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방학
최진영 지음 / 민음사 / 2019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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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달 전에는 최진영 장편소설을 만나고, 이번에는 단편소설을 만났습니다. 소설 한편 한편을 보다보니 《이제야 언니에게》에 나온 것과 비슷한 게 여기에도 나왔더군요. <첫사랑>에 나온 지혜와 우현은 제야와 승호와 비슷해요. 뭐가 비슷하냐면 초등학교, 중학교 때까지 글짓기와 그림대회에 나가는 게. 그것만 비슷하고 다른 건 다릅니다. 제야가 일기장을 태우는 모습도 나오는데, 그 모습은 마지막에 실린 <0>에도 나와요. 일기장을 진짜 태운 건 최진영이었을지도 모르겠네요.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여자 형제는 어떨지. 그건 여기에 두번 나와요. <돌담>과 <겨울방학>에. 그렇다 해도 두 이야기는 달라요. 소설이라 해도 작가 이야기가 아주 없지는 않겠지요. 저는 여전히 잘 모르겠지만. 그런 걸 찾으려 하지는 않았는데, 어떤 글을 보고 어쩌면 이건 최진영 이야기일지 모르겠다고 짐작만 했어요. 이 말 어떤 소설 보고도 했을 거예요. 소설과 소설가는 따로따로 생각하는 게 낫겠지요. 저는 그럴 때가 더 많습니다.

 

 여기에는 소설이 열편이나 실렸어요. 평론가는 소설을 묶거나 하나의 주제로 쓸지도 모르겠지만, 저는 그러지 못합니다. 열편 다 말하기 어려울지도. 조금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도 있었어요. <囚>, <막차> 그리고 <0>. 한편도 아니고 세편이나 되는군요. 囚수는 가둔다는 말인데, 여기에서는 정말 ‘나’가 어딘가에 갇혔어요. 누가 가뒀다기보다 자신이 거기에 스스로 들어가서 나오지 않는 것 같아요. 다른 사람이 나오라 해도 나가봤자 좋을 건 없다 하더군요. 그렇게 자신을 가두는 사람은 ‘나’만이 아닌 듯했습니다. 그런 사람 실제 없지 않네요. <돌담>에도 딸이 사고로 죽고, 부모는 둘레 사람한테 이런저런 말을 듣다가 집에서 나오지 않았군요. <막차>는 무서운 느낌이 듭니다. 뭐가 무섭냐면 막차 운전사가 차를 거칠게 몰다 뭔가와 부딪친 것 같았는데 멈추지 않고 그대로 달려요. 정말 버스에 무언가 치인 건지. 버스 운전사는 사고가 많이 일어나는 곳에 신호등이 있는 걸 보고는 화를 내기도 했습니다. 사고가 일어났지만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게 있을지도. <0>은 제목부터 뭔가 싶습니다. 여기에서 ‘나’는 누군가한테 받은 책을 찾으려 해요. 그 책을 찾아서 보면 ‘나’는 글을 쓸 것 같았어요. 여러 사람한테 책을 물어보니 다 다르게 말하고 자기 이야기를 했어요. 그런 게 재미있게 보이면서도 왜 ‘나’는 그 책을 이제야 찾을까 했습니다. 보일 때는 책을 펴 보지 않고 다른 데 쓰고는. 갑자기 생각난 물건을 찾으려 하면 안 보이기도 합니다. 저도 얼마전에 생각난 물건이 있는데 그게 어디 있더라 하다 찾지 않기로 했습니다. 찾으려면 엄청나게 큰일이 될 것 같아서.

 

 앞에서 세편은 짧게 말했군요. <돌담>을 보니 세월호가 떠오르기도 했는데. 차 사고로 죽은 딸을 오랫동안 생각하는 부모를 보니. 그런 이야기도 있고, 어린이 장난감과 문구를 만드는 회사에서 많이 넣으면 안 되는 화학 첨가제를 넣는다는 걸 ‘나’가 듣고 시간이 조금 흐른 뒤에야 그렇게 해서 돈 받고 싶지 않다고 해요. 많은 사람이 안 좋다고 하는 걸 잘 모르기도 하고 알아도 그걸 따지지 않을 듯합니다. 먹고 살려고. 먹고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걸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저라고 잘 하는 건 아니군요. 모르는 게 많을 듯합니다. <겨울방학> 보고는 요즘 아이는 다 아파트만 집이라 생각하나 했어요. 그건 넓은 아파트에 사는 아이가 그렇겠지요. 제가 보기에 이나 고모는 그렇게 가난하지 않아요. 보통이에요. 진짜 가난한 건 잘 곳도 없고 하루 한끼도 제대로 못 먹는 거죠. 사람은 하루에 한끼라도 먹고 잘 곳이 있으면 삽니다. 그래도 고모는 이나가 자신을 가난하게 봐도 화내지 않고 이나한테 잘해 주더군요. 이나가 고모 집에 오고 며칠 뒤부터는 하던 일도 쉬고 이나하고 시간을 보냈어요. 그랬더니 이나는 고모가 가난하다는 걸 생각하지 않게 됐어요. 고모와 조카라 해도 식구겠지요. 늘 함께 밥을 먹지는 않겠지만. <가족>이라는 이야기도 있어서. 주은은 부모 없이 혼자였어요. 그런 자신을 자기와 사귀는 수호 부모한테 고아라 해요. 그런 말을 했더니 분위기가 이상해졌습니다. 어쩌면 저도 다르지 않을지도 모르겠어요. 누구한테나 부모가 있다고 생각하는 건. 세상에는 부모가 다 없거나 한사람만 있는 사람도 많습니다.

