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이 택배로 왔다 창비시선 482
정호승 지음 / 창비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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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호승 시인 이름은 알지만 시집을 제대로 본 건 지난번 시집 《나는 희망을 거절한다》가 처음 아니었나 싶다. 그렇다고 정호승 시인 시를 한번도 안 본 건 아니다. 다른 책에 실린 시를 봤다. 지금 생각하니 정호승 시인 시집 한권 더 본 것 같기도 하다. 이런 게 뭐 그리 중요할까 싶기도 하다. 시집으로 만나는 건 다른 느낌이 든다. 어른이 보는 동화도 만났다. 정호승 시인은 시뿐 아니라 다른 글도 썼다. 그런 사람이 정호승 시인만은 아니구나. 정호승 시인은 시를 쓰고 어느새 쉰 해가 됐다고 한다. 시를 쓰고가 아니고 시인이 되고구나. 쉰 해나 시를 생각하고 쓰다니 대단하다. 정호승 시인은 앞으로 시를 쓸 수 있다면 쓰겠다.


 이 시집 제목 슬픈 느낌이 든다. 《슬픔이 택배로 왔다》니. 어떻게든 슬픔이 오지 않으면 좋을 텐데. 사는 것 자체가 슬프기는 하다. 내가 이렇게 생각하게 된 건 언제부터였던가. 나도 잘 모르겠다. 어릴 때는 이런 생각 안 했을 거다. 그저 살았겠지. 살면서 이런저런 일을 겪다 보니 슬픔이 많아진 건지도. 정호승 시에는 <슬픔이 기쁨에게>도 있다. 제목은 아는데 어떤 내용인지는 잊어버렸다. 가장 기억에 남은 건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인데.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도 있다. 앞에서 말한 시 제목은 시집 제목이기도 하다. 시집은 안 봤지만, 시 제목은 알다니 좀 신기하구나. 다른 책에 저런 시가 실려서겠다. 정호승 시인 시를 조금 알 때는 사랑 시를 자주 쓰나 하는 생각도 했다. 내가 참 단순하구나. 시 조금 보고 시인을 어떻게 아나.




슬픔이 택배로 왔다

누가 보냈는지도 모른다

보낸 사람 이름도 주소도 적혀 있지 않다

서둘러 슬픔의 박스와 포장지를 벗긴다

벗겨도 벗겨도 슬픔은 나오지 않는다

누가 보낸 슬픔의 제품이길래

얼마나 아름다운 슬픔이길래

사랑을 잃고 두 눈이 멀어

겨우 밥이나 먹고 사는 나에게 배송돼 왔나

포장된 슬픔은 나를 슬프게 한다

살아갈 날보다 죽어갈 날이 더 많은 나에게

택배로 온 슬픔이여

슬픔의 포장지를 스스로 벗고

일생에 단 한번이라도 나에게만은

슬픔의 진실된 얼굴을 보여다오

마지막 한방울 눈물이 남을 때까지

얼어붙은 슬픔은 택배로 보내고

누가 저 눈길 위에서 울고 있는지

그를 찾아 눈길을 걸어가야 한다


-<택배>, 22쪽




 앞에서 시집 제목을 말해서 그 시를 옮겨봤다. 시 제목은 <택배>구나. 코로나19 뒤로 택배가 훨씬 많이 늘었다. 슬픔도 택배로 오다니. 슬픔이 온다면 기쁨도 오겠다. 많은 사람은 택배가 오면 기뻐하는구나. 자신이 산 물건이 오는 걸 테니. 슬픔이 담긴 택배는 누가 보냈을까. 그걸 보내는 건 시간 같다. 시간이 흐르면 슬픔이 늘어나니 말이다. 아니 시간이 흐른다고 슬프기만 한 건 아니구나. 슬퍼도 웃을 일은 일어난다. 그럴 때 웃으면 뭔가 잘못한 것 같은 느낌이 들겠지만, 슬프다 해도 자연스럽게 웃음이 나오면 웃어도 되겠지.


 지난번에도 부모님 이야기를 시로 썼던데 이번에도 어머니 아버지 이야기가 있다. 거기에 더해 정호승 시인 자신의 죽음도 생각했다. 사람은 다 죽는다. 별 일 없으면 그걸 잘 생각하지 않겠지만, 가까운 사람이 세상을 떠나거나 나이를 먹으면 생각하겠다. 정호승 시인은 죽음이 찾아와도 발버둥치지 않겠다고 한다. 어렸을 때는 발버둥쳤지만.




인생은 사랑하기에는 너무 짧고

증오하기에는 너무 길다  (<모닥불>에서, 49쪽)




 사랑하고 살기에도 짧은 삶이다 하는구나. 누군가를 미워하면 삶이 길게 느껴지겠다. 길고 지루하게. 그렇다고 싫은 사람을 좋아할 수는 없지 않은가. 누군가를 싫어하고 미워하면 사는 게 지옥 같을지도 모르겠다. 정호승 시인이 사랑을 말하는 건 시인이어설까. 자연을 사람을 모든 걸 사랑해야 시를 쓸 거 아닌가. 그런 거 쉽지 않을 것 같다. 가까운 사람은 좋아하고 사는 게 마음에 좋겠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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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3-08-17 22: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슬픔이 택배로 왔다, 제목 넘 좋네요.
인생은 사랑하기에는 너무 짧고-사랑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라서..
증오하기에는 너무 길다-증오만 하고 살기에는 삶이 지루해져서...

희선 2023-08-18 23:32   좋아요 0 | URL
택배로 오는 게 슬픔보다 기쁨이면 좋겠습니다 기쁨이든 슬픔이든 시간이 가면 가기는 하겠네요 사랑과 미움은 아주 다른 건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희선

서니데이 2023-08-18 22: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집에 찾아보면 정호승 시인 책이 있을 것 같기도 한데, 평소에 시집을 잘 읽는 편이 아니라서 한번 찾아봐야겠네요.
날씨가 계속 덥습니다. 다음주에는 조금 나아지면 좋겠어요.
희선님, 더운 날씨 건강 조심하시고, 편안한 주말 보내세요.^^

희선 2023-08-18 23:34   좋아요 1 | URL
정호승 시인 시집 많이 나왔겠습니다 시인이 되어 시를 쓰고 쉰 해가 됐으니... 앞으로도 시 쓰기를 바랍니다

팔월 반도 넘게 갔군요 다른 때는 덜 더웠던 것 같은데... 이 더위도 시간이 가면 가겠지요 서니데이 님 건강 잘 챙기세요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