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예술이 시작되었다
EBS <예술가의 VOICE> 제작팀.고희정 지음 / EBS BOOKS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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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제목을 보며 파블로 네루다의 「시(詩)」가 떠올랐다. 책에서 내가 그나마 이름이라도 하는 이들은 세 사람. 피아니스트 김정원, 나태주 시인, 배우 박상원. 책을 보며 그들은 어떻게 현재의 길을 걷게 되었는지 들어보고 싶었다. 그리고 나뿐만 아니라 대학원에서 플루트를 전공하는 조카에게도 보여주기 위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처음은 피아니스트 김정원이었다. 인터뷰어처럼 나도 그를 영화 <호로비츠를 위하여>에서 처음 봤다. 그의 어머니가 방송작가셨고 내가 봤던 드라마 작가셨다는 것을 인터뷰를 통해 처음 알았다. 피아노와의 만남이 그렇게 인상적이었는지... 어린 시절 우리 집에서는 누나 말고는 피아노를 칠 줄 몰랐기에 그 피아노를 처음 만났을 때의 기억은 '이제 우리 집에도 피아노 있다!' 정도였고, '나도 피아노를 배우고 싶은데...'라는 감정이 전부였던 것 같다. 결국 성인이 되어서야 피아노를 배워 바이엘은 끝냈으나 어른이 되어 배우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고 결국 현재는 그때 산 디지털 피아노도 조카들에게 줘서 피아노를 안 친지 오래다. 우리나라 교육에 대한 생각과 클래식의 벽을 낮춰가는 그의 행보를 응원한다.


  사실 이 책을 읽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나태주 시인이었다. 내가 시를 전공했고, 아직도 시를 종종 끄적거리고 있기에 나태주 시인의 처음이 궁금했다. '시, 샘물을 잃지 않는 저수지'에서 나태주 시인의 말이 남아 옮겨 본다.


새로운데 이미 사람들이 다 알 만한 것, 모순이에요. 개성이 뚜렷하고 개성을 잃지 않았는데 그게 보편성을 충분히 가진 거예요.(p.056)


결국에는 내가 추구하는 시의 방향도 둔각의 시인의 말과 같다. 시인처럼 홀로 공부하진 않았다. 대학에서 전공을 하며 합평회도 했으나 등단은... 하지 못했으니... 길이 아닐지도 모르겠으나 그게 정답은 아님을 이제는 알겠다. 그럼에도 시인과의 공통점은 호기심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책에 나온 시는 따로 잘 담아 간다.


  조각가 최우람은 이번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됐다. 대학은 화가인 내 친구와 같은 동문 선배인 듯하다. '기계생명체' 책에 첨부된 사진을 보더라도 이해가 되는 네이밍이다. 그리고 작품의 설명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나만 해도 지갑은 두고 오더라도 휴대전화는 두고 올 수 없다(그걸로 대부분의 결제를 한다). 작가의 이 말이 울림을 준다.



생각만 하고 하지 않으면 거기서 끝나버리니까, 어차피 정답은 없으니까, 지금 하고 싶은 일을 하십시오.(p.097)


정답은 없기에 하지 않으면 거기에서 그만인 것임을 아는 데까지 꽤 걸린 것 같다. 물론 경험하지 않는다면 가슴으로 이해하긴 어려울지도 모르겠지만 최우람 조각가의 말은 할지 말지 고민만 하는 이들에게 좋은 조언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디자이너 이영연 '쓰레기'로 제품을 만드는 이들을 생활 정보 프로그램에서 본 기억이 있는데 그분들 중 한 분이 아닌가 싶다. 솔직한 인터뷰가 마음에 든다. 그러면서도 쓰레기를 버리고 있는 나 자신에게 죄책감이 들지만 거리에 막 버리지 않는 것에 위안을 삼는다. 내 죽음에는 어떠한 쓰레기를 남길지...


  건축가 이충기 교수의 도시 재생 프로그램은 획일화되는 건물들을 벗어나 옛것을 되살리는 작업이 흥미롭게 다가온다. 우리 집도 32년 전에 연와조 건물로 새로 지었다. 한 동네에서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살아오며 동네의 변화를 지켜봤다. 여전히 그 32년 이전부터 있었던 슬레이트 지붕의 집들이 아직도 있기에 책 속 이야기에 관심이 간다. 퇴근길 어린 시절 뛰놀던 공원이 갈수록 작아짐을 확인하는데 공간에 대한 경험이란 말에 문득 떠오르기도 했다.


  안무가 허윤경의 인터뷰 속 '나만의 언어'라는 게 떠오른다. 일반 무용과 다른 안무의 세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인터뷰가 아니었나 싶다.


  만화가 이종범의 이름은 모르나 그의 작품 <닥터 프로스트>는 드라마로 본 기억이 있다. 전공이 심리학이었기에 그런 작품을 쓸 수 있었음도 알게 된다. 작가의 얘기 중 기억에 남는 부분은 다음의 인터뷰다.


'공부'라고 쓰고 '덕질'이라고 읽을 수 있는 그런 활동을 매일 하다보면 예상하지 못했던 곳에서 재미있는 이야깃거리가 나옵니다. 그건 억지로 뭔가 쥐어짜내는 느낌이라기보다는 '우러날 때까지 즐긴다, 우러날 때까지 덕질해본다.'에 가까운 것 같아요.(p.209)

덕질에 대해 부정적이진 않기에 작가의 말에 더 공감이 가는지도 모르겠다. 나도 이미 책 덕질 중이다. ㅎ


  마지막 인터뷰는 배우 박상원 씨다. 어린 시절부터 박상원 씨가 나온 드라마를 꽤 봤기에 반가움이 앞섰다. 초딩(당시 국딩) 시절 봤던 드라마 <인간시장>의 장총찬, <여명의 눈동자>, <모래시계>에도 그가 있었다. 박상원 씨가 '덕업일치' 이뤄가고 있다는 얘기를 읽으며 어떻게 그렇게 꾸준히 배우 활동을 하고 있는지도 이해하게 된다. 인생도 배우처럼 살아야 할 때도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보게도 된다.



  예술인 여덟 명의 인터뷰를 만나며 궁금했던 분야, 낯선 분야의 예술인들을 통해 그들의 시작을 만나보았다. 책을 읽으며 내 처음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여러 직업을 전전긍긍하며 지금의 직업에 이르기까지의 처음에 대해... 분명 어떤 것은 내가 진정하고 싶어 시작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었고, 어떤 일은 얼떨결에 시작해 녹아들었던 일들이 떠오른다. 예술가들의 처음을 만나며 내 처음에 대해 돌아보게 되는 시간이었고 예술을 업으로 살아갈 이들에게 어느 정도의 조언이 되어 줄 수 있는 내용의 책이 아닌가 생각하며 리뷰를 줄인다. 



*이 리뷰는 책을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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