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fi 문학과지성 시인선 511
강성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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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은 자면서 얼마나 많은 꿈을 꿀까. 꿈을 꿔도 깨고 나면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을 때가 더 많아. 무언가를 보고 자면 그게 꿈속에 나오기도 하고 그 일은 같은 것만 되풀이되기도 해. 어떤 때는 친구가 나오기도 해. 무서운 꿈은 어떤 게 있을까. 귀신 같은 게 나온 적 있기도 한데 모습은 어땠는지 생각나지 않아. 꿈속에서 뭔가한테 쫓기면 잘 뛰지 못해. 이건 실제로도 그럴 것 같아. 무서운 게 보이면 빨리 달아나고 싶어도 발이 그곳에 얼어붙기도 하잖아. 그런 일은 꿈에서 더 자주 일어나던가. 실제로는 그런 일 겪고 싶지 않기는 해. 무서워도 꿈은 깨고 나면 마음이 놓이지만 현실에선 죽을지도 모르잖아. 살다 죽으면 그런가 보다 해도 죽임 당하면 아프고 괴로울 거야. 이런 생각도 하다니.

 

 꿈을 꾸지 않아도 꿈을 꿀 수 있지 않을까. 시인은 자신이 꾼 꿈을 시로도 쓰겠군. 아니 꿈처럼 썼을까. 강성은 시집에 실린 시를 보니 꿈 같아. 춥고 어둡고 길고 긴 꿈. 춥다고 느낀 건 눈 때문일지도 모르겠어. 어떤 사람은 늦은 밤에 일하다 사무실에서 잠이 들었는데 꿈속에서 끝없이 눈이 내리고 그 사람은 거기에 갇혀. 잠을 깨야 사무실에서 나올 수 있을 텐데. 눈, 유령이라는 말도 자주 나와. 시 제목이 유령Ghost인 시가 여러 편이야. 죽은 사람도 유령과 다르지 않군. 죽은 뒤에도 자꾸 무언가를 하는 사람 이야기도 있어. 그건 정말 죽은 걸까. 죽은 것처럼 사는 사람을 나타내는 건 아닐까 싶은 생각이 지금 들었는데.

 

 

 

창문에 돌을 던졌는데

깨지지 않는다

 

생각날 때마다 던져도

깨지지 않는다

 

밤이면 더 아름다워지는 창문

 

환한 창문에 돌을 던져도

깨지지 않는다

 

어느 날엔 몸을 던졌는데

나만 피투성이가 되고

창문은 깨지지 않는다

 

투명한 창문

사람들이 모두 그 안에 있었다

 

-<채광>, 17쪽

 

 

 

집은 햇빛에 불타고

나는 깨끗한 물에서 잠들었다

입술이 파래질 때까지 여름 속에서 나오지 못했다

 

-<환상의 빛>, 20쪽

 

 

 

 앞에서 말한 눈이나 유령이라는 말은 하나도 나오지 않는 시군. <채광>도 <환상의 빛>도 꿈 같아서. 이것 말고 꿈 같은 시는 더 있어. <채광>을 보면 두 가지가 생각나. 어딘가에 들어가고 싶어도 들어갈 수 없는 것과 꿈속 일이. 죽은 사람을 생각할 수도 있겠어. 죽은 사람이 아무리 창문에 돌을 던져도 깨지지 않고 아무도 모를 테니 말이야. 이것도 안으로 들어갈 수 없는 사람에 들어가겠어. 여러 시 가운데서 이 두 편을 함께 옮기다니. 무슨 생각으로 그랬을까. 시 <환상의 빛>을 보니 무척 더웠던 2018년 여름이 떠오르기도 했어. 그러고 보니 <환상의 빛>이란 시도 세 편이군.

 

 

 

새벽 두 시 유모차를 밀며 가는 젊은 여자

한없이 맑은 고층 빌딩 유리창으로

날마다 날아가 부딪치는 여자

여름에도 겨울에도 맨발로 다니는 여자

혼자 동물원에 가는 여자

눈이 내릴 땐 죽고 싶은 여자

불가능과 불가해와 영원이라는 말을 늘 생각하는 여자

파도가 검은 빛으로 변하는 걸 지켜보는 여자

죽은 아이를 업고 다니면서도

왜 몸이 무거운지 모르는 여자

깊은 밤 거울에 빠져 허우적거리다 가라앉아도

다시 살아 기어 나오는 여자

아름다움을 슬픔으로

사랑을 고통으로 아는 여자

그날 이후 얼음이 된 여자

얼음을 도끼로 내리치는 여자

매일 밤 베틀 앞에서 자신의 수의를 짜는

죽지 않는 늙은 여자

 

-<Ghost>, 43쪽

 

 

 

 제목이 Ghost인 시에서 한 편이야. 여자 이야기여서 옮기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어. 이 시에 나오는 여자들은 왜 저런 걸 하는 걸까. 갑자기 누군가한테 죽임 당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 별걸 다 생각했군. 가끔 그런 소설을 봐서 그런지도. 요즘 세상이 무섭기도 하지. 여기에는 <유령선>이라는 시도 있는데, 그걸 보니 세월호가 생각났는데 그걸 생각하고 쓴 시일지(위에 옮긴 것도 이제와서 세월호가 생각나는군).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 우리 출항은 순조로워 보였는데 / 날씨는 맑았고 / 우리가 당도할 항구 날씨는 더 맑고 따뜻했는데 /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유령선>에서, 53쪽)” 이 부분을 보니 더 그랬어.

 

 난 잘 모르겠지만 여기에 실린 시에는 실제 일어난 일도 있을지도. 죽음을 기억하려고 한 걸까. 꼭 죽음만 말하는 건 아닌 것 같아. 따돌림 당하고 약한 사람을 생각하기도 해. 거의 힘없는 사람을 생각하는 거군. 세상에는 힘없는 사람 많지. 꿈이라도 좋다면 나을 텐데. 안 좋은 꿈만 자꾸 꾸고 쉽게 깨어나지도 못하는군. 아니 꿈이라면 언젠가는 깨어나겠지.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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