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여기가 맞는데………….‘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주변 상가는 그대로인데 약국이 있어야 할 자리에 정작 약국이 없었다. 상가와 상가 사이 텅빈공터만이 이 과장을 맞이했다.
"하아……. 젠장. 정말 미치겠네. 귀신에 홀렸나?"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이 과장이 경험한 약의 효능은 기필코 현실이었다.

- 단 한 알로 당신의 피로를 말끔히 날려드립니다!
- 한 알로 느끼는 1년의 여유. 삶에 지치셨습니까? Low Spirit이 책임져 드립니다!
- 당신의 정신 피로회복제, Low Spirit

이른바 로스 헤븐.
전 세계를 휩쓴 끔찍한 연쇄 자살 유행의 시작이었다. 자살률 1위에 빛나는 한국은 그 상황이 더욱심각했다.
혼자서는 죽을 수 없다며 캡슐 안에 든 로스 가루를 음료수에 타 사람들과 나눠 마시고 혼수상태에빠지는 집단 로스 헤븐 사건이 벌어지는가 하면, 배우자를 잠재우기 위해 다량의 로스를 음식에 섞어먹이는 사건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다.

이 과장은 결국 차장을 달지 못한 채 회사에서 쫓겨났다. 만년 과장으로 경력을 마친 그에게 지인들은 조롱의 의미로 이 과장이라는 직함으로 그를 불렀다. 사회생활에서 위로 가지 못하고 정체되다 결국 도태돼버린 이 과장의 껍데기가 이름을 대신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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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신에 가득 찬 이 과장의 물음에 약사가 대답했다.
"쳇바퀴 돌 듯 돌아가는 바쁜 일상 속에서 한 번쯤 푹 쉬고 싶다는 생각 해 보신 적 없으신가요?"
이게 무슨 개풀 뜯어먹는 소리인가…………
"물론 있죠. 할 수만 있다면 쉬고 싶은데 여건이 안 되니까 이렇게 개처럼 뛰면서 사는 거 아니겠습니까? 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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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한 달 뒤, 은기는 병원에서 목을 매달아 자살했다. 

한 가지 이해할 수 없는 건 살인에 쓰인 도구 《성처녀의 욕망》이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책의 희귀성을 알고 있는 자가 훔친 것인지, 책이 스스로 다음 제물을 찾아 나선 것인지는 아무도 몰랐다. 

은기의 가족에게 벌어진 참사가 책에 씐 악귀의 소행인지, 책을 원하는 애서광의 광기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아무도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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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이 오래되면 거기에 혼이 깃든다는 걸 아나? 특히 여러 사람의 손을 탄 이 헌책 같은 경우는 조금 특별하다네. 헌책을 원하는 자들의 열망, 책을 손에 넣지 못한 자들의 시기와 원망, 책을 가진 자의 불안……. 그 모든 감정이 책에 고스란히 쌓인다네. 그렇게 십 년이 지나고 이십 년이 지나다 보면 책에 뭔가가 씌는 것이야. 이 책이 몇 사람의 피를 뒤집어썼는지 자네는 아는가? 저주받은 이 책 때문에 말이야! 꼴을 보니 자네도 이 저주받은 책 때문에 돌이킬 수 없는 길을 떠났구먼. 뭐, 자업자득 아니겠는가? 훔친 책으로 저주를 받았으니 누구를 원망하겠는가. 원망하려면 자신을 원망해야지……. 쯧쯧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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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다 가진 듯 책을 바라보는 은기와는 달리 그때부터 은기 가족에게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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