료의 생각 없는 생각 - 양장
료 지음 / 열림원 / 2025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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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저자가 누구인지 모른다. '료'라는 이름도 낯설었고, ‘런던베이글뮤지엄 브랜드 총괄 디렉터’라는 직책 역시 나에게는 딱히 흥미를 끌만한 요소는 아니었다. 다만 ‘생각 없는 생각’이라는 제목이 이상하게 마음에 걸렸다. 뭔가 익숙한데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평소 내가 자주 떠올리는 공허한 질문들, 무의식처럼 지나치는 고민들을 누군가 기록해놓은 것 같았다. 그런 느낌 하나로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잘 닦여진 길이 아닌, 전혀 가보지 못한 길을 선택했다가 이내 막히고, 다시 돌아나와 또 다른 방향으로 걷기를 반복했던 나의 삶이 이 책의 제목과 닮아 있다는 생각도 들었고. 그 막다른 골목들 틈에서 타인의 생각이라는 작은 빛줄기를 통해 내 안에 어떤 변화가 일어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던 것 같다.


  책은 총 여덟 개의 파트로 구성되어 있지만, 일반적인 에세이나 일기처럼 시간 순서에 따라 흐르진 않는다. 각각의 글들이 서로 다른 색과 질감을 가진 조각들처럼 느껴졌고, 그것들이 어떤 흐름을 만든다기보다는 각자의 자리에 조용히 놓여 있었다. 이질적이면서도 낯설지 않은 느낌. 그래서인지 어떤 글은 지금의 나에게 꼭 맞는 옷처럼 느껴졌고, 어떤 문장은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이의 이야기처럼 멀게 느껴졌다. 그런 거리감마저도 오히려 편안했다.

  글 사이사이에 실린 사진들도 이 책의 인상을 부드럽게 만든다. 여행지의 풍경, 일상 속 소소한 물건들, 빛의 흔적, 낯선 도시의 거리 같은 것들. 그 하나하나가 글보다 먼저 감정을 건드릴 때도 있었다. 저자에게 그것들이 어떤 의미였는지는 모르지만, 내게는 문장이 아니라 이미지로 먼저 다가온 감정들이 있었다. 어쩌면 우리가 기억하는 것들도 대부분 그런 이미지 조각들일지 모른다.

  나도 한때 커피 일을 했었고, 계속 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내가 직접 가게를 차리지 않는 이상, 좋아하는 마음만으로는 일할 수 없다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지금은 지인의 카페에서 커피를 볶아와 지인들에게 내 ㅓ피를 내려주는 정도의 ‘커반인(커피인+일반인)’으로 살고 있다. 그런 나에게도 이 책은 미묘한 연결감을 만들어줬다. 커피를 향한 마음, 브랜딩이라는 행위가 사람의 내면과 닿아 있는 방식, 그리고 이름 없는 일상 속에서 의미를 찾으려는 시도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아주 잠깐, 저자와 비슷한 온도의 마음을 나눈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에게도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내던 때가 있었다. 다만 그 시작이 언제나 나의 진짜 바람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느 순간부터는 하고 싶은 일보다는 할 수밖에 없는 일들로 내 시간을 채우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내 삶이 막혀 있다는 착각도 들었다.

  내 삶이 평범한지, 특별한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점점 더 자극보다는 안정에 마음이 가는 나 자신을 보며, 어쩌면 나는 더 이상 무엇인가를 시작할 수 있는 용기보다는 ‘실패 없는 삶’을 택하려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 나에게 이 책은 마치 멀리서 손 흔들어주는 이웃처럼, 아무 말 없이 존재해주는 책이었다.


  혹시 이 책을 저자의 브랜딩 노하우나 마케팅 전략을 기대하며 집어든 이가 있다면, 살짝 다른 방향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물론 그 사람이 이 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인사이트도 분명 있겠지만, 정작 저자는 그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이 책은 누구나 마음속에 갖고 있을 법한, 그러나 굳이 꺼내 보지 않았던 생각들을 조용히 들춰보게 만든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나도 모르게 멈춰버린 내 생각’들과 조우하게 한다.

  생각 없는 생각. 처음엔 모순처럼 보였지만, 책을 덮고 나서 보니 어쩌면 우리가 가장 많이 하는 생각이 그런 생각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은 그런 생각들을 그저 있는 그대로 인정하게 만드는, 부담 없이 다가갈 수 있는 책이었다 전하며 리뷰를 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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