이야기를 나눕니다. 서진은 은율이 하는 말을 들어주고 조금 말해주는 거군요. 소설이기에 안 좋은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소설에서도 안 좋은 일 일어날 수 있고, 메시지 잘못 보내는 건 실제 일어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 일 일어나도 안 좋은 일 일어나지 않기를. <인간의 쓸모>는 SF더군요. 사람은 갤럭시존과 타운존 그리고 노고존에 나뉘어 살고 갤럭시존이 가장 잘 사는 곳인 듯합니다. 아이는 배아 디자인으로 가져요. 한국말은 소수어가 되고. 이건 실제 일어날 수 있는 일이군요. 그래도 이 이야기에는 희망이 조금 보입니다.
저마다 다른 네 식구가 아버지 오석진 환갑을 맞아 함께 저녁을 먹는 <디너 코스>. 오석진은 일을 그만두고 퇴직금을 주식으로 날리고 친구들이 땅거지다 하는 말을 들어요. 오석진은 친구가 한다는 카페에서 최저임금을 받고 바리스타로 일하겠다고 합니다. 딸인 오나영은 그 말을 듣고 조금 놀랍니다. 아버지를 다시 본 걸지도. 일하던 곳에서 어느 정도 자리에 올라갔다고 해서 다음 일을 할 때 그것과 같아야 하는 건 아니겠지요. 나영은 자기 부장과 아버지가 조금 다를지도 모른다고 행각합니다. <차고 뜨거운>과 <홈 스위트 홈>에 엄마와 딸이 나오지만 두 이야기에 나오는 엄마와 딸은 다르군요. 그건 당연한 거군요. ‘나’는 두 이야기에 나오는 것과 비슷하기도 합니다. 걱정이 많은 게. 이건 오나영도 그랬네요.
마지막 이야기 <홈 스위트 홈>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생각하게 합니다. 이 이야기만 그런 건 아니군요. 큰병에 걸리고 치료를 해야 할지 그것보다 지금을 잘 살지. 어떤 병은 치료가 힘들어서 사는 게 힘들기도 하잖아요. 그럴 때 치료를 더 하는 게 나을지 남은 시간을 잘 보내는 게 나을지. 뭐가 더 낫다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그걸 결정하는 건 자신이겠습니다.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