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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았기에 더욱 빛나는 ㅣ 일본문학 컬렉션 1
히구치 이치요 외 지음, 안영신 외 옮김 / 작가와비평 / 2021년 6월
평점 :
작년에 전후세대 작가들의 책들을 몇 권 읽었는데 인상 깊었던 소설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과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이었습니다. 그 시대의 특유에 분위기가 개인적으로 맘에 들었는데 그 이유는 개인적으로 50,60년대 일본영화를 좋아하는 성향과 비슷한 거 같습니다.
암튼 <짧았기에 더욱 빛나는>은 19세기 후반 20세기 초반 출생에 일본을 대표하는 작가 6명의 단편을 모은 소설집입니다. 대부분 요절했던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습니다. 아마도 소설집 제목이 단편집임과 동시에 작가들의 짧은 삶을 중의적으로 표현한 것 같습니다. 목차가 대략 출생순으로 되어있고 대부분 아주 짧은 단편인데 모두다 시와 같은 묘사들이 인상 깊었습니다.
아무래도 작년에 <인간실격>을 읽어서 그런지 가장 인상 깊었던 작가는 다자이 오사무의 두 단편이었습니다. <벚나무와 마술 피리>는 여성 화자라는 것이 독특합니다. 남성 작가가 쓴 여성화자라는 점이 흥미로웠고 화자가 두 명이라는 것도 구성적인 측면에서 독특했습니다. 아픈 여동생에게 그녀의 연인의 편지를 읽어주는데 곧 세상을 떠난 동생을 위해 언니는 이별을 고하는 연인의 글 대신 거짓으로 자신이 쓴 글을 읽어줍니다. 이미 알고 있는 동생도 그 언니의 마음을 헤아려주고요. 이 상황 자체의 시작은 노부인의 회상으로 시작됩니다. 그 노부인이 바로 언니이고요. 액자식 구성이라고 볼 수 있는데 당시의 사회 상황을 고려한 단편으로 보입니다.
<앵두>라는 작품에서는 인상 깊은 한 문장으로 시작과 끝을 맺습니다. '부모가 자식보다 소중하다고 생각하고 싶다'라는 문장입니다. '생각하고 싶다'라는 문구가 눈에 띕니다.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생각하고 싶다'라는 말을 쓴 거 같은데 전후시대에 가부장적인 문화권에서의 아버지의 열패감을 잘 표현한 작품입니다.
일본에선 작가의 이름을 딴 가장 유명한 상 중에 하나가 바로 '아쿠타가와'상 일 것입니다. 그 이름만 들어보고 실제로 그의 글은 이 소설집을 통해 처음으로 접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이쿠타가와 류노스케는 역시나 35세의 짧은 삶을 살았습니다.
<밀감>이라는 단편은 한 남자의 정서를 잘 표현한 작품인데요. 기차를 타고 이동 중인 한 남자가 삶의 권태에 빠져 있는데 한 소녀의 순수한 어떤 행동으로 인해 그 권태가 잠시 나마 사라진다는 내용입니다. 기차 안 풍경과 창문을 열고 배웅하는 동생에게 밀감을 던져주는 언니의 모습이 너무나 순수하게 표현된 작품이었습니다.
<아버지>의 경우, 두 중학생 친구가 주인공인데 수학여행을 위해 기차역으로 보인 학생들 사이로 차림이 누추한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학교에서 인기가 많은 '노세'라는 학생이 그를 '런던거지'라고 칭하면 친구들에게 웃음을 줍니다. 그러나 그는 다름아닌 자신의 아버지였습니다. 아들이 아프기 전까지 소통이 없던 아버지가 아이의 즐거운 모습을 이제서라도 보기 위해 나타난 것입니다.
화자로 등장한 중학생이 세상을 떠난 노세의 장례식에서 '그는 효자'였다고 아버지 앞에서 일부러 말하는데 뭔가 애처롭고 가슴이 찡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설국>의 첫 문장이자 가장 유명한 명문장인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와 같은 인상적인 문구처럼 이 단편들에서도 장편에서 볼 수 없는 함축적이고 인상 깊은 묘사들이 많이 있습니다. 장편에서 느낄 수 없는 단편만의 정서를 다시 한 번 느껴볼 수 있는 단편집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