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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다른 사람과 이야기할 때 직접적인 이야기 상대만을 의식하지 않는다. 부부끼리 이야기하면서 옆에 있는 아이에게도 들려주려는 경우도 있다(그래서 누가 들으면 곤란할 때는 목소리를 낮춘다). 혼잣말조차, 그 자리에 누군가가 있는 경우엔 무언가 리액션을 원하면서 입에 담을 때가 있다.

칭찬의 말이나 비판적인 말을 일부러 다른 사람과 이야기해서 목적하는 인물이 듣게 할 때도 있다. 본인에게 직접 말하기보다 그 편이 효과적인 경우가 많이 있기 때문이다.

하자키 신타로는 왼손잡이고, 바닥에 무릎을 꿇을 필요가 있는 작업을 할 때는 수건을 접어서 밑에 까는 습관이 있다는 사실도 간지 씨는 알았다.

무토 간지 씨는 사람을 죽인 남자의 눈을 본 적이 있었다. 살인자 옆에 있으면서, 그 남자가 자신의 죄에 짓눌려 고백하기 전까지 이틀 동안 바로 옆에서 보아 왔다.

그래서 알아챈 것이다. 그래서 의혹이 깊어졌다. 오히려 그 편이 먼저였을지도 모른다. 말하려야 말할 수 없는 감. 체험자만이 갖고 있는 안테나가 포착한 미세한 전파의 흐트러짐.

간지 씨는 말했다고 한다. "이런 건 귀신 들린 것 같은 거야. 어쩔 수 없는 거지." "본인도 어쩔 수 없어."

그것은 삼십오 년 전의 가야노 지로 이야기였겠지만 하자키 신타로의 심리도 기분 나쁠 정도로 정확하게 알아맞힌 것 아닐까.

"바로 조금 전까지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는데 정신이 들어 보면 나쁜 짓을 하고 있을 때가 있다고 했어요. 그런 거, 할아버지는 안다고."

―하지만 두 번 다시 하지 마라. 아무리 짜증이 나도, 해서 안 되는 일은 절대로 해서 안 돼. 너만 한 나이일 때 그런 걸 제대로 배워 둬야 하는 거란다.

"그렇지 않으면 터무니없는 것에 씌어서 터무니없는 일을 저지르게 된단다, 라고."

"간지 씨는 훌륭한 사람이었어" 하고 나는 말했다. "넌 할아버지를 자랑스럽게 생각해도 돼."

미키오는 말했다. "하지만 이제 없죠."
이렇게 깊은 상실감을, 이렇게 단적으로 표현하는 말을 나는 달리 모른다. 어린애라도 쓸 수 있는 이 말에 가슴이 아팠다.

"할아버지는 할아버지 한 분뿐이에요."

이 말은 착실하게 평생을 일해 온 서민에게 바치는, 최고의 묘비명일 것이다.

실로 일요일 오후쯤 되면 감자가 물통 가득 담겨 씻길 때처럼 북적거린다. 나는 사람들의 흐름을 흐트러뜨리며, 물통 속의 소용돌이를 거스르는 감자가 되었다.

‘사양장’이라는 이름은 다자이 오사무의 팬인 스바루 씨의 어머니가 정했다는 것,

"불타오른다는 건가요?" 스바루 씨가 진지한 얼굴로 말한다. "나는 ‘타오른다’(일본의 인터넷 용어로는 불상사나 논란거리가 될 만한 일이 일어나 비판 등을 받는 상황을 가리킨다)고 하면 인터넷상의 일밖에 모르지만."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에 보통의 부자라면 하지 않을 방식으로 인연을 끊었다. 보통의 부자라면 하지 않을 방식으로 인연을 끊었기 때문에 두려워하고 있다. 닭이 먼저일까, 달걀이 먼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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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ㅅㅏ는데 미치다.

난처한 미술이야기가 계속 나오는군
계속 사기 난처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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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작은 공장이었는데 이듬해 일어난 한국 전쟁 때문에 단숨에 커졌다더군요."

"어머니는 아버지와 헤어질 때 후계자니까 저를 소중히 키우겠다고 했어요. 하지만 그런 약속은 동생이 태어나자 벌써―,"

덩치 큰 아이자와 씨는 커다란 얼굴 앞에서 커다랗고 두툼한 손바닥을 팔랑팔랑 흔들었다.

"성인이 되고 나서는 그 집에 딱 한 번밖에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할아버지의 장례식 때였죠. 그때 할아버지가 내 주셨던 조리사 학교 학비를 정확하게 돌려 드렸습니다. 이게 제 부조라고요. 동생 밑으로 여동생도 셋 있는데 막내 여동생은 그때까지 태어난 줄도 몰랐습니다."

