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속은 일요일
슈노 마사유키 지음, 박춘상 옮김 / 스핑크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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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번에 《가위남》을 보고, 다른 소설이 나온 걸 알았다. 그때 본 책이 괜찮았냐고 한다면 잘 모르겠다. 내가 인상깊게 여긴 건 책보다 작가가 이 세상에 없다는 게 아니었을까 싶다. 이런 작가는 더는 새 작품을 못 본다. 한국에 나온 건 《가위남》 하나뿐이었고, 몇해 전에 나온 게 다시 나온 거였다. 어쩌면 이번이 끝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슈노 마사유키가 쓴 소설이 두권만은 아닐 테니 말이다. 《가위남》은 앞부분 봤을 때 어떤 걸 알아차렸다. 그러면서도 아닌가 했다. 왔다 갔다 했구나. 혹시 이번에도 그런 게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이 작품의 탄생에 영감을 준 말라르메는 19세기 프랑스 시인으로, 상징주의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 일상용어뿐 아니라 시나 소설 속 낱말에도 오랫동안 켜켜이 쌓여 굳은 고정관념이 담겨 있습니다. 말라르메는 시에서 이러한 고정관념을 걷어내고 작가가 스스로 발견해낸 상징을 배치해 사람 내면의 심연을 흔드는 작품을 쓰고자 평생을 바쳤습니다. 고정관념의 수영장에서 허우적대는 사람 영혼을 자유가 넘치는 심연의 바다에 풀어놓고자 했지요.  (옮긴이 말에서, 502쪽)

 

 

 앞에 말을 쓴 건 여기에 말라르메 시가 나오기도 해서다. 사람 영혼을 고정관념이 아닌 자유로운 깊은 바다에 풀어놓으려 했다니. 지금 생각하니 이 소설 《거울속은 일요일》도 그런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가위남》에도 그런 면이 있다. 고정관념에 갇히면 보이는 것도 못 본다는. 이번에는 그게 더하다. 어쩌면 범패장이라는 별난 곳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가설지도. 여기에서 말하는 걸 천천히 잘 생각하면서 봐야 했을지도 모르겠다. 범패장이라는 공간이나 사람을 말하는 걸. 조금 이상한 느낌이 들 때가 있기는 했는데, 그렇게 크게 생각하지 않았다. 추리소설 볼 때는 범인이 누굴까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 적이 많아서.

 

 내가 읽은 책 이야기를 잘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잘 못한다. 책속은 2001년으로, 2001년에서 열네해전 1987년 범패장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을 탐정 이스루기 기사쿠가 다시 조사한다. 2001년 모습과 1987년 이야기가 번갈아 나온다. 이스루기는 열네해 전에 범패장에 있었던 사람을 만난다. 범패장은 프랑스 문학 연구자 즈이몬 류시로가 지은 곳으로 즈이몬 류시로는 대학교수를 그만두고 그곳에서 ‘화요회’를 열었다. 화요회는 시인 말라르메가 했던 것이라 한다. 앞에서도 말했듯 난 말라르메를 잘 모르지만 즈이몬 류시로는 아주 좋아하는가 보다. 범패장이라는 이름도 말라르레 시에서 따왔다고 한다. 1987년 7월 7일 범패장에는 열세사람이 있었다. 사람이 많을 때는 더 마음 써서 봐야 하는데, 왜 이렇게 많아 하면서 대충 봤구나.

 

 예전에 범패장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은 그때 여러 사건을 해결한 탐정 미즈키 마사오미가 해결했다. 미즈키 마사오미가 나오는 소설은 여러 권이었다. 의뢰인은 이스루기한테 미즈키 마사오미가 나오는 소설은 실제 있었던 일이라 한다. 범패장 사건은 작가가 소설을 끝맺지 않았다. 이스루기는 사건보다 탐정인 미즈키 마사오미한테 관심이 있었던 걸지도. 선배로 여기고. 그 사건이라 해야 할지, 거기에는 한가지 비밀이 있었다. 소설을 쓴 아유이 이쿠스케는 그걸 밝히고 싶지 않아서 그 소설을 끝맺지 않았다. 아유이 이쿠스케는 이스루기를 이용해서 다른 생각을 했지만 그건 이루지 못했다. 아유이 이쿠스케는 자신이 만든 탐정 미즈키 마사오미가 아닌 진짜만을 바랐다. 더 말하면 안 되겠다. 추리소설이라 해도 사건보다 다른 게 더 중요할 때도 있겠지. 범인이 누군지만 생각하는 것도 고정관념일지도. 지금은 범인을 먼저 말하고 시작하는 소설도 있구나.

 

 이스루기가 말했는지 기억이 정확하지 않은데 이런저런 관(집) 이야기가 나온다. 그걸 보니 아야츠지 유키토 소설이 떠오르기도 했는데 참고문헌을 보니 아야츠지 유키토 소설이 많았다. 뒤에 나오는 중편 <밀/실>에서 ‘밀’은 아유이 이쿠스케가 쓴 소설이지만 실제 일어난 일이고, ‘실’은 열여섯해가 지나고 이스루기 기사쿠가 같은 곳에 가서 어떤 일을 푼다. 밀과 실이라 했지만 ‘밀실’이 나온다. 제목으로 다른 걸 나타내기도 하다니. 내가 《거울속은 일요일》 1장 보고, 2장 보면서 어떤 게 나오기를 기다렸지만 그건 나오지 않았다. 아니 아주 나오지 않은 건 아니었구나. 그때 눈치채야 했는데 아쉽다. 나중에 알고 그래서였구나 했다. 그래도 하나는 맞았다. 맞은 게 뭔지는 말하지 못하지만. 이 책을 볼 때는 더 집중하기를. 이 책을 옮긴 사람이 추상예술이라는 말을 했는데, 난 잘 모르겠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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