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질 녘 고슈가도를 달리는 흰색 세단 승용차는 담배 연기와 피비린내로 가득했다.

뒷좌석에는 화려한 넥타이를 맨 남자와 패턴무늬 셔츠를 입은 남자 사이에 긴 머리 여자가 축 늘어져 있다. 여기저기 찢어진 청바지와 싸구려 티셔츠 하나뿐인 옷차림에, 아무렇게나 내던진 팔은 오물로 더러웠다.

"신도, 요리코…… 나이는 스물둘. 도산코홋카이도에서 태어난 사람이나 동물을 가리키는 방언입니다."

"사무소 앞이 시끄럽다고 해서 젊은 애들을 보내 살펴보게 했더니 저게 난동을 부리고 있었답니다. 보기 드문 종자라고 해서 스카우트해 왔습니다."

하카타인형
17세기에 하카타에서 만들어진 인형. 작품 소재는 주로 가부키나 노의 등장인물, 무사상, 길조물 등이다. 점토로 원형을 만들고 점토나 석고로 틀을 떠 많은 복제품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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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의 삶을 그리지도 그들의 삶을 알려고도 하지 말라. 자신과 상관없는 일은 멀리하는 게 현명한 처사. 남의 일에 간여하기를 잘하는 자는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법이니. 훌륭한 명성을 얻을 일에만 온 힘을 다하도록 하라.
ㅡ미겔 데 세르반테스, 《돈키호테》 중에서

텔레비전으로 인해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같은 시간에 같은 우스개를 듣고 앉아 있게 되었지만 쓸쓸한 것은 여전하다.
ㅡT. S. 엘리엇

진정한 리더는 합의를 찾는 사람이 아니라 합의를 만들어내는 사람이다.

— 마틴 루서 킹

대체로 신사상을 주장하는 사람, 아니 어떤 ‘새로운 주장’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소수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상하리만큼 극소수이지요.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 모든 부류와 그 밑의 세부 부류에 속하는 인간이 탄생할 비율은 어떤 자연법칙에 의해 정확하게 결정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 — 도스토옙스키, 《죄와 벌》 중에서

어리석은 자의 가장 확실한 증거는 자기주장을 고수하고 흥분하는 것이다. — 몽테뉴, 《수상록》 중에서

관찰하지 않고 인간을 사랑하기는 쉽다. 그러나 관찰하면서도 그 인간을 사랑하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깊은 사색 없이 단순 소박하기는 쉽다. 그러나 깊이 사색하면서 단순 소박하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 서준식, 《서준식 옥중서한》 중에서

서준식

인권운동가. 재일교포 2세로 태어나 한국에 유학하던 중 형 서승과 북한을 방문했다가 1971년 ‘유학생 간첩단’ 사건으로 체포되어 7년 형을 선고받았다. 1988년 비전향 좌익수로는 처음으로 석방되었다. 1993년 인권운동사랑방을 꾸려 한국을 대표하는 인권운동 단체를 이끌었다.

우리의 가장 어두운 시간을 극복하게 해주는 것은 제방이 무너졌을 때 낯선 사람을 받아 주는 친절, 친구가 직장을 잃는 것을 보느니 차라리 자신의 근로 시간을 줄이는 근로자들의 이타심입니다. 결국 우리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연기로 가득찬 계단을 뚫고 가는 소방대원의 용기뿐만 아니라 아이를 양육하는 부모의 의지이기도 합니다.
ㅡ버락 오바마, 〈2009년 대통령 취임 연설〉 중에서

다른 사람이 먼저고 나는 그다음이라는 생각이 중요하다. 이것이 내가 자라면서 배운 윤리의 전부다. 그러니 ‘얘야, 투덜거리지 말고 참고 하렴’.
— 오드리 헵번

남들이 보기에는 먼지만 한 가시 같아도, 그게 내 상처일 때에는 우주보다도 더 아픈 거예요.

— 영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중에서

이 세상을 살면서 상처를 받을지 안 받을지를 선택할 수는 없지만, 누구로부터 상처를 받을지는 고를 수 있어요.

— 소설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 중에서

나는 나의 할아버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잘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분의 손자가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에 훨씬 더 관심이 있다. — 에이브러햄 링컨

우리 모두가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준 것보다 훨씬 많은 빚을 지고 있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 — 힐러리 클린턴

한 가지 생각이란 물이 그대로 멈추어 있는 상태와 같지요. 결국 썩어요. 다른 생각, 다른 행동, 다른 가치관이 서로의 산초의 역할을 해서 부패를 막아주어요.