 

 앞에서 <첫사랑>에 혜지와 우현이 나온다고 했지요. 혜지는 글쓰기를 좋아하고 우현은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어요. 두 사람 마음은 엇갈렸어요. 우현은 중학생 때부터 혜지를 좋아했지만 혜지는 다른 사람을 좋아했어요. 그건 바로 우현이네 누나 우미였어요. 그러니 혜지는 우현이나 우미한테 그걸 말하지 못하겠지요. 우현이 억지부리는 건 보기 싫었지만, 나름 재미있었습니다. <의자>는 언젠가 <악스트>에서 먼저 만난 것 같아요. ‘나’는 할머니 손에 자라고, 아버지가 중동에서 일하고 돌아왔을 때는 어색하게 여겼어요. ‘나’는 부모보다 할머니가 더 편했을지도 모르겠군요. ‘나’가 집에 가기 싫어서 늦은 밤까지 돌아다니다 우연히 같은 중학교에 다니는 소진을 만나고 잠깐 말하고 같이 자판기 커피를 마셔요. 그 뒤부터 ‘나’는 엄마 아버지를 더는 마음 쓰지 않았어요. 그건 대체 뭐였을지(친구와 만나고 자판기 커피를 마신 일이 ‘나’를 갑자기 자라게 한 건지).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어느 날 ‘나’는 또 소진을 보고 알은체하고 자판기 커피를 함께 마셔요. 그 뒤 ‘나’는 할머니 생각을 덜해요. 그렇다고 잊지는 않았어요. 참 신기하지요. 어쩌면 ‘나’가 소진을 만난 것보다 그냥 소진과 별 말 없이 잠시 자판기 커피를 마신 게 위로가 된 건지도. 전 이렇게밖에 생각하지 못하겠네요. ‘나’는 자판기 커피가 식을 때까지만 앉아서 쉬기에 적당한 의자를 만들어요. 소진은 잠시 만나도 편안한 사람이었을지도. 의자 같은.

 

 예전에 최진영은 세상에 바이러스가 나타나 많은 사람이 다른 곳으로 떠나는 이야기 《해가 지는 곳으로》를 썼어요. 그러고 보니 거기에는 동성애 같은 것도 나왔군요. 그건 그렇게 중요하지 않지만. <어느 날(feat. 돌멩이)>도 지구에 위기가 닥쳐오는 이야기예요. 미국 땅 만큼 큰 돌덩이가 언젠가 지구에 부딪친다니. 그래도 ‘나’는 카드 결제를 할부로 바꾸려고 비씨카드 고객센터에 날마다 전화를 걸고 공모전에 낼 글을 고쳐요. 비씨카드 고객센터에는 여전히 일하는 사람도 있고 그만둔 사람도 있어요. 모두가 죽을지도 모르는데 카드 결제에 마음 쓰다니. 어쩐지 그런 마음 알 것 같습니다. <오늘의 커피>는 끝까지 보면 마음이 따듯해집니다. 따듯하게 하기도 하고 여유를 갖게 하기도 하는군요. 자신은 무엇을 기다릴까 생각할지도. 사람 삶은 기다림으로 가득합니다. 그동안 조가 힘들었는데 이제는 마음 편하게 살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희선

 

 

 

 

☆―

 

 삶은 활짝 펼쳐진 종이가 아니고 규칙 없이 구겨진 종이다. 펼쳐진 채로는 도무지 만날 수 없는 것들이 구겨지면 가까워지고 맞닿고 멀어지기도 한다.  (<첫사랑>에서, 103쪽)

 


 가족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으니까.

 

 그런가.

 

 이성애자를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처럼.

 

 낯설어서 그런 건가.

 

 어떤 사람은 까닭을 듣고 싶어하잖아. 고아인 까닭, 동성애자인 까닭. 사실 까닭이 어디 있냐. 그냥 그렇게 태어난 사람도 있는 거지. 근데 꼭 까닭이나 사연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런 걸 들어야만 이해하는 사람이 있거든.  (<가족>에서, 134쪽~1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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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1-22 00: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삶은 활짝 펼쳐진 종이가 아니고 규칙 없이 구겨진 종이다. 펼쳐진 채로는 도무지 만날 수 없는 것들이 구겨지면 가까워지고 맞닿고 멀어지기도 한다]
조만간 종이처럼 화면이 펼쳐지고 둘둘말리고 접히고 절대로 구겨지지 않고 굴곡없는 화면과 완벽한 영상 비율 망원, 광각, 초광각 렌즈10배줌 카메라 까지 부착된 스마트폰 손에 쥐게 되면 모든 완벽한 시스템이 부합되지 않은 인생은 낙오자 탈락자로 사회가 만들어 버릴것 같네요 ㅜ.ㅜ

초딩 2021-01-21 23:52   좋아요 2 | URL
우앗 의식의 흐름입니다요 ㅎㅎㅎ

희선 2021-01-22 01:13   좋아요 1 | URL
scott 님이 쓰신 글을 보니, 저는 가진 거 없고 완벽한 시스템에 맞지도 않군요 그런 데 맞추기 힘들어요 안 맞으면 안 맞는대로 살아야지 어떻게 하겠어요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