"집에서 거추장스러운 사람 취급을 받을 때 자주 생각했거든요. 아버지가 데리러 와 줬으면 좋겠다고. 새해 첫 참배 때, 올해야말로 아버지가 데리러 오게 해 달라고 빌기도 하고. 귀엽지요?"

"네. 슬프지만 흐뭇하네요."

"어쨌든 한번 본가에 돌아가 보셨는데 뿔뿔이 흩어진 후였대요. 밭은 다른 사람의 것이 되었고 누구의 소식도 알 수 없었다고요."

아버지는 저보다 더 외톨이였어요―.

서서 먹는, 제대로 된 이탈리아 음식을 제공하는 가게였다.

"그 점이 재미있다면서 리포터인 탤런트가 왔죠. 방송은 고작해야 삼 분 정도였지만 아버지가 그걸 보고 찾아와 주셨어요."

"옆 가게 사람이 가르쳐 주었지요. 설마 하면서 달려가 보니 아버지였습니다. 아니, 많이 닮은 부자라 다행이었어요. 삼십 년 만이라도 금방 알아봤으니까요. 거울 속의 나를 늙게 만들면 이렇게 되겠지 싶은 얼굴이었어요."

"아버지는 얌전한 사람이었지만 그래도 아내는 신경을 써야 하니 귀찮은 일도 있었을 겁니다. 아내는 잘해 주었어요. 정말로 감사하고 있습니다."

"아내 덕분에 저도 가정을 가질 수 있었어요. 가족이 있으면 즐겁다는 걸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도, 아주 조금이라도 좋으니까 그 행복을 맛보실 수 있었으면 했지요."

―내가 결혼 얘기를 거절하고 도망쳐 버렸으면 되었을 텐데. 하지만 내게도 아가씨와 결혼하면 장래에 이 공장의 사장이 될 수 있겠지, 하는 욕심이 있었어.

"망상일지도 모르지만 아버지가 발끈해서 해치고 말았다는 여성은 어쩌면 어머니를 닮지 않았을까 생각하면요, 아버지의 속마음이 짐작이 가는 만큼 슬프고 불쌍하고, 무섭습니다."

"조사를 맡겠습니다. 그렇다는 건 지금 이 순간부터 아이자와 씨의 걱정을 제가 대신 맡아 드리겠다는 뜻입니다."

"아내는 도와주겠다고 했지만 울지도 모르니까 혼자 있게 해 달라고 하고 나왔지요."

그 또한 흐뭇한 대화였을 것이다.

아이자와 씨를 203호실에 남겨두고 계단을 내려오다가 층계참에 서서 한 번 심호흡했다.

나 자신의 과거에도 ‘배신당한 남편’이자 ‘쫓겨난 사위’인 부분이 있다.

"그건 분명히 본인의 체험인가요?"
주사와 요양사는 힐끔 얼굴을 마주 보았다.
"대부분의 경우 그래요" 하고 미야마 요양사가 대답했다. "자신의 체험이 아닌 일을 자기 일로 생각해 버리는 경우도 있지만요."

나는 다시 컴퓨터 앞에서 팔꿈치를 대고 "묘하네" 하고 혼잣말을 했다.
―무엇이?
라고 되물어 주는 사람은 없다.
이혼하고 나서 만 이 년, 나는 이제 익숙해졌다. 무토 간지 씨는 몇 년 만에 익숙해졌을까. 정말로 혼자서 중얼거리는 혼잣말의 쓸쓸함에.

"할아버지가 그 양로원에 들어갈 때 수속에 필요해서 여러 가지 서류를 준비했어요."
"왜 복사를 해 둔 거지?"
"어떤 서류를 냈는지 나중에 분명히 알 수 있게요."

"넌 어떻게 아버지가 조사를 부탁하신 걸 아는 거니?"
"아빠는 스마트폰으로 얘기할 때 쓸데없이 목소리가 크니까요."

나는 기시감을 느꼈다. 몇 시간 전에 이 뒷모습과 매우 비슷한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하나카 양로원’의 하자키 청년. 한 사람은 주위 사람들로부터 숨으려고 하고, 또 한 사람은 주위 사람들을 무시하려고 하지만, 쓸쓸해 보이는 등은 똑같았다.

하지만 하자키 청년은 달랐다.

―무토 씨, 뭔가 저지르고 있었나요?

역시 그의 귀에는 간지·고지 부자의 대화가 들린 것이다. 이 ‘저지르고 있었다’는 ‘그때 이야기한 짓을 저지르고 있었다’가 축약된 것이 아닐까.

철칙이 하나. 파출소에는 들르지 말 것.
쓸데없는 말썽의 원인이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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