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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러 문방구 ㅣ The 스토리 1
소메야 가코 지음, 아사히 하지메 그림, 정인영 옮김 / 아울북 / 2023년 5월
평점 :
내가 쓰는 문구는 그렇게 많지 않아. 어렸을 때, 학교 다닐 때는 더 썼을지도 모르겠어. 종이는 여러 공책과 수첩, A4 종이, 쓰는 건 볼펜 펜 연필 색연필 샤프펜슬이야. 스티커는 뭔가 붙일 때 가끔 써. 셀로판테이프는 거의 박스 붙이는 데 쓰는군. 자와 칼 그리고 풀. 지금 생각하니 여기에 풀은 안 나왔군. 풀은 어떤 이야기를 쓰면 좋을까. 뭐든 붙이는 풀. <찢어진 마음에는 셀로판테이프>가 있기는 해. 가위도 써. 문구 아주 안 쓰지는 않는군. 이 정도면 많이 쓰는 건가.
지금은 세상이 바뀌어서 문구를 쓰는 사람 많지 않을지도 모르겠어. 그렇다고 아주 안 쓰지는 않아서 문방구는 있어. 학교 앞 문방구보다 커다란 문방구가 있겠지. 《호러 문방구》는 예전에는 아이들이 자주 가던 문방구인데, 주인이 나이 들고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아서 문을 닫게 됐어. 문방구 주인이 죽기 전 열나흘 동안 기도했어.
“문구의 신이시여, 가엾은 문구들에게 생명을 주세요. 문구들이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찾아가서 그 쓰임을 다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 (5쪽)
기도는 문구의 신한테 해야 하나. 문방구 주인이 기도한 날짜 수만큼 문구가 생명을 갖게 됐어. 주인은 ‘가엾은 문구’다 했는데, 이 책 《호러 문방구》를 보니 문구가 무섭게 느껴졌어. 제목에 ‘호러‘가 들어가니 어쩔 수 없나. 물건은 오래되면 목숨(마음이던가)이 깃든다는 말이 있기도 해. 그런 건 요괴나 마찬가지일지도 모르겠어. 요괴라고 해서 다 나쁜 건 아닐 텐데. 문구가 생명을 가지는 것도 밝고 즐거운 이야기로 써도 좋았을 텐데 말이야.
문구가 자신을 써달라고 아이한테 속삭여. 속삭인다기보다 말을 거는 거군. ‘뭐든 지우는 지우개’는 무서운 느낌인데, 그걸 쓰다니. 아이는 지우개로 친구를 지웠어. ‘인연을 자르는 가위’는 말 그대로 엄마와 아이 인연을 끊었어. 그래도 이 이야기에서 아이는 엄마가 자신을 아주 모르는 사람처럼 대하자 불안해졌어. 아이는 잘라버린 인연의 끈을 다시 이어. 그렇게 하는 거 좀 힘들었지만 아이는 해냈어. 이건 끝이 괜찮았군. ‘아주 귀여운 마스킹테이프’에서 아이는 사람마다 귀엽게 느끼는 게 다르다는 걸 알게 돼.
지금 난 쓰지 않는 컴퍼스도 나와. 컴퍼스는 아름다운 동그라미를 그린다면서 빗방울이 그리는 동그라미를 보고 자신도 물속에 뛰어들어. 컴퍼스 혼자가 아니고 사람도 끌어들여. 지우개도 무섭고 컴퍼스도 무섭군. <호치키스키스 스테이플러>에서 호치키스는 종이를 철하고 아이 입술도 철해. 이게 더 무섭군. 아프겠어. <칭찬해요, 칭찬 스티커>에서 칭찬 스티커는 사람을 칭찬하고 이것저것 자꾸 하게 해. 칭찬도 한두번이지 그걸 듣겠다고 뭐든 열심히 하는 거 힘들겠어. <잘못을 바로 잡는 자와 각도기 세트>도 비슷하군. 조금 비뚤어지면 어때. 뭐든 반듯하고 길이가 딱 맞아야 하는 건 아니지.
난 써 본 적 없는데 예전에 양쪽에 빨강과 파랑 색연필이 함께 있는 거 봤어. 빨강 파랑 색연필은 사람 마음을 불꽃처럼 만들거나 차분하게 만들어줬지만, 색연필 힘으로 살기는 어렵지. 색연필은 닳을 테니. <사랑이 넘치는 공부 세트>를 쓰면 자꾸 공부하게 돼. 이것도 그렇게 좋지는 않군. 공부는 하고 싶을 때 해야지. <눈길을 끄는 형광펜>은 사람 눈길을 끌게 해주지만, 형광펜도 닳았어. 공책과 볼펜은 한짝으로 안즈가 얻게 되고 지금까지 나온 문구 이야기를 써. 그런 안즈는 볼펜이 공책에 그린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
수정 펜은 볼펜이 공책에 그린 블랙홀을 지워. 이건 거의 수정 펜이 가진 원한을 푼 거군. 공책과 볼펜이 둘만 짝이 된다고 해서. 오래된 먹물은 그림으로 남아. 먹물은 심술을 부리지 않았지만, 여기 담긴 이야기는 문구의 저주 같아.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