— 리영희, 《21세기 아침의 사색》 중에서

진정한 발견이란 새로운 땅을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각을 갖는 것이다.

— 마르셀 프루스트

당신이 개미라면 검열하겠나. 그들은 당신이 무서운 것이다. 검열의 욕망은 나약함에서 나온다.

— 줄리언 어산지

줄리언 어산지

오스트레일리아의 저널리스트. 내부 고발 전문 인터넷 언론 위키리크스의 설립자이다. 위의 말은 2014년 <시사인>에 실린 주진우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나왔다.

항의해야 할 때 침묵하는 죄가 겁쟁이를 만든다.

— 에이브러햄 링컨

일부 국민들을 오랜 세월 속이는 것도 가능하며, 전 국민을 잠시 속이는 것도 가능하긴 하지만, 전 국민을 영원히 속일 수는 없다. — 에이브러햄 링컨

정말 해야 할 일은 책임자로부터 보상을 받아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책임을 져야 할 위치에 올려놓지 않는 것이다. 신 혹은 지배계급으로부터 보상을 요구할 것이 아니라 신이 정말 필요한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는 것이다.

— 슬라보예 지젝

슬라보예 지젝

슬로베니아의 철학자. 헤겔, 라캉, 마르크스를 전공했다. 전체주의, 인종주의 등에 반대하는 활동가이며, 현실 정치에도 적극적인 관심을 보인다. 또한 영화를 중심으로 하는 문화 비평으로도 유명하다. 주요 저서에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 《삐딱하게 보기》 등이 있다.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일은 많다. 그러나 우리는 그 배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전혀 모른다.

— 하인리히 뵐,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중에서

유일한 선은 앎이요, 유일한 악은 무지이다.

— 소크라테스

권위에만 의존하는 윤리 체계는 없다.

— A. J. 에이어

진정한 자유란 단지 사슬을 벗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자유를 존중하고 보장하는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한다. — 넬슨 만델라

혁명은 다 익어 저절로 떨어지는 사과가 아니다. 떨어뜨려야 하는 것이다.
-체 게바라

지구의 나이를 하루로 보고 자정에 지구가 시작되었다고 가정해보자. 최초의 단세포 생물은 새벽 4시쯤, 최초의 바다 식물은 저녁 8시 30분쯤, 그리고 공룡은 밤 11시가 되기 직전에 나타나서 밤 11시 39분쯤 멸종했다. 인간이 나타난 것은 밤 11시 58분쯤이고, 농업이 시작되고 도시가 건설된 시각은 자정에서 불과 몇 초 전이다. — 빌 브라이슨, 《거의 모든 것의 역사》 중에서

생존경쟁에 의해 일어나는 변이는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어떤 이유로 생긴 것이든, 어느 종이든 그 개체에 얼마간의 이익을 주는 것이라면 그 개체를 보존하도록 작용할 것이고, 보편적으로 그것이 자손에게 유전될 것이다.

— 찰스 다윈, 《종의 기원》 중에서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다. 그리고 이 병에 걸리는 것은 인간뿐이다. 인간이기 때문에 절망할 수 있는 것이다.

— 쇠렌 키르케고르, 《죽음에 이르는 병》 중에서

만약 우리가 약하고 의지할 데 없는 사람을 의도적으로 무시한다면 어느 정도의 이익이 있을지는 몰라도 극도의 죄악도 함께 존재할 것이다.

— 찰스 다윈, 《인간의 유래》 중에서

종교 없는 과학은 절름발이이며, 과학 없는 종교는 장님이다.

—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기존 종교의 훼방꾼이 되지 않고서는 철학을 가르칠 방도를 알지 못한다. — 스피노자

나도 신新무신론자들이 발끈하는 심정에는 공감한다. 그러나 내가 깨달은 것 중 하나는 종교에 관한 말다툼이 역효과를 낳을 뿐, 사람들의 깨침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 카렌 암스트롱, 《신을 위한 변론》 중에서

카렌 암스트롱

세계적인 종교비평가. 17세가 되던 해 수녀로 귀의하지만 7년 후 환속한다. 이후 BBC의 종교 다큐멘터리를 맡으면서 본격적으로 종교비평가의 길을 걷는다. 세계의 종교들은 갖가지 신조와 경전을 갖고 있지만, 그 속에는 공통적으로 ‘공감’이 흐르고 있음을 주목했다.

