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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 산책 - 사유하는 방랑자 헤르만 헤세의 여행 철학
헤르만 헤세 지음, 김원형 편역 / 지콜론북 / 2024년 10월
평점 :
*이 리뷰는 책을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했습니다.
스마트폰으로 우연하게 접하게 된 어떤 영상에서 '주변에 빌런이 보인다면 잘 산 것이다. 보이지 않는다면 내가 빌런'이라는 영상을 봤다. 하지만 그건 또 생각하기 나름일지도 모른다. 빌런 입장에서 자신과 대척점에 있는 사람이 빌런이 될 수 있지도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대의 사회의 알게 모르게 타인에게 영향을 주고받게 된다. 타인에게 해를 주고 싶지 않으나 무한 경쟁의 시대에서 그러기는 쉽지 않다. 내가 얻는 게 있다면 누군가는 잃는 게 있다는 것이니... 이 책은 제목과 저자에 흥미가 들어 읽게 됐다.
책은 헤르만 헤세의 이탈리아 여행의 내용을 담은 '새로운 지평을 여는 문', '도시의 물길을 따르면 보이는 것들', '예술이 깃든 순간', '흐르는 사유' 등 총 4장으로 구성된다. 여행을 그리 많이 하지 않기에 여행지에서 수술 등의 경험은 다행히 없었다. 글을 쓰는 이에게 직접 경험이 어떤 영향을 미쳤을지 모르겠다. 글을 따라가다 보면 그림에 대한 내용들을 많이 보게 된다. 분명 해외에서 직접 본 명화의 아우라는 남달랐다. 스페인에서 봤던 엘 그레코의 명화를 실제로 본 이후 엘 그레코의 작품을 한눈에 알아볼 정도가 되었을 정도니... 그런 일들을 떠올리게 하는 듯한 묘사의 글은 읽는 동안 대략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만든다.
가톨릭 신자인 내겐 글에서 나오는 성당에 대한 관심도 생긴다. 로마로 유학을 가 계신 친한 동생 신부님을 떠올리게 하며 과연 내가 이탈리아는 언제쯤이나 가볼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여행을 떠나야 여행에 대한 기록을 할 텐데 여행다운 여행을 다녀온 게 꽤 오래된 일이니... 각각의 글들을 읽으며 여행 일기의 마무리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여운이 남는 마무리가 글을 더 살아 있게 만드는 느낌이다.
지난 주일부터 오랜만에 다른 성당 미사를 드리러 가기 시작했는데 책을 읽으며 앞으로의 일정에서 성당을 세세하게 관찰하는 습관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도 한다. 과거 내가 다른 성당 미사를 드리러 다닐 때 전례 위주로 관심을 뒀고, 이번에는 성가대들에 관심을 뒀는데 그 외에 건축구조나 작품들에 대한 관심도 둔다면 더 풍부하고 유익할 듯하다.
보는 것에도 연습이 필요하다. 대부분 익숙하게 관심이 가는 것들만 보게 되는데 책을 통해 살필 곳을 더 알게 된다.
책을 읽으며 저자의 여행 철학에 대해 명확히 알지는 못하겠으나 그 마음가짐이나 시선에 대해 배우는 게 많은 시간이었다. 헤르만 헤세의 글에 끌리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닐 것이다. 그의 글은 읽는 이들에게 편안함을 주기 때문일까? 전반적으로 읽는 동안 편안했다.
최근 다시 조급해졌다. 내게 주어진 현 자리에서의 시간은 길지 않고, 길어서도 안 되기 때문인지 모른다. 빌런을 해소하려 하려다 새로운 빌런이 되어 버리기 싫어 조용히 사라지는 포지션을 선택하는 게 전부다. 옳은 일 같지는 않으나 진정한 주인공들의 의견은 존중하기에 떠나야 하는 시기. 헤세의 책 제목과 글을 통해 더 생각해 보게 되는 시간이었다 전하며 리뷰를 줄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