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동굴에서 고려 말의 고승이었던 나옹 대사가 도를 닦았다고 한다. 나옹 대사는 「토굴가」의 저자로도 유명하다. "청산림 깊은골에 일개토굴 지어놓고 송문을 반개하고 석경에 배회하니………… 풍경도 좋거니와 물색이 더욱 좋다"는 내용의 「토굴가」는 유명하다.

그렇다면 왜 도를 통한 당대의 고승이자 스타 도인이었던 경허선사가 18세의 여자를 데리고 이 깊은 산중의 오지 절까지 왔는가? 이유는 전옥련이 경허의 조카딸이었기 때문이다. 조카딸? 경허의 여동생이 전봉준의 부인이었다.

근래에 전봉준과 경허의 관계를 밝혀낸 인물이 홍현지 박사이다.
수년 동안 미친 듯이 이 관계를 추적하여 밝혀냈고 결과물을 박사논문으로 정리했다. 나는 홍 박사로부터 둘 사이의 관계를 듣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경허의 고향은 전북 완주군 봉동읍 구암리이다. 이 동네에 거북바위라고 불리는 큰 바위가 있는데 그 바위의 정기를 받고 경허가 태어났다고 한다. 이 동네에서 전봉준의 아버지도같이 살았다. 경허의 아버지와 전봉준의 아버지는 친구 사이였다.
그래서 가족들도 어렸을 때부터 친하게 지낼 수밖에 없었다. 경허의여동생이 전봉준에게 시집을 갔다. 시집갈 때 신랑 측에 보내는 여러 가지 문서를 경허가 친필로 써주었다. 경허 아버지는 경허가 여덟 살 때 죽었기 때문에 여동생이 시집갈 때 오빠인 경허가 친정아버지 역할을 했던 것이다.

산은 절로 푸르고 물도 절로 푸른데맑은 바람 솔솔 불고 흰구름 두둥실 흘러가네하루 종일 반석에서 놀아본다내가 세상을 버렸으니 다시 무엇을 바라겠는가

山自青水自綠
清風拂白雲歸
盡日遊盤石上
我舍世更何希

평창 오대산 상원사
앉은 채로 육신을 벗은
한암 선사의 발자취를 따라

한암 선사는 입적할 때 사진 한 장을 남기고 가셨다. 백 마디의 법문보다 더 무게가느껴지는 사진을 남기고 가셨다. 선사의 좌탈입망의 생생한 장면을 찍은 사진이다.
앉은 채로 턱을 약간 뒤로 젖히고 허공을 응시하는 듯한 모습이다. 좌탈입망은 앉은채로 육신을 벗고 고요의 세계로 들어감을 뜻한다. 그야말로 고도의 경지이다. 이 사진은 6.25전쟁 때 종군기자로 활동하던 선우휘 씨가 우연히 상원사에 들렀다가 선사께서 홀로 입적해 계신 모습을 포착해 찍은 것이다. 이 한 장의 사진은, 수도의 세계가 관념이 아닌 실존의 세계라는 것을 여실하게 보여준다.

신라 불교의 전형적인 모델이 남아 있는 오대산배낭 하나 지갑 하나 달랑 들고 오대산으로 간다. 오대산은 집 떠난나그네의 외로움을 안아준다. 전나무 숲이다. 오대산에는 전나무가 많다.

나는 오대산에 와서야 비로소 전나무가 소나무 못지않은 품위와 아늑하고 고요한 향기를 품은 나무라는 것을 알았다. 모자 벗고, 셔츠의 앞 단추도 열고 전나무 숲을 천천히 걸어보라.

토착화란 무엇이냐? 한마디로 말한다면 부처님이 인도나 중국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에도 있다는 믿음이다. 우리나라가 바로 불국토라는 굳건한 신념이 바로 불교의 토착화이다. 인도, 중국의 불교가 아니라 한국의 불교가 된 것이다. 속되게 표현한다면 불교의 국산화에 성공했다는 말이기도 하다.

동쪽에 인자한 관음을 배치한 까닭은  동쪽이 인仁을 상징하는 목木의 방향이기  때문이고, 서쪽에 아미타불을 배치한 까닭은 서방정토가 서쪽에 있기 때문이고, 지장을 남쪽에 배치한 까닭은 지옥이 아래쪽에  있기 때문이고, 아라한을 북쪽에 배치한 까닭은 북쪽이 서늘하고 외진 곳이어서 수행하기 좋은 곳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문수를 오행의 중앙에 배치한 것은 가장 중시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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훗날 다카시는 그 순간을 곰곰이 돌이켜 보았다. 만약 비상구 쪽을 돌아보지 않고 방 안으로 들어갔으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자신의 운명이 완전히 바뀌었으리라. 그건 다름 아닌 자신의 생사가 갈리는 지점이었던 것이다.

다카시가 숨을 꿀꺽 삼키려는 찰나, 눈앞에서 십 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비상계단에 있던 중년 남성이 사라졌다.