유토피아를 창조한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치통 없는 세상이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치통 환자와 비슷하다. 그들은 일시적인 것, 그래서 소중한 무엇인가를 영속적인 것으로 만드는 식으로 완벽한 사회를 만들고자 했다. 하지만 그것은 잘못되었다. 인류는 계속 나아가야 하고, 거대한 전략이 준비되어 있지만 자세한 예언은 우리가 관여할 바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 더 현명한 처신일 것이다.

— 조지 오웰, 《영국식 살인의 쇠퇴》 중에서

사람을 만든다는 것은 주제넘은 소리다.
다만, 우리는 사람이 자랄 수 있는 터를 만드는 일에 도전하려 한다.

— 와타나베 이타루, 《시골 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 중에서

와타나베 이타루

일본 오카야마현 마니와시의 시골 마을 가쓰야마에서 빵집 다루마리를 운영하며 이윤을 내지 않는다는 신조로 건강하고 정직한 빵을 만들어 팔았다. 그의 삶은 저서 《시골 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로 알려져 많은 이들에게 자본주의의 대안을 고민하게 했다.

변화를 가져다주는 사람 또는 시간을 기다리기만 한다면, 변화는 오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바로 우리를 기다리던 그 사람들이다. 우리가 찾던 그 변화는 바로 우리 자신이다.

— 버락 오바마

버락 오바마

미국의 제44, 45대 대통령. 인권변호사 출신으로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되었다. 핵무기 감축과 중동평화회담 재개 등에 힘쓴 공을 인정받아 2009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명분 없는 전쟁 반대, 전 국민 건강보험 혜택, 교육비 절감,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세제 개편 등 사회복지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우리는 유한한 실망은 받아들이되, 무한한 희망을 결코 잃어서는 안 된다. — 마틴 루서 킹

세상에는 일곱 가지 죄가 있다. 노력 없는 부, 양심 없는 쾌락, 인격 없는 지식, 도덕성 없는 상업, 인성 없는 과학, 희생 없는 기도, 원칙 없는 정치가 그것이다.

— 마하트마 간디

魯迅
희망이란 것은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이나 마찬가지다. 원래 땅 위에는 길이란 게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그게 곧 길이 된다. — 루쉰

Che Guevara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속에는 불가능한 꿈을 가지자. — 체 게바라

위대한 성취를 하려면 행동하는 것뿐만 아니라, 꿈꾸는 것도 반드시 필요하다.
-아나톨 프랑스

아나톨 프랑스

프랑스 소설가이자 비평가. 소설 《실베스트르 보나르의 죄》 《타이스》 《붉은 백합》을 썼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문단보다 사회 전체에 대한 관심이 큰 문학가로 살았다. 1921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희망은 어떤 상황에서도 필요하다.

— 새뮤얼 존슨

새뮤얼 존슨

18세기 후반에 영국 문학을 주도한 인물. 셰익스피어 전집 출판 등 17세기 이후의 영국 시인 전기와 작품론을 정리했다. 〈워싱턴 포스트〉에서는 지난 1000년의 역사에서 최고의 업적을 남긴 인물 중 하나로 그를 선정했다.

참호처럼 기쁨을 방어하라.

— 마리오 베네데티

마리오 베네데티

우루과이의 작가. 1920년 태어나 2009년에 세상을 떠났다. 80여 권의 소설, 희곡, 시집을 남겼다. 그의 글은 수많은 가수들의 아름다운 노랫말이 된 것으로 유명하며, 사회 참여 활동에도 적극적이었다.

여러분, 어려움에 굴하지 마십시오. 외로워하거나 고립되어 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꽃처럼 희망도 추수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 마르코스, 《우리의 말이 우리의 무기입니다》 중에서

마르코스

1994년 멕시코 치아파스에서 봉기한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의 부사령관. 사파티스타는 멕시코 원주민의 권익 보호와 풀뿌리 민주주의 운동을 지향하는 저항군이다. 낡은 군용 모자, 검은 스키 마스크, 그리고 담배 파이프가 그의 트레이드 마크이다. 소총과 폭탄 대신 언어와 인터넷으로 전 세계의 반(反) 신자유주의 운동의 상징으로 떠오른 21세기형 게릴라이자 작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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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줄이 재심 무죄판결을 받은 조작간첩사건은 대한민국에서 반세기 동안 펼쳐진 공포정치의 살아 있는 증거다. 민주화시대를 맞은 지 30년 넘게 시간이 흐른 지금도 조작간첩을 만들어낸 공포정치의 유산은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헛된 희망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불과 석 달 후 유신쿠데타를 일으켜 종신집권체제를 수립했다. 김일성 주석은 사회주의 헌법을 새로 채택하고 개인숭배와 전체주의 독재체제를 더욱 확고히 했다.

