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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의 책
로스 게이 지음, 김목인 옮김 / 필로우 / 2025년 7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가끔은 책이 내 마음의 속도를 천천히 늦추게 다. 미국 시인 로스 게이의 『기쁨의 책』(필로우, 2025)을 읽으며 그런 경험을 하게 됐다. 사실 이 책을 접하기 전까지 저자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다만 시인이 쓴 ‘일상의 기쁨’에 관한 에세이라니,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까 궁금했다. 요즘 내게 기쁠 일이 딱히 없는 답답한 시기를 지나고 있었기에, 어쩌면 내가 놓치고 있던 기쁨을 되찾기 위한 작은 노력이 아니었을까? 인연처럼 이 책을 만나게 된 것이다.
이 책은 ‘커다란 성취’나 ‘특별한 사건’이 아닌, 아주 일상적인 것들 속에서 기쁨을 길어 올리는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누군가의 웃음, 우연히 주운 낙엽, 잠깐 마주친 낯선 이의 친절 같은 것들.. 기쁨이라 생각하지 않고 그냥 지나쳐 갔을 일상을 저자는 각각의 기쁨으로 기록된다. 읽는 내내, 내 일상에도 이런 순간들이 많았음도 새삼 깨닫게 된다. 다만 내가 그동안 너무 바쁘거나 무심해서 알아차리지 못했을 뿐.
로스 게이는 시인답게 사소한 장면에도 따뜻한 숨결을 불어넣는다. 마치 “여기, 보세요. 이것도 충분히 기쁨이잖아요?” 하고 속삭이는 듯했다. 그 순간 나는 읽는 사람이 아니라, 함께 산책하며 세상을 바라보는 동료가 된 기분이 들었다.
책을 덮고 난 뒤 가장 크게 남은 생각은 ‘기쁨은 멀리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이었다. 사실 우리는 종종 기쁨을 어떤 특별한 날, 혹은 성취 이후에 오는 보상처럼 여기곤 한다. 그러나 로스 게이는 기쁨이 늘 지금 여기, 발치에 놓여 있다고 말한다.
나 역시 요즘 바쁜 일상에서는 “언젠가 여유가 생기면 즐기자”는 말을 자주 했다. 하지만 막상 시간이 생기는 시기는 경제활동이 불안정하기에 그 시간을 제대로 즐기지도 못했다. 기쁨을 미뤄두는 일들은 결국 영영 그 순간을 놓치게 만든다는 걸 이 책은 일깨워 준다. 오늘 마신 커피 한 잔의 온기, 가을바람에 흩날리는 은행잎의 노란빛, 이런 것들을 충분히 느끼고 감사할 수 있다면 이미 우리는 기쁨 속에 살고 있는지도 모르는 것을...
『기쁨의 책』은 단순히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이야기하는 자기 계발서와는 다르다. 오히려 허술하고 불완전한 우리의 삶을 있는 그대로 끌어안고, 그 속에서 빛나는 조각을 찾아내는 글들이 모여 있다.
읽으면서 내 마음도 조금은 가벼워졌다. 기쁨은 멀리 있지 않고, 성취와는 별개로 우리 곁에서 늘 기다리고 있다는 위로가 전해졌기 때문이다. 내가 책을 읽게 된 계기 자체가 답답한 시간을 지나던 중이었는데, 그 시기에 이런 이야기를 만난 건 분명 우연을 넘어선 선물처럼 느껴졌다. 마치 일상에 스며 있던 먼지를 털어내고, 그 아래 숨겨져 있던 빛을 발견한 순간이랄까?
로스 게이의 『기쁨의 책』은 화려한 이야기로 압도하지 않는는다. 대신 아주 소박한 문장들로 우리 삶의 결을 따뜻하게 어루만진다. 책을 덮고 나니, 하루를 조금 더 정성스럽게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남는다.
바쁜 일상 속에서 지쳐 있다면, 혹은 기쁨이란 감각이 희미해졌다고 느낀다면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어쩌면 무덤덤하게 지내던 삶의 작은 순간들이 다시 빛나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들이 모여 우리 마음을 단단하게 지켜주는 힘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전하며 리뷰를 줄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