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떻게 공범이 되는가
맥스 베이저먼 지음, 연아람 옮김 / 민음사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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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겉으로는 아무 잘못도 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누군가의 비윤리적 행동을 방조하거나 묵인하고 있는 경우가 있다. 우리가 알게 모르게 공모에 가담하는 일상의 심리와 구조를 해부하며, “나는 가만히 있었을 뿐인데”라는 말이 얼마나 위험한 자기 기만인지를 드러낸다. 『우리는 어떻게 공범이 되는가』는 우리의 불편한 그 지점을 정면으로 겨눈다.

  책의 1장은 “누구나 공범이 될 수 있다”는 명제에서 출발한다. 맥스 베이저먼은 악의적인 의도를 가진 소수만이 비윤리적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오히려 평범한 사람들조차 침묵과 순응 속에서 공범이 된다는 것이 그의 핵심 주장이다.

  기업, 정부, 종교, 언론 등 거대한 조직 속에서 사람들은 상사의 지시나 조직의 분위기에 휩쓸려 판단을 유보한다. 그렇게 작은 타협이 쌓이고 합리화가 반복될 때, 조직은 전체적으로 부패의 길로 접어든다. 이 책은 그 과정을 “공모의 심리학”이라 부른다.


  책은 1장을 제외한 세 개의 파트로 구성되어 있다. 파트로 구성된다. 파트 1 ‘명백한 공모’에서는 권력자와 부하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직접적인 공모를 다룬다. 베이저먼은 여러 기업과 정치권의 사례를 통해, 리더가 “충성”과 “협력”을 강조할수록 구성원들이 윤리적 판단을 잃어버리는 현상을 설명한다. 목표 달성을 위한 압박이 사람들에게 불법 행위를 정당화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파트 2 ‘일상의 공모’는 더 섬세하고 불편하다. 여기서는 우리가 매일 마주치는 평범한 상황에서의 공모를 다룬다. ‘특권을 누리는 사람들’, ‘가짜 예언자에게 빠지다’, ‘권위와 충성’, ‘타인에 대한 신뢰’, ‘비윤리적 시스템에 의한 공모’ 등으로 이어지는 장들은 우리가 “그냥 조직의 일원으로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부정의에 동참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상사의 부당한 지시를 눈 감거나, 동료의 잘못을 알고도 조직의 평화를 위해 입을 다무는 행위가 모두 일상적 공모의 한 형태로 제시된다.

  저자는 이 책에서 공모를 단순히 개인의 도덕성 문제로 보지 않는다. 그는 비윤리적 시스템이 사람들을 공범으로 만드는 구조적 요인을 강조한다. 기업의 성과 중심 문화, 정치권의 충성 경쟁, 종교 조직의 위계질서 등은 개인이 목소리를 내기 어렵게 만든다. 침묵은 곧 생존 전략이 되고, 그 침묵이 반복되면서 조직은 점점 비윤리적인 방향으로 기울어진다. 결국 문제는 ‘나쁜 개인’이 아니라 윤리적 판단을 차단하는 환경이다. 그래서 그는 공모를 끊기 위해서는 개인의 양심뿐 아니라 시스템의 개혁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파트 3은 독자가 실제로 어떻게 공모의 사슬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에 초점을 맞춘다. ‘공모의 심리학’에서는 우리가 스스로를 정당화하는 심리적 메커니즘을 분석한다. “내 할 일이나 하자.”라는 생각이 윤리적 판단을 마비시키는 것이다.

  이어지는 ‘공범이 되지 않으려면’과 ‘리더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서는 실질적인 해법을 제시한다. 개인은 불의 앞에서 침묵하지 않는 용기를 가져야 하며, 리더는 구성원들이 윤리적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시스템을 설계해야 한다. 단기 성과보다 윤리적 기준을 우선시하는 리더십이야말로 공모를 끊어내는 유일한 방법이다.

  『우리는 어떻게 공범이 되는가』가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공모는 타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문제라는 것이다. 우리가 아무 행동도 하지 않을 때조차, 이미 누군가의 침묵 속에서 불의는 자라난다. 그렇기에 이 책은 단순한 윤리학 이론서가 아니라, 현대 사회의 윤리 감수성을 되살리는 행동지침서에 가깝다. 맥스 베이저먼은 “선의의 침묵도 악의의 동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우며, 독자에게 윤리적 선택의 책임을 되돌려준다.


  이 책은 단지 학문적인 분석을 넘어, 오늘의 현실에 대한 경고로 읽힌다. 정치적 양극화, 기업의 불투명한 의사결정, 온라인상에서의 집단적 방관 등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 곳곳에는 공모의 심리가 작동하고 있다. 『우리는 어떻게 공범이 되는가』는 이러한 시대에 조직 윤리와 공모 심리를 되짚는 필독서가 아닐까 싶다.

  우리는 종종 악을 저지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면죄하지만, 이 책은 그 생각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보여준다. 결국 윤리적 사회는 거창한 이상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옳지 않은 일 앞에서 한 사람이 침묵하지 않을 때, 그때부터 변화는 시작되는 게 아닐지 생각해 보며 리뷰를 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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