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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보다 : 봄 2025 ㅣ 소설 보다
강보라.성해나.윤단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3월
평점 :

겨울이 가고 봄이 오고, 책이 나왔다. 《소설 보다 : 봄 2025》가 말이다(지금은 다시 겨울에 가까이 왔다). 어떤 소설이 담겼나 보다 책 겉에 담긴 그림을 보고 책을 사야겠다 생각했다. 딸기를 좋아해서는 아니고 그냥 그림이 마음에 들어서다. 이런 건 세밀화겠지. 요즘은 제철 과일이 별로 없는 것 같다. 딸기는 봄에 나오는 것 같기는 한데, 언제부턴가 겨울부터 보였다. 꽤 큰 딸기도 있다. 난 그런 딸기 안 좋아한다. 작은 것도 그저 그런가. 여기 담긴 소설은 세편이고 봄이나 딸기하고는 아무 상관없다. 두편<바우어의 정원>(강보라)과 <남은 여름>(윤단)에는 같은 색이 나오기도 한다. 파란색. <스무드>(성해나)와 <남은 여름>(윤단)은 여름이 같다고 해야겠다.
이 책에 담긴 소설을 보면서 단편소설엔 사람이 그렇게 많이 나오지 않는구나 했다. 마치 그걸 이번에 안 것 같구나. 다른 단편소설 볼 때도 느꼈을 텐데 그때는 그런 건 별로 생각하지 않았다. 두번째 이야기 <스무드>(성해나)는 많은 사람이 배경이다. 태극기 부대인가. 그런 거 잘 모르지만. 여기 나오는 사람은 컨템퍼러리 예술가 매니저로 재미교포인 듯하다. 이름은 듀이다. 예전에 소설에서 본 재미교포와는 좀 다르기도 하다. 아마 부모 영향인 듯한데, 듀이는 한국말도 한국이라는 곳도 잘 모른다. 그게 이상한 건 아니구나. 한국계 미국 사람. 듀이는 이승만 광장에서 만난 사람들을 좋게 받아들였다. 정치를 빼고 사람을 만나면 누구나 좋은 사람일 것 같다.
첫번째 이야기 <바우어의 정원>(강보라)에는 배우가 나온다. 배우도 보통 사람과 많이 다르지 않은 느낌이 들었다. 그건 당연한 건지도 모르겠다. 은화는 아이를 가졌다가 여러 번 잃었다. 은화 후배인 정림은 아이를 바랄 때는 생기지 않고 일하려고 할 때 아이가 생겼다. 거의 낳을 때가 됐을 때 죽고 만다. 은화와 정림은 서로의 처지를 몰랐을 때는 시샘하기도 했다. 이야기를 하다가 둘 다 같은 일을 겪었다는 걸 알게 된다. 배우는 연기를 하다가 자기 상처가 낫기도 할까. 자신의 경험을 연기한다면 그런 일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정신과 치료에는 역할극도 있지 않나.
지금은 아이를 낳지 않으려는 사람이 많겠지만, 낳으려고 했지만 잘 안 된 사람도 많을 것 같다. 아이를 바라는 사람한테는 생기지 않고, 아이를 바라지 않는 사람한테는 생기는 일도. 부모와 아이가 딱 알맞은 때 만나면 좋겠지만, 그건 뜻대로 안 되는 걸지도 모르겠다. <바우어의 정원>이 이런 이야기는 아닌 것 같기도 한데, 여러 번 유산하고 거의 낳을 때가 돼서 유산한 사람이 나와서 이런 생각을 했다. 아이를 만나지 못했다 해도 잃어서 마음이 아플 것 같기도 하다. 다음엔 아이가 엄마 배 속에서 건강하게 자라고 세상에 나오기를 바란다.
마지막 소설 <남은 여름>(윤단)에서 서현은 친구가 준 책을 중고 서점에 팔려다 못 팔고 돌아오는 길에 놓인 파란 소파에 앉아서 시간을 보낸다. 그 소파가 놓인 곳은 서현이 일했던 곳과 가까웠다. 추 팀장은 서현의 상사였던 사람으로 서현이 권고 사직하게 만드는 데 영향을 미쳤나 보다. 추 팀장은 회사 화장실에서 서현을 보고 거기 나타난다. 추 팀장은 서현한테 왜 거기에 있느냐고 말한다. 도둑질한 사람이 제 발 저린다더니, 추 팀장은 서현한테 미안한 마음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누군가와 친하게 지내지 않던 추 팀장은 서현이 앉은 소파 한 칸을 띄워놓고 앉아서는 자기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그런 일이 얼마 동안 이어지다 소파가 사라진다. 왜 서현은 그 파란 소파에 앉아서 시간을 보낸 건지.
서현한테 책을 준 친구는 죽었다. 서현이 수면유도제를 먹고 친구 전화를 받지 않고 한주 뒤에 일어난 일이다. 친구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겠지. 서현이 친구한테 바로 전화를 했다면 그런 일이 없었을까. 이 이야기는 지금 어딘가에서 일어나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살기 힘든 세상. 친구든 누구한테든 말을 하면 조금 나을 텐데. 말한다고 다 좋아지지는 않을지라도.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