저 아저씨, 뛰어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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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떠나 혼자가 된다는 건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매력이 있으니 어떻게든 예비교에 꼭 합격하고 싶었다. 오늘 시험을 잘 치른 것 같아 해방감을 느끼는 이유도 그런 사연이 있기 때문이다.

낮에도 하늘이 맑았지만 밤하늘도 구름 한 점 없어 별이 반짝이고 있다. 도쿄의 밤하늘도 그렇게까지 형편없진 않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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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 연암산 천장사
경허선사의 발자취를 따라,
번뇌를 버리고 깨달음을 구하다
경허선사만큼 한국 현대 불교에 큰 영향력을 끼친 인물이 또 있을까. 말 그대로 경허선사는 근대 한국 선불교의 어머니이다. 전국 많은 곳에 발자국을 남겼다. 연암산천장사에도 경허 선사의 체취가 남아 있다. 천장사 법당 앞에 서면 저 멀리 시골 풍경과 먼 산들이 눈 아래 들어온다. 경허는 이곳에서 무엇을 했을까. 그는 활을 쏘고있었다. 어떤 화살? 생각의 화살이다. 그래서 법당 앞을 지키는 문의 이름이 염궁문이다. 생각의 화살을 쏘는 문, 그 문에서 내가 던진 생각은 어디까지 날아갈 것이며또 무엇을 맞히겠는가.

한국 선불교의 어머니 경허 선사 이야기
주특기, 주특기가 있어야 산다고 한다. 이름하여 차별성이다. 그렇다면 한국 불교의 주특기는 무엇인가. 한국 불교를 알기 위해서는세계 불교의 흐름을 간단하게라도 알아야 한다. 내가 파악하기로 세계 불교는 3대 흐름이 있는 것 같다. 하나의 흐름은 티베트 불교이다. 티베트 불교는 ‘파워 불교‘이다.

또 하나의 흐름은 지성적 불교이다. 현대 서구의 불교학자들이 여기에 포진돼 있다.

나머지 하나의 흐름은 선불교이다. 선불교는 화두라는 장치를 통해 고정관념과 도그마를 분쇄하는 것이 특기이다. 한편으로는 지성적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신비적인 부분을 지니고 있는 것이 선불교이다. 세계적으로 선불교가 가장 활발한 곳은 한국이다. 중국은문화대혁명을 거치면서 선불교가 타격을 받았고, 일본은 염불이 주종을 이룬다는 점에서 한국과 다르다. 화두에 집중하는 선이 살아서꿈틀거리는 나라는 한국이다. 한국은 선불교의 본향이다. 

"내가 세상을 버렸거니 다시 무엇을 바라겠는가!我捨世更何希"

원효가 활동했던 신라 시대가 한국 불교의 새벽 [晩)이라면, 보조의 고려 시대는 태양이 중천에 높이 떴던 대낮에 해당하고, 서산의 조선시대는 해가 서쪽으로 기울어가는 저녁노을의 시대로, 근세에 들어와 월月자 이름이 많은 것은 깜깜한 밤에 접어들었음을 상징한다.

이 같은 특이한 시대 구분은 각성 스님으로부터 『능엄경』 강의를청강하면서 여담으로 들은 이야기인데, 유머러스하면서도 음미해볼만한 대목이다.

경허 문하에서 배출된 세 개의 달, 수월水月·혜월慧月만공滿空가운데, 달이 지닌  이미지에 가장 부합되는 인물을 꼽아본다면 아마도수월 스님이 아닌가 싶다.

진안 마이산 고금당
경허선사와녹두장군 전봉준의 애틋한 사연
구한말, 경허 선사는 18세 여자아이를 데리고 마이산 고금당으로 숨어들었다. 그녀의 이름은 전옥련, 바로 동학농민혁명을 이끈 녹두장군 전봉준의 친딸이다. 그런데이 전옥련은 경허의 조카딸이기도 했다. 경허의 여동생이 전봉준의 부인이었다. 여동생의 딸이었던 전옥련을 외숙이었던 경허가 목숨을 살리기 위해서 당시에 가장 오지이고 비밀스러운 장소였던 마이산으로 피신시킨 것이다. 어떻게 해서 경허가 동학군대장 전봉준과 인척이 된단 말인가? 굉장한 사건이자 이야기이다. 마이산의 고금당이 전해주는 이야기를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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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4월 읽은 책

1. 행성 1
2. 행성 2
3. 나의 한국현대사 1959-2020
4. 폭넓은생각을위한 역사속 말빨 사전101
5. 바바야가의 밤
6. 지속 불가능 대한민국
7. 교양으로 읽는 서유기
8. 교양으로 읽는 초한지
9. 교양으로 읽는 삼국지
10. 흔들리는 바위
11. 외사랑
12. 노란 달이 뜰꺼야
13. 하루살이-상
14. 하루살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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