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시가 필요한 시간
장석주 지음 / 나무생각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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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독서의 계절이라는 것은 '등불을 가까이해서 글을 읽기에 좋은 계절'이라는 등화가친(燈火可親)에서 유래했다고 하지만 어느 순간 가을에 책 판매량이 줄어 출판 업계에서 밀고 있다는 얘기도 들은 듯하다. 어쨌든 그런 가을 '시를 읽지 않는 시대'라는 말도 떠올리게 되는데 우선 책을 읽지 않는데 뭐 말해 뭐 하겠는가. 그런 시기에 제목에 눈이 갔다. '지금은 시가 필요한 시간' 워낙 많은 책을 출간한 장석주 시인의 시평론집이었고, 내 기억에 오래 남는 내가 샀던 첫 모음 시집을 낸 출판사에서 나온 책이라 더 끌렸던 것 같다. 책 표지의 '시는 미래의 언어다'라는 작은 글씨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아직 남아 있는 가슴속 습작시인 문청의 마음을 움직였다.


  첫 글에서 만나는 시에서 절망보다 괴로운 희망을 만난다. '희망고문'이라는 말이 떠오르는 것은 괜한 게 아니었다. 더 간절할수록 고문의 강도는 강했던 것으로 내 몸도 기억한다. 그런 희망은 희망적이지 않았다는 것과 누군가는 그런 희망을 갖는 이들의 희망을 왜곡시키며 가스라이팅을 한다는 것도 떠올려본다.

  두 번째 글과 시를 '무엇인가 되기 위한 유폐의 날들'을 보며 내 목표를 위해 잠시 개인 약속을 끊고 지내던 때를 떠올린다. 그렇다고 지금 내가 원하던 무엇이 된 것은 아니다. 자격은 갖추었으나 그만큼의 여유까지 얻는 것은 아니기에 아직은 견뎌야 할 시간인지도 모르겠다.

  먹고사는 게 힘들다는 것을 실감하는 시기다. 한창 요트를 조종할 때 코로나가 터지더니 부동산 업계로 와서 공인중개사 자격을 취득해 일을 하니 부동산 경기가 엉망이다. 임대인은 많으나 임차를 할 사람이 없는 현실 집주인보다 세입자의 목소리가 더 커지는 시기, 목소리 큰 세입자라도 보고 싶은 때다.

  안는 것은 사랑의 표현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 대상을 안을 수 없는 상태가 된다는 것은 간접 경험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울 듯하다. 나는 미혼이기에 더 조심스러워지는 것이 아닌지... 이어지는 글을 보며 병원에 누워계신 아버지를 떠올린다. 재활을 하고 계시지만 특별히 나아지시지 않고 현상 유지만을 하고 뼈만 앙상해져 침대에 누워계신 아버지의 모습이 문득 생각났다.

  아직 얼마 남지 않은 골목길이 있는 동네에서 태어나서부터 현재까지 살고 있다. 여전히 과거와 같은 곳에 있으나 주변이 변해버린 공간에 온전히 몰입할 수 있는 밤 시간 가로등이 불빛이 내릴 때 사진으로 담는 게 나의 골목을 기록하거나 추억함이다. 국수 가게는 없었으나 아직 어린 시절 이발소는 건재하기에 아직 내 인생의 황금시대는 끝나지 않은 듯하다.

  「내가 암늑대라면」이라는 시에서 '새끼들의 가냘픈 다리가 굵어지는 것을 바라보는 일'이 내게는 부모님의 다리가 가늘어지는 것을 바라보는 시간이 되어가는 듯하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사랑의 시련과 위기는 그게 이성 간의 사랑이든 가족애이든 맞이하게 되는 필연적인 것이라는 것도 자연스레 알게 되는 게 아닐지...

  28개의 단어의 목소리들에서 낯설지 않음을 발견한 것은 과거 시인과의 산책과 이야기의 흔적이 내 몸 안에 남아 시에 반응을 했었는지도 모른다. 시인은 만물이 내는 목소리를 경청하며 세계에 중계하지만 나는 그 소리를 담아두기만 했던 것은 아닌가 라라는 생각도 들었다.


  시인의 시평론집을 통해 평소 접하지 않던 시인의 시들도 많이 접하게 된다. 집에 있는 시집도 읽지 않는데 시에 대한 글로 인해 시를 읽는다. '지금은 시가 필요한 시간'이라는 데 있는 시집도 잘 들여다보지 않을 정도로 내 마음의 여유는 없을지도 모른다. 아버지의 병환 이후 가장 크게 바뀐 부분이기도 할 것이다. 그런 멈춰버린 시 읽기에 다시금 다가갈 수 있게 해주는 책이었다. 시에 앞서고 뒤서는 평론들도 좋았으나 시인에 대한 저자의 글이 더 기억에 남는 것은 내가 시 보다 시인들에 여전히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지금은 시가 필요한 시간일까? 책을 읽으며 그 물음에 어느 정도 '그렇다'의 의견이 더 커졌다. 일상과 시는 어떻게 가까이하고 있는지 다시금 시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되는 기회가 되었다 전하며 리뷰를 줄인다. 


*이 리뷰는 책을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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