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스듬히 - 시인의 사물이 있는 정현종 시선집
정현종 지음 / 문학판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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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을 전공했다고 하더라도 문인을 실제로 만나기란 또 그렇게 쉽지는 않은 듯하다. 작품으로 작가나 시인을 만나길 원하는 이들이 있다면 그들의 육성으로 작품 창작의 노하우를 들으려는 이도 있다. 내 경우는 후자의 케이스였다. 학창시절 유난스럽게도 이리저리 많이 다녔고 그 덕에 아는 문인들이 꽤 있었다. 가끔은 우연한 만남으로 뜻밖의 만남을 갖기도 했었다. 정현종 시인도 그런 뜻밖의 만남이었다.


  복학 후 찾았던 영인문학관 전시. 후배들과 전시 관람을 마치고 나오다 기특하다며 학생들을 버스정류장까지 태워주신다는 친절하신 선생님들. 운전을 하시던 분께서는 이상문학상 수상 작가였던 최윤 선생님이셨고, 함께 타고 계신 분은 정현종 선생님이셨다. 마침 시를 전공하고 있었기에 사진으로 뵌 적 있는 정현종 선생님과의 만남은 그렇게 스치는 순간이었다. 문학을 전공하는 학생에게 전해진 따뜻함은 20여 년이 되어가는 시점에도 남아 있다.


  이번 시선집을 읽게 된 이유는 평소 정현종 시인의 시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내 블로그에도 정현종 시인의 시 여섯 편의 전문이 있다.


  시집은 '시인의 사물이 있는 시선집'이기에 새로운 시를 찾기보다는 시인의 시들과 소품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여백을 선호하는 내게 기존의 시집보다도 확장된 여백으로 꾸며진 시선집. 중간중간 보이는 시인의 사물들은 각각의 시와 여백에서 존재감을 드러낸다. 오래된 소품에서부터 그리 오래되지 않은 사물들까지... 시인이 어떤 책을 읽었고, 읽고 있는지 등을 생각하게 만든다.


  시선집 중 띠지에서도 홍보가 되는 시 '비스듬히'는 함께 읽고 싶어 전문을 인용한다.


비스듬히


생명은 그래요.

어디 기대지 않으면 살아갈 수 있나요?

공기에 기대고 서 있는 나무들 좀 보세요.


우리는 기대는 데가 많은데

기대는 게 맑기도 하고 흐리기도 하니

우리 또한 맑기도 하고 흐리기도 하지요.


비스듬히 다른 비스듬히를 받치고 있는 이여.

p.123


  시인의 육필 원고 이미지와 함께 마주 보며 수록된 시. 의도였는지 아닌지 모르겠으나 페이지 번호도 123이다. 비스듬하게 기대기 좋은 계단의 이미지가 떠오르는 것은 왜 그럴까?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고 있는 시기. 함께 한다는 것의 소중함을 체감할 수 있는 시기가 아닌가 싶다. 누구도 기대지 않고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그동안 모르고 지냈는지도 모르겠다. 각자도생의 시대라 생각했으나 결국 모든 게 이어져 있었고, 기대어 살아가고 있었다는 것도 생각하게 되는 시기가 아닌가 싶다.


  시를 전공했기에 아는 선후배 시인들과 그 지인 시인들과의 교류는 지금도 이어진다. 나 또한 다시 문청으로 돌아왔기에 이번 시집은 그만큼의 의미가 더했는지 모른다. 우연이 인연으로 이어지고, 그 인연이 내 인생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을 해보게 하는 시간이 되는 책이었다. 여백 없이 바쁘게 살아가는 이들이 시간을 두고 읽어보면 좋겠다. 여백과 주변을 둘러보는 시간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며 리뷰를 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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