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보다 : 봄 2023 소설 보다
강보라.김나현.예소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언제 ‘소설 보다’가 처음 나왔는지 잘 생각나지 않는데, 이것도 여러 해 보는 것 같다. 시간이 참 잘도 간다. 시간 잘 가는 걸 책을 보고 생각하다니. 이렇게 정해진 때 나오는 책을 보면 그런 마음이 든다. 봄 여름 가을 겨울 한해에 네번이잖은가. 늘 그때 그때 바로 못 보지만. 좀 늦을 뿐이고 보기는 한다. 단편소설 세편이니 마음 편하게 보면 될 텐데, 여전히 그게 잘 안 된다. 언젠가도 이 말 했는데, 이건 앞으로도 달라질 것 같지 않다. 아주 안 보는 것보다 조금 낫다고 해야 할까.


 새해, 어느새 지난 2023년 봄에 나온 《소설 보다 : 봄 2023》은 다른 때보다 두껍고 책날개가 없어졌다. 소설가는 셋 다 처음 보는 이름이다. 강보라, 김나현, 예소연. 셋은 모두 2021년에 작가가 되었나 보다. 난 처음 봤지만 누군가는 한번 정도 소설을 봤을지도 모르겠다. 첫번째 소설 <뱀과 양배추가 있는 풍경>(강보라)이 가장 긴 것 같다. 처음 하는 말이 이런 말이라니. 발리섬 우붓에 간 ‘나(재아)’는 모험을 하고 싶었다고 하는데, 다른 사람과 자신은 다르다고 여기는 것 같기도 했다. 발리에도 인도 같은 계급 제도가 있는가 보다. 카스트 제도는 인도에만 있는지 알았다.


 소설 제목 <뱀과 양배추가 있는 풍경>은 그림이기도 하다. 앞에서 제목 쓰면서 비슷한 그림 제목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구나. 그림은 소설 마지막에야 나온다. 재아가 우붓에서 만난 호경한테 받은 그림이다. 그 그림 제목은 없었던 것 같다. 뱀과 양배추를 그린 그림이다 했다. 그렇게 별날 것 없는 그림인가. 누군가한테 그림을 선물한다면 좀 멋진 거 하고 싶을 것 같은데. 호경은 왜 그 그림을 골랐을까. 재아한테 하고 싶은 말을 그림으로 나타낸 걸까. 사실 이 소설 잘 모르겠다. 예술을 해도 계급이 있다, 그것보다 사람은 계급이 있다일지. 재아가 발리에 간 건 요가를 하는 사람이 그곳에 와서였다. 누군가를 가까이에서 보려고 다른 나라에도 가다니 대단하구나.


 두번째 소설 <오늘 할 일>(김나현)에서 ‘오늘 할 일’은 ‘나’와 남편 선일이 일기장에 쓰는 세 가지 계획이다. 선일은 평범한 계획이어도 있는 게 낫다고 여겼다. 그걸 두 사람이 쓰고 서로 보여주다니. 쓰기는 해도 혼자 보면 안 되나. 내가 그런 걸 할 일도 없을 텐데 별 생각을 다했다. ‘나’와 선일은 결혼한 지 얼마 안 되고 집을 샀다. 선일이 두 사람이 돈을 버니 집을 사자고 해서다. 그런 선일이 일을 그만두고 지금은 쉬었다. 다른 일을 알아본다면서 한해 쉬겠다고 했다. 선일이 하겠다고 한 건 웹소설 쓰기다. 선일은 세 가지 일을 하나도 못했다. 글쓰기, 달리기, 장보기였던가. 글을 쓰려고 하니 비행기 소리가 났다. ‘나’와 선일이 산 아파트에서는 낮에 비행기 소리가 들린다고 했다. 낮에만 들린다고 해도 그런 곳에는 살기 어렵겠다. 내가 사는 곳은 가끔 새벽에 들린다. 그게 오래 들리는 게 아니어서 다행이다.


 어쩐지 소음 문제 같지만 그건 아니다. 선일이 다니던 회사에서 일어난 일 때문에 선일은 거기를 그만뒀다. 그걸 뭐라고 해야 할지. 선일은 피해자일까. 끝까지 안 했다면 나았을걸. 선일은 청소년한테 주는 문화카드를 상사한테 받았다. 그건 신청한 사람이 찾아가지 않고 남은 거였다. 그걸 쓰지 않으면 실적에서 1등이 안 되니 선일한테 쓰라고 했다. 이건 잘못인 거지. 안 찾아갔다면 그냥 둬야 하지 않나. 선일은 그걸 쓰고 그 카드를 신청한 사람한테 돈을 보내줬다. 그 일을 회사에서 알게 되고 선일은 월급이 깎이고 본래 하던 일이 아닌 다른 일을 해야 했다. 이런 일 실제로도 있을 것 같다. ‘나’는 나대로 일이 잘 안 됐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한다. 씁쓸한 느낌이 들면서도 많은 사람이 이렇게 살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마지막은 예소연 소설 <사랑과 결함>이다. 고모와 ‘나’, ‘나’와 어머니. 고모와 어머니는 ‘나’한테 사랑을 주지만 괴로움도 준다. 어머니는 아니고 고모만 그랬구나. 고모는 열다섯살이나 차이 나는 ‘나’의 아버지를 어릴 때부터 돌봤다. 부모가 세상을 떠났으니 고모가 거의 부모와 같았구나. 그러고 보니 고모는 ‘나’의 엄마를 올캐보다 며느리처럼 생각한 것 같기도 하다. 아니 모르겠다. 고모는 외로운 사람이어서 괴팍하기도 했다. 조울증 때문이다 여겨야 할지. 고모는 ‘나’한테 사랑을 주면서 ‘나’가 엄마를 더 좋아한다는 걸 안다. ‘나’가 고모 앞에서는 아무리 고모 편을 들어도. 자기 앞에서 좋은 말해도 그게 진심이 아니면 상대는 알지.


 이 소설은 “삶은 기괴한 얼굴을 하고 있다. 나는 그 기괴한 얼굴을 들여다 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171쪽)’ 같다. 누군가 자신한테 잘해줘도 마음에 안 들지도 모르고, 잘 못해주면 그것도 안 좋겠다. 사랑에는 사랑만 있지 않은 건가. 사랑을 주기만 하고 받을 생각 안 하는 게 나을지도. 고모가 사랑을 받으려 했다는 건 아니다. 고모가 불안정했던 건 조울증 때문이구나. 고모도 그것 때문에 괴로웠을 것 같다. ‘나’는 우울증이 덜하기를.




희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