흔히 김대중 대통령이 남북관계의 틀을 바꿨다고 말한다. 김대중 대통령의 개인사로 보든, 역사적인 제1차 남북정상회담으로 보든, 그렇게 말할 근거는 충분하다. 그런 공로를 국제사회가 인정했기에 노벨평화상도 받았다. 하지만 남북관계의 틀을 바꾼 사람은 노태우 대통령이었다고 하는 것이 객관적이고 공정한 평가라 생각한다. 노태우 대통령은 남북관계를 개선했고 진지한 태도로 옛 사회주의국가들과 수교했다.

노태우 대통령은 남북한의 체제경쟁이 대한민국의 완승으로 끝났음을 확신하고 북한을 제거해야 할 적이 아니라 잘 관리해야 할 위험으로 여겼으며, 미군의 전술핵무기는 북한을 관리하는 데 도움이 되기보다는 자극할 뿐이라고 판단했다. 그는 남북관계의 기조를 이념·군사적 대결에서 평화공존과 교류협력으로 전환함으로써 한반도의 국지적 냉전체제를 해체하려고 했다.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 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 제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20년 10월 10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연 노동당 창건 75주년 열병식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군사력이 그 누구를 겨냥하게 되는 것을 절대로 원치 않습니다. 우리는 그 누구를 겨냥해서 우리의 전쟁억제력을 키우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합니다."

북한이 원하는 것은 체제안전보장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예전에는 말로 평화를 이야기하면서 내심 ‘적화통일’을 꿈꿨겠지만 지금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그들도 안다. 북한은 생존을 보장받기 위해 정전협정을 대체하는 평화협정 체결을 원하며 미국과 수교해 국제사회의 일원이 되기를 원한다.

서독은 동독을 흡수통일하려고 한 적이 없다. 동독 국민이 원하고 동독 정부가 결단할 때까지 참고 기다리면서 교류·협력하고 지원했을 뿐이다. 동독이라는 위험요소를 제거하려 하지 않고 막대한 비용을 들여 안정적으로 관리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동독 주민들의 신뢰를 얻었고 동독 정부의 무장을 해제했다.

노태우 대통령의 북방정책은 브란트 총리가 펼쳤던 동방정책의 한국 버전이었다.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이 같은 관점에서 평화공존과 높은 수준의 교류·협력을 성사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우리 정부의 태도와 국민의 판단은 결정되어 있다. 평화체제를 수립해 어떤 경우에도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 남북한이 평화롭게 공존하면서 양측 모두에게 유익한 사업을 하는 것, 북한이 핵과 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 개발을 포기하고 미국과 수교해 국제사회의 정상적인 구성원이 되는 것, 이산가족 상봉과 생사 확인을 포함한 인적 교류와 식량 의약품 등 인도적 지원을 주고받는 것, 그리고 북한 당국과 인민들이 원할 때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아래 국가의 통합을 모색하는 것이다. 우리는 다른 선택을 생각할 수 없다.

역사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이니, 그것은 엄청난 재산을소유하지도 않으며 전투를 벌이지도 않는다. 모든 일을 행하는것은, 소유하고 싸우는 것은, 현실의 살아 있는 인간이다.
-에드워드 H. 카, 『역사란 무엇인가』

대유행을 막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국가역량을 총동원하고 시민의 일상생활을 제약하면서 방역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시간을 벌기 위해서다. 효과가 확실한 예방백신과 치료제가 나올 때까지, 또는 바이러스의 변이가 진전되어 독감 수준으로 치명률이 낮아질 때까지 대유행을 늦춰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는 것이 방역의 보건정책적 목표다.

지금의 40대, 50대는 다른 연령층에 비해 수가 많다. 그들이 변화를 기피하는 보수적 또는 과거 회귀적 고령 유권자가 된다면 대한민국은 일본처럼 혁신이 불가능한 사회가 되어 물질에 대한 개별적 욕망과 북한에 대한 감정적 증오가 지배하는 나라로 머물 것이다.

역사는 역사 밖에 존재하는 어떤 법칙이나 힘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역사는 사람의 욕망과 의지가 만든다. 더 좋은 미래를 원한다면 매 순간 우리 각자의 내면에 좋은 것을 쌓아야 한다. 우리 안에 만들어야 할 좋은 것의 목록에는 역사에 대한 공명도 들어 있다.

