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느린 걸음
김병훈 지음 / 진선북스(진선출판사)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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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SLR로 사진을 찍지 않은지 오래되었다. 그러나 나는 매일 사진으로 기록한다. 언뜻 말이 안 되는 것 같은 말이나 도구의 전환이 이루어졌다. 취미로 찍던 사진은 도구가 DSLR에서 스마트폰으로 변경되며 일상이 되었다. 이번 책은 그런 내 일상의 사진에 활자의 기록이 더하기 위한 시간이었을까? 사진으로 모든 것을 전할 수 없기에 해시태그와 짤막한 글을 적어 봤으나 과연 충분했을지… 책을 읽으며 든 생각이다.



  책은 총 일곱 부분으로 나누어 구성된다. 각각의 제목과 연관되는 저자의 사진과 글들은 페이지를 채워간다. 책이 담긴 흑백사진들과 그 옆의 글을 읽으며 내 어린 시절과 과거의 일들도 떠올리게 된다. 그만큼 많은 것이 변했고 이제는 찾아보기 어려운 순간들도 보인다.


  사진이 직접적으로 글과 연결이 되기도 하지만 저자의 기억으로 풀어지는 글들도 많이 보인다. 저자에게 책을 쓰는 동안 사진은 그런 기억과 연결을 해주는 다리가 되어줬을 듯하다. 흑백이기에 더 담담하게 대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물론, 저자에게는 그 순간의 빛깔들로 사진이 보일지도 모른다. 내가 찍은 과거의 사진들이 비슷하게 다가오듯이…


  장마철 여름이 한창이지만 책을 읽는 시간은 오랜만에 시원했다. 책 속에 보이는 이제 보기 어려운 픙경들, 조금은 긴 글 사이에 저자의 젊은 날이 녹아 있었다. 이상 기후로 내가 있는 곳과 남부 지방의 여름의 온도차는 크고 환경 또한 다른 듯하다. 몇몇 사진이 기록되던 시기에는 그렇지 않았을 것 같은데 편리해졌으나 그만큼 우리가 컨트롤하지 못하는 것들도 더 늘어난 것은 아닌지도 생각하게 된다.


  16년 전의 기억은 나지 않았다. 사진과 글의 제목으로 검색을 하며 당시를 떠올려봤으나 기억이 없다. 내겐 큰 영향이 없었나 보다. 딱 이맘때였는데 기억력이 좋다고 생각했으나 망각의 여백이 많기에 몇몇 기억이 더 또렷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사진은 그때의 기억을 열어주는 문 같은 역할을 한다. 물론, 내가 찍은 사진의 경우 그렇다. 또 어린 시절 봤던 이미지와 비슷한 피사체를 볼 때에도 발을 사이에 둔 문처럼 보이기도 한다. 다섯 번째 파트는 내 어린 시절의 기억도 잠시 떠올리게 하는 시간이었다. 지금은 레트로 감정이 되어버린 추억의 순간들…


  내가 마지막으로 다녀온 여행지는 어디였을까? 문득 사진과 글을 읽으며 나에게 물어본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지 않았던 시기라 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나마 마지막으로 찾았던 제주의 1박2일 카페 투어가 내겐 여행다운 마지막 여행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새로운 여행을 준비를 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눈을 눈답게 대하지 못한 지 20년이 지난 듯하다. 사진 속의 풍경과 눈 내리는 풍경은 보기 좋으나 현실에는 방해가 되기에… 어쩌면 내 걸음이 제 속도를 내지 못하고 머뭇거리게 한다는 탓을 하며 싫어했는지도 모른다. 이제는 군 시절처럼 제설 작업의 부담도 없는데 2년 2개월의 군 생활 중 두 번의 긴 겨울은 내게 눈의 새로운 프레임을 만들어 주고 각인시키기 충분했다.



  흑백사진과 글은 일상 사진을 담는 내게 어떻게 사진을 담을지에 대한 눈을 넓혀주는 시간이었다. 또 망각하고 있던 기억을 꺼내볼 수 있게 하며 내 오만한 일반화를 깨주는 시간이기도 했다. 걷기를 좋아하지만 내 걸음은 충분히 빨랐던 것 같다. 그러기에 지나쳐 가는 것들이 많은 시간이었고, 내가 놓치고 지나간 순간들이 책에 담겨 있다. 내가 사진을 취미로 하기 이전의 사진들이기도 했으나 그만큼 주위를 살피지 않고 앞만 보고 걷기 바쁘던 시간들을 떠올린다.


  이제라도 가끔은 느린 걸음으로 놓쳤던 것들을 바라봐야 하는 시기가 아닐지 충분히 빠르게 걸어왔던 시간이었음을 되돌아보게 되는 시간이다.


  나처럼 사진 기록이 생활이 되어가는 이들과 사진 찍을 게 없다고 말하는 이들이 읽어보면 좋을 것 같은 책이라 전하며 리뷰를 줄인다. 



*이 리뷰는 책을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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