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불 10
최명희 지음 / 매안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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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열권 보기 마음 먹으면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을 텐데, 내가 조금 게으르게 지내는 때 《혼불》을 봐서 이 책 열권 다 보는 데 시간 많이 걸렸다. 책은 모두 열권이지만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최명희 작가는 이걸 얼마나 쓰려고 했던 걸까. 이 ‘혼불’을 빨리 못 본 건 이야기가 앞으로 가지 않아서다. 이야기가 앞으로 가야 다음에는 어떻게 되려나 하고 쉬지 않고 볼 텐데. 이건 핑계인가. 지난 《혼불》 9권에서는 사천왕 이야기를 참 길게도 했다. 마지막 《혼불》 10권, 5부 거기에는 사람들이도 그리 다르지 않다. 아니 마지막 권은 ‘거기 사람들이’에 초점을 맞췄다. 이 제목 보고 ‘거기’는 어디일까 했는데, 거기는 만주인 듯하다. 강모와 강태가 간 곳이기도 하다.


 만주로 간 강모와 강태 이야기가 아주 안 나온 건 아니지만, 조금밖에 나오지 않았다. 9권에는 하나도 나오지 않고. 강모는 학교 전주고보에 다닐 때 역사를 가르쳐 준 역사 선생 심진학을 생각하기도 했다. 그 심진학이 만주 봉천에 왔다. 강모가 먼저 심진학을 알아보고 인사했다. 강태도 함께. 심진학은 강모보다 강태를 편하게 여겼다. 심진학이 역사 선생 아닌가. 조선에서 역사를 가르쳐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는 게 얼마나 싫었을까. 심진학은 조선에서 독서회를 만들고 제대로 역사를 알리려다 경찰에 잡히고 고문 당하고 만주로 떠나왔다. 여러 학생과 학교를 바꾸려다 그렇게 됐구나. 심진학은 만주로 오기 쉽지 않았을 거다. 심진학은 만주로 오고 조선족 이민실록을 써 봐야겠다 생각했다.


 여기에 발해 이야기가 나온다. 고구려에서 발해가 된. 발해는 고구려 사람과 말갈 사람이 만든 나라였다. 신분제도가 있었던 발해에서는 말갈족이 거의 백성이었다. 발해는 이백삼십 년 이어지다 겨우 스무날 만에 망했단다. 한나라가 겨우 이십일 만에 망하다니. 그건 말갈족 백성이 나라가 어떻게 되든 말든 마음 쓰지 않아서였다고. 백성이 살고 싶은 나라여야 다른 나라에서 쳐들어오면 싸우지. 후발해가 나타난 적도 있는데 그 나라는 여러 달 버텼단다. 후발해는 육십년 이어졌다고. 가끔 발해 땅도 한국이었다면 좋았을 텐데 하는데. 거기가 바로 만주구나.


 조선시대에 만주로 끌려간 사람도 많았다. 정묘, 병자호란 때. 고향으로 돌아오려면 돈을 내야 했다. 그런 돈 내주는 사람은 양반뿐이었겠지. 만주 어딘가에는 박씨 마을이 있었다. 조선 선조 때 그곳에 끌려간 사람으로 박씨라는 성을 그대로 이어서 살았다. 말은 중국말을 쓰지만, 여성은 전족을 하지 않고 친척과 결혼하지 않았다. 이거 정말일까. 고려 사람이 러시아쪽에 가고 그걸 잊지 않고 산 사람도 있지 않나. 카레이스키던가. 박씨 마을은 지금도 있을지. 조선이 일본 지배에서 벗어나고 남과 북으로 나뉘고 조선에 돌아오지 못하고 만주에 살던 사람은 조선족이 되었다. 이제 조선족은 조선과 아주 상관없는 사람일까. 어떻게 생각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일본이 조선을 지배하려고 일본 사람을 조선에 오게 하고 조선 사람은 만주로 내쫓기도 한 것 같다. 만주에 가면 잘산다는 거짓말로. 멕시코, 하와이도 다를 거 없었다.


 이 ‘혼불’을 보면서 최명희는 백제를 좋아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남원이나 전주가 옛날에는 백제 땅이기는 했지만. 조선을 세운 이성계도 전주 이씨고 백제 사람이다 여겼구나. 역사란 이긴 사람 처지에서 쓴다는 걸 생각하게 했다. 맞는 말 같다. 이걸 쓰다가 하나 깨달았다. 일본이 조선 사람을 힘들게 하지 않고 잘해줬다면 지금 한국이 없었을지도 모른다는 걸. 나라를 다스릴 때도 민심, 곧 백성 마음을 얻어야 한다. 발해도 말갈족 사람을 대우해주지 않아 망했다. 가난하게 살아도 자기 나라가 있는 게 낫겠다. 나라가 거기 사는 사람한테 해줄 수 있는 건 그리 많지 않다. 나라를 살기 좋게 만들려면 그 나라에 사는 한사람 한사람이 애써야 하지 않을까. 정치 하는 사람이 없어도 안 되겠지만, 그 사람들이 좀 더 그 나라에 사는 사람을 생각하면 좋겠다. 정치가는 자기들만 생각하는 것 같다.


 봉천에서 강모는 부서방을 만난다. 매안에 있을 때 강모는 부서방을 몰랐다. 부서방은 강모 할머니 청암부인한테 은혜를 입었다 여겼다. 강모를 청암부인처럼 여겼다. 강모는 부서방한테 강실이가 어떤지 물어보고 싶었던가 보다. 강모와 강태는 부서방을 만나고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알았다. 부서방은 만주로 올 때 고생하고 영구 농장에 갔다가 죽을 것 같아서 달아났다. 그곳은 농사 지을 만한 땅이 아니었다. 조선 사람을 그런 곳에 살게 하다니. 매안과 거멍굴 이야기는 마지막에 조금 나왔다. 강실이는 여전히 옹구네 집에 누워 있고, 강태 아버지 기표는 만주로 떠났나 보다. 강실이 아버지 기응은 강실이가 가기로 한 절에 갔다가 강실이가 거기에 가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된다. 효원은 강실이가 살아 있기만을 바랐다.


 소설이 끝이 나지 않아 아쉽구나. 매안 이씨 집안은 기울어 가고 강모는 종손이 무거워 달아나고. 아내인 효원은 생각하지 않고 강실이만 생각하다니. 오유키는 강모와 함께 있다 해도 그리 좋아 보이지 않는다. 강실이는 몸을 추스르기는 할지. 몸도 중요하지만 마음도 중요한데, 강실이 마음은 살고 싶어하지 않는다. 끝은 나지 않았지만, 《혼불》 다 만났구나. 시간이 흐르면 누군가는 괜찮아지고 누군가는 힘들게 살겠다.




희선





☆―


 심진학은 말했다.


 “오늘은 일본이 우리를 잠시 친 것 같지만, 우리를 지렁이로 폄하해서 군화발로 무참히 짓밟겠지만, 우리는 짓뭉개진 오욕에도 결단코 죽지 않을 것이네. 밟은 그 발보다 오래 살아서, 우리 이름 우리 혼을 이어갈 것이다. 개한테 물리어도 생살은 돋아나듯이.”


 가슴에 꽃심이 있으니. 피고, 지고, 다시 피어.  (29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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