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의 피난소
가키야 미우 지음, 김난주 옮김 / 왼쪽주머니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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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청난 자연재해를 겪어봤느냐 하면, 그렇다 해야 할지 아니다 해야 할지. 지진은 아닐지라도 한번 겪어봤다. 시간이 지나도 그건 잊지 못할 것 같고 또 일어나지 않을까 늘 걱정할 것 같다. 몇해 전에 물난리를 겪었다. 어딘가에는 1층이 다 잠길 정도로 비가 오기도 했다지만 내가 사는 곳은 1층에 물이 들어왔다. 집 안에는 삼십센티미터 넘게 물이 들어왔던가. 바깥은 그것보다 더 깊었겠지. 차가 다 잠길 정도였고 냉장고가 떠다녔다. 어딘가에 냉장고를 버려서 그게 떠다닌 건지. 1층이 모두 물에 잠기지 않아 다행일지도. 그렇게 됐다면 더 절망스럽고 어떻게 살아야 하나 했을 거다. 모든 걸 다 버려야 했을 테니 말이다. 한동안은 집에 있지도 못하고 다른 데서 지내야 했겠지. 잠깐이어도 그렇게 지내는 거 엄청 안 좋을 거다.

 

 2011년 3월 11일에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나고 해일이 밀려와 모든 걸 쓸어간 곳 많을 거다. 모든 걸 잃고 목숨만 건진 사람은 피난소에서 살았겠지. 이 소설 보다가 모든 걸 잃고 목숨만 건져도 괜찮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쩐지 난 못 살 것 같았다. 살아 있기만 하면 된다고 말하지만 정말 그럴까. 자연재해가 일어나면 난 살지. 물난리가 나고 한동안 그런 꿈을 꾸고 지진을 느끼고는 지진이 일어나는 꿈을 꾸기도 했다(꿈에서 잘 피하지 못했다). 내가 이런데. 훨씬 큰일을 겪은 사람은 얼마다 더 힘들지. 이걸 보면서 자연재해가 일어날 것을 대비해야 할 텐데 하는 생각 잠깐 했다. 내가 살아 있는 동안 자연재해 더 겪고 싶지 않은데 그건 내 마음대로 되지 않겠지. 한국도 지진에서 안전하지 않지만, 물난리가 더 걱정스럽다. 컴퓨터 걱정되고 내가 글을 써둔 공책과 내가 가진 책도 걱정된다. 종이는 물에 젖으면 구하기 어렵다. 내가 쓴 글 별거 아니지만, 잃어버리면 무척 아까울 것 같다. 내가 살아야 그런 생각이라도 할 텐데.

 

 세상이 어지러우면 아이와 여자가 힘들겠지. 자연재해가 일어나도 다르지 않다. 지진과 해일에 모든 걸 잃고 피난소에서 지내게 된 세 여자 쓰바키하라 후쿠코 야마노 나기사 우루시야먀 도오노도 그랬다. 평소에도 여자는 집안 일과 식구를 돌보는데 자연재해가 일어나고 피난소에서 지내도 그래야 한다. 뭐, 그런 일이. 세 사람이 지내는 피난소 대표는 모두 하나가 되고 식구처럼 지내자 한다. 칸막이로 쓸 게 와도 나눠주지 않았다. 그런 일 실제로도 있었단다. 많은 사람이 모인 곳이기는 해도 칸막이를 해서 개인 생활을 지켜줘야 할 텐데. 남자 여자 화장실도 나눠 쓰지 않고 옷 갈아입을 곳도 없었다. 도오노는 젖을 먹여야 하는 아이도 있었다. 도오노 시아버지는 자기만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시어머니가 해일이 몰려왔을 때 피하지 못한 걸 도오노 탓을 했다. 도오노 남편은 도서관에 있다가 죽었다. 시아버지는 남편 형과 도오노를 결혼시키려고 했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는지. 피해를 입은 사람한테 돈을 주었는데 그 돈은 세대주한테 주었다. 여자는 제대로 돈도 받지 못했다.

 

 후쿠코는 지금까지 남편 때문에 힘들었다. 제대로 일을 하지 않고 도박에 여자 문제도 많았다. 정부에서 나온 돈도 자기가 혼자 가지고 마음대로 다 써 버렸다. 후쿠코는 해일이 일어났을 때 남편이 죽었을 거다 생각했는데. 평소에 남편 비위를 맞추고 하고 싶은 말도 못했던 후쿠코가 이제야 남편과 헤어지기로 마음먹는다. 후쿠코 나기사 그리고 도오노 세 사람은 함께 도쿄로 가기로 한다. 그렇게 마음먹고 하는 거 어려울 텐데 혼자가 아니어서 마음먹지 않았을까. 나기사는 폭력을 쓰는 남편과 헤어지고 아들과 친정 엄마와 살았는데 친정 엄마는 해일에 죽었다. 나기사 아들 마사야는 나기사가 밤에는 술집을 해서 학교에서 아이들한테 괴롭힘 당했다. 그 일 때문에 마사야는 학교에 더는 가지 않았다. 도쿄에 가게 된 걸 마사야가 더 기뻐했다. 그곳에서 다시 시작하고 싶다고.

 

 세 사람이 살던 곳은 시골이라 해야겠다. 한국도 다르지 않겠지만 일본 시골은 가까이에 사는 사람한테 좀 마음을 많이 쓴다. 좋은 뜻으로 마음을 많이 쓰는 게 아니다. 이런저런 말이 많다고 해야 할까. 거의 가부장 사회다. 그런 건 시골이 더하다. 여자는 아무 말 없이 남자가 하는대로 따라야 한다고 한다. 도쿄는 살기 바빠서 다른 사람 일에 덜 관심 갖겠지. 두렵지만 새롭게 살려는 세 사람을 보니 부러웠다. 여자는 좀 더 자기 목소리를 내야 한다. 어쩐지 그런 건 한국이 좀 더 나은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하지만 자연재해가 일어나면 어떨까. 그럴 때도 말할까. 지금은 옛날이 아니다. 한국 여성은 자신이 하고 싶은 말 잘 할 거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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