한국현대사에는 갈피마다 누군가의 땀과 눈물, 야망과 좌절, 희망과 절망, 번민과 헌신, 어리석은 악행과 억울한 죽음이 묻어 있다. 짧지 않은 그 이야기를 마치면서, 나는 내 자신과 동시대의 벗들을 위로하고 싶다.

‘주어진 시대의 환경을 운명으로 받아 안고 의미 있게 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겠소. 우리는 우리의 역사를 살면서 오늘을 만들었으니 이제 젊은이들이 살아가는 역사를 지켜봅시다. 우리 각자의 내면에 아직도 아름다운 감정과 소망이 남아 있다면 저마다의 방식으로 풀어내면서 삶의 마지막 날까지 서로 등 두들기며 걸어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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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대법원이 재심 무죄를 확정한 사건들이다. 재심이 진행 중인 사건이 많아서 얼마나 더 무죄판결이 나올지 아직은 알 수 없다. ‘조작간첩 재심 무죄’를 키워드로 인터넷 포털 뉴스를 검색해보자. 모두가 간첩죄를 적용한 사건은 아니지만 정보기관과 검찰과 법원이 북한의 사주를 받았거나 북한과 연계됐거나 북한을 이롭게 하려는 목적으로 활동했다는 혐의를 씌워 수사하고 기소하고 유죄판결을 했다는 사실만큼은 예외가 없다.

평화통일론을 주장했다가 사형당한 정치인 조봉암(1959), 박정희 정부가 북한 앞잡이로 몰아 사형한 『민족일보』 사장 조용수(1961),• 간첩죄로 기소한 1차 인혁당 사건(1964), 작곡가 윤이상과 화가 이응노 등 유럽 지식인들을 엮어 넣은 동백림 사건(동베를린 사건, 1967), 이중간첩 이수근(1967), 납북어부 간첩 서창덕(1967), 조총련 간첩 김복재(1970), 납북어부 간첩 박춘환(1971), 유럽 거점 간첩단 사건 관련 조사를 받던 중 중앙정보부에서 사망한 최종길 교수(1973), 이철 등 민청학련 사건(1974), 손두익·전국술 등 울릉도 간첩단(1974), 김우종 교수 등 문인 간첩단(1974), 김우철 등 형제 간첩단(1975), 납북어부 간첩 정규용(1976), 김정사 등 재일동포 유학생 간첩단(1977), 석달윤·김정인 등 진도 간첩단(1980), 신귀영·신춘석 등 가족 간첩단(1980), 한국전력 검침원 간첩 김기삼(1980), 재일교포 간첩 이종수(1982), 나진·나수연 남매 간첩단(1981), 재일교포 간첩 이헌치(1981), 조총련 간첩 최양준(1982), 미법도 섬마을 간첩단(1982), 일본 취업 노동자 간첩 차풍길(1982), 납북어부 간첩 이상철·김춘삼·윤질규(1983), 조총련 간첩 조봉수(1984), 이준호·배병희 모자 간첩단(1985), 제주도 간첩 강희철(1986), 조총련 간첩 김양기(1986) 사건이 대법원의 재심 무죄판결을 받았다.

나의 한국현대사 1959-2020 | 유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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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개교 60주년을 맞은 서울대가 해방 이후 60년 동안 판매가 금지됐던 책 가운데 역사적 의미가 있는 스무 권을 발표한 적이 있다.
『전환시대의 논리』(리영희), 『신동엽전집』(신동엽),
『순이삼촌』(현기영),
『타는 목마름으로』(김지하),
『문제는 리얼리즘이다』(게오르그 루카치),
『빨치산의 딸』(정지아),
『사회주의 인간론』(에리히 프롬), 『무림파천황』(박영창),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황석영),
『한국전쟁의 기원』(브루스 커밍스), 『해방 전후사의 인식』(송건호 외) 등이었다.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는 광주민중항쟁 참가자들이 쓴 항쟁기록을 소설가 황석영이 손질해서 출판한 책이다. 1980년대 중반 ‘넘어넘어’라는 약칭으로 회자됐던, 광주민중항쟁의 진실을 널리 알린 최초의 공개 출판물이었다. 금서가 된 바람에 더 유명해진 무협소설 『무림파천황』이 불온서적 지목된 이유는 좀 우습다. 정파(正派)와 사파(邪派)의 대결을 변증법으로 설명한 딱 한 쪽 때문이었다. 그때 공안당국자들은 변증법과 마르크스주의를 같은 것으로 취급했다.

나의 한국현대사 1959-2020 | 유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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