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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봄 그리고 벤 (리커버 에디션)
미바.조쉬 프리기 지음 / 우드파크픽처북스 / 2019년 7월
평점 :
눈이 채 녹지 않은 이른 봄에 남자는 길에서 벌을 보았습니다. 저는 그런 거 보면 그냥 지나칠 텐데. 남자는 움직이지 못하는 벌을 조심스럽게 종이에 놓고 쌌습니다. 벌이 있을 공간은 남겨두었지요. 잘못하면 벌이 찌부러질 테니. 집으로 돌아온 남자는 종이를 폈어요. 벌을 종이 위에 둔 채 볕이 드는 창가에 두었어요. 다친 새라면 어딘가 치료라도 해줄 텐데, 추워서 쓰러진 벌은 따듯하게 해주면 될까요. 벌을 돌보기로 하다니 신기하네요.
남자가 병뚜껑에 물을 넣어서 벌 옆에 놓아두니 벌이 물을 마셨습니다. 벌은 정신을 차린 거지요. 남자는 벌 옆에 꽃도 놓아두었어요. 남자는 작은 벌을 보고 일찍 세상을 떠난 자기 아이를 떠올렸습니다. 아이는 여름엔 창밖을 오래 바라보는 걸 좋아하고 언제나 남자를 졸졸 따라다녔어요. 아이는 겨울엔 도서관에서 하루를 보냈어요. 그런 걸 떠올리는 건 마음 아플 것 같네요. 남자는 아이한테 뭐든 해주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한 걸 아쉬워했어요. 남자는 벌한테 이것저것 해주었습니다.
사람과 벌이 마음을 나눌 수 있을까요. 아주 못할 건 없겠습니다. 남자가 차를 마실 때 벌도 차를 마셨어요. 그 모습 좋아 보였습니다. 그렇게 남자와 벌이 오래 산다면 좋겠지만 그건 바랄 수 없는 일일지도 모르겠네요. 어느 날 남자가 쓰러지고 병원에 실려갔어요. 다행하게도 남자는 다시 깨어났어요. 남자의 친구가 집에 혼자 남은 벌을 병원에 데리고 왔어요. 벌은 화분 속 꽃에 있었어요. 벌을 옮기는 방법으로 그것만큼 좋은 건 없겠습니다. 남자는 벌을 다시 만나서 기뻤어요. 시간이 흐르고 남자는 병원에서 나오고 집으로 돌아갔겠습니다. 벌과 함께.
벌은 여럿이 모여서 살기는 하겠지만, 남자가 구한 벌은 그 뒤로도 남자와 살았을까요. 벌은 몸이 건강해지고 다른 친구를 찾아갔을지. 그건 모르겠네요. 벌이 친구한테 돌아갔다 해도 괜찮을 거예요. 다시 봄이 왔거든요. 벌은 남자를 기억하고 남자를 찾아왔을 겁니다. 이건 제 바람이지만. 벌은 한해밖에 못 살지도 모르겠군요. 그건 잠시 잊는 게 좋겠어요. 세상에는 사람이 알 수 없는 신비한 일도 일어나잖아요. 이런 생각도 할 수 있겠습니다. 남자가 구한 벌은 어려서 세상을 떠난 남자의 아이가 벌로 다시 태어나고 길에서 우연히 남자와 만나게 됐다고. 제가 별 생각을 다했습니다.
가까운 사람이 세상을 떠나는 건 무척 슬프고 마음 아픈 일입니다. 그때는 살기 힘들어도 시간이 가면 덜 슬프고 덜 아픕니다. 그렇다고 그게 아주 사라지지는 않겠지요. 남은 사람은 떠난 사람을 기억하고 사는 것밖에 할 수 없습니다. 자신이 기억하면 죽은 사람은 자기 안에 살아 있는 거잖아요. 추운 겨울이 가고 따스한 봄이 오듯, 슬픔에 빠진 마음도 가끔 기쁨에 들뜨기도 하겠지요. 그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우리는 모두 그렇게 이어왔어요.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