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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쓴 소설을 모른다
기유나 토토 지음, 정선혜 옮김 / ㈜소미미디어 / 2023년 9월
평점 :
품절
모든 걸 기억하는 게 좋을까, 모든 걸 잊는 게 좋을까. 아니 모든 걸 기억하는 게 안 좋을까, 모든 걸 잊는 게 안 좋을까. 긍정스럽게 생각하는 사람은 모든 걸 기억하는 것뿐 아니라 모든 걸 잊는 것도 좋다고 여기겠다. 난 둘 다 싫다. 사람은 하루하루 살면서 기억을 쌓으면서 잊기도 한다. 많은 사람이 그렇게 살겠다. 뇌에 문제가 생기고 모든 걸 기억하거나 모든 걸 잊기도 하겠다. 소설에서 본 거지만, 모든 걸 기억하는 사람은 괴로워 보였다. 이번에 만난 소설 《나는 내가 쓴 소설을 모른다》는 오토바이 사고로 뇌를 다치고 그때까지 살았던 기억은 있지만, 새로운 건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 이야기다.
기시모토 아키라는 소설가다. 두해 전 사고로 전향성 건망증으로 두 해 동안 기억은 하나도 없다. 아키라가 잠에서 깨고는 어제 기억이 없다는 걸 깨닫는다. 세면대 거울을 보니 어쩐지 자신과 다른 자신이 비쳤다. 거울엔 일어나자마자 바로 컴퓨터를 켜고 ‘인계’라는 걸 보라고 쓰여 있었다. 아키라는 그 말에 따라 컴퓨터를 켜고 인계를 읽고 자신이 오토바이 사고로 전향성 건망증이라는 걸, 사고가 나고 두해가 지났다는 걸, 두해 동안 자신이 새로운 소설을 썼다는 것도 알게 된다. 날마다 그 일을 되풀이하면 하루가 짧을 것 같다. 자신이 쓴 소설도 잊어버리니. 기억이 없는데 그걸 읽고 이어서 써나갈 수 있을까. 아키라는 어떻게든 해나간다. 날마다 일어나면 당황하고 인계를 읽고 자신이 할 일을 한다. 지금 생각하니 그런 거 힘들겠다.
사람 기억은 중요하다. 그 기억이 있어서 자신뿐 아니라 둘레 사람과 관계를 맺어가겠지. 오늘이 지나면 그날 일은 잊어버리고 다른 오늘을 맞는다니. 남들은 앞으로 나아가는데 자신은 제자리일 것 같다. 자신은 잊어도 시간은 흘러가고 나이를 먹는다. 아키라도 그런 두려움이 있었다. 친구인 슈는 이론물리학자로 여자친구도 사귀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 같았다. 동생인 히나타는 스무살이 되고 대학생이 됐다. 아키라는 처음에 히나타를 못 알아봤다. 그날 인계를 다 읽지 않아서였다. 히나타는 두해 동안 많이 바뀌었나 보다. 고등학생에서 대학생이 돼서 그럴지도. 부모는 일찍 세상을 떠나고 둘뿐이었다.
그날 일어난 일과 자신이 한 것 생각한 것을 아키라는 다음 날 자신한테 글로 남겼다. 자신이 쓴 거여도 어색한 느낌이 들 것 같다. 아키라가 전향성 건망증인 걸 아는 사람이 몇 사람 있어서 다행이다. 바 마스터 소설 편집자. 그렇게 많은 건 아닌가. 소설 편집자는 아키라가 어떤지 알아야 하는구나. 아키라는 오늘 하루를 살면서 두해 동안 새로운 소설을 썼다. 그런 거 참 대단하지 않나. 소설도 어떻게 보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기는 한데. 시간은 왔다 갔다 하던가. 앞에서도 말했듯 내가 아키라와 같은 처지였다면 난 아키라처럼 못 살았을 거다. 소설 보면서 그런 생각만 했다. 잊어버리면 소설 한권으로도 살겠다. 날마다 같은 거 읽어도 어제 본 건 잊어버리니. 아키라는 자신이 쓴 소설을 보고 날마다 새로운 걸 읽어서 좋아했다.
시간이 오래 걸리고 힘들었지만, 아키라는 드디어 소설을 끝낸다. 아키라는 자신이 쓴 소설을 걸작이다 여겼다. 소설을 다 쓰고 아키라는 가장 먼저 편집자한테 보냈다. 그다음 소설이 나오고 소설이 잘됐다로 끝날까, 소설이니 그렇게 안 될 거다 생각할까. 아키라가 쓴 소설을 다른 소설가가 먼저 써서 아키라 소설은 책으로 나오지 못한다고 했다. 아키라는 수첩에 여러 가지를 적었는데 그걸 잃어버린 적이 있다. 그걸 주운 소설가가 먼저 쓴 걸까.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지만 증명하기 어렵겠지. 아키라는 좌절했다. 여러 날 방황했다. 아키라는 아침에 일어나면 인계는 읽었지만 자신이 쓴 소설은 다시 읽지 않았다. 소설을 그만 쓰려고도 했다. 카페에서 일하고 파티시에가 되려는 쓰바사는 아키라한테 아키라가 쓴 소설을 한번 읽어보라고 한다. 아키라는 쓰바사와 한 약속을 지키려고 자신이 쓴 소설을 읽고는 놀란다. 자신이 그런 소설을 썼다면서. 아키라는 새로운 소설을 시작한다. 그게 바로 이 소설 《나는 내가 쓴 소설을 모른다》다.
책을 보다보니 가끔 동생 히나타 반응이 이상해 보였는데 그건 별거 아니었나 보다. 카페에서 일하는 쓰바사를 만난 일에는 다른 이야기가 있었다. 그럴 것 같은 느낌은 조금 들었는데. 난 그저 아키라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키라는 앞으로도 소설을 쓰겠다. 소설을 쓰다보면 전향성 건망증 나을지도 모르겠다. 그러기를 바란다.
희선
☆―
설사 기억하지 못한다 해도 하루하루 쌓아올리고 나아왔다. 울적해지고, 웃고, 애쓰고, 나태해지고, 술을 마시고, 한탄하고, 맛을 되새기고, 소원을 빌며 줄곧. 누구나 그런 것처럼, 죽. (33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