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그대, 이것은 모두 꿈에서 본 것, 꿈의 이야기.
― 그림 형제, ‘도둑 신랑’

해가 기울기 시작했다.

남자는 와이셔츠의 소매를 당겨 손목시계를 보았다. 그와 거의 동시에 등 뒤에 있는 작은 시계탑의 종이 울리기 시작했다. 이름만 정원인 초라한 정원수에 둘러싸여 있는 이 미터 정도 높이의 시계다.

"그래서 말이야. 이게 요령이야. 레벨7까지 가면……."

전혀 불쾌하지 않다. 인생은 즐겁다.

이제부터 하려는 것이 성공하면 훨씬 즐거워지리라. 청년은 그것을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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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 판매자 쪽에 책임이 있죠. 하지만 이 경우에는 쌍방이 마음이 맞아 슬쩍 넘어가 버렸을 겁니다. 제대로 된 부동산 개발업자라면 아무리 땅을 판 사람이 하지 않아도 대책을 강구했어야죠. 조례가 있으니까요."

"진실이란 게 대체 뭐지?" 흐느껴 우는 목소리로 겐다 이즈미가 되물었다. "진실이란 게 뭐야. 누구의 진실이 객관적 진실이 되는 거지? 누가 그걸 인정해 줄 수 있지?"

누가 그런 권리를 가지고 있는 거지, 하며 이제는 뚜렷하게 우는 목소리가 점점 더 격해졌다.

"훌륭한 사람이라고 합시다." 기타미 씨는 피곤해 보이는 얼굴에 미소를 지었다. "이렇게 복잡하고 번거로운 세상을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히는 일도 없이, 때로는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대하거나 함께 사는 사람을 기쁘게 하거나, 적어도 세상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며 제대로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훌륭하죠.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까?"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은 대부분 화가 나 있죠. 그들이 화를 내는 데는 정당한 이유가 있을 때도 있지만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니 ‘없다’고 하는 말은 어디까지나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이고, 본인은 나름대로 분명한 이유가 있겠지만요."

경찰이 할 수 있는 것은 범죄의 뒤처리뿐입니다, 라고 말했다.

하지만 하시타테의 집에 갈 때는 함께하지 않았던 골치 아픈 길동무를 돌아가는 길의 나는 코트 안에 숨기고 있었다. 의혹이라는 길동무. 뭔지 모를 직감이 싹틔운 불안을.

"뭔가가 들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경우도 있는 거야?"

"있겠지. 실제로 있었고."

아내는 편지를 살랑살랑 흔들어 보였다. 나라 가즈코의 백 안에 들어 있던 청산가리.

"너무 슬퍼서."

이 집이. 이 인생이.

"할머니가 불쌍해서 차마 볼 수가 없어서."

왜 이래야 하는 걸까. 왜 이런 생각을 해야만 하는 걸까.

왜 나는 조금 편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야만 하는 걸까. 조금은커녕 너무 편하게 사는 젊은 애들이 이 세상엔 넘칠 만큼 많은데, 아무것도 바라지 않아도 모든 게 이루어지는 사람들이 저렇게 많은데.

어째서 나 혼자만 그러지 못하는 걸까.

겐지야 ―하고 사장이 불렀다.

"걱정하지 마."

두 손을 입에 대고 큰 소리로 외치고 있다.

"걱정하지 말거라. 할머니는 잘 보살펴 드릴게, 잘 보살펴 드릴 테니까."

하시타테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그런 짓을 저질렀을 때 나는 옳은 일을 했다고 생각했었죠."

나는 너무 화가 났었으니까요.

하시타테는 말을 이었다. "이 세상 모든 것에 화가 나서 내겐 그럴 권리가 있다고 생각했죠. 전혀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누가 되건 상관없었죠. 누가 죽건 신경도 쓰지 않았어요. 나는 이렇게 괴로우니까. 남들도 나처럼 괴로워진다고 해도 상관없지 않느냐. 그게 무슨 문제냐.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잘못된 생각이었습니다."

하시타테는 지상에서 사라져 버리겠다는 듯이 무릎을 껴안고 몸을 더욱 웅크리고 있었다. 실제로 그는 바위처럼 보였다. 들판을 흐르는 강가에 있는 바위. 산비탈 나무뿌리에 휘감긴 바위. 아무것도 느끼지 않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그저 거기 있을 뿐인.

우리 집에, 오염은 없다. 집 안은 청결하다. 계속 청결할 거라고만 믿고 있었다. 그렇게 믿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하다. 사람이 사는 한, 거기에는 반드시 독이 스며든다. 왜냐하면 우리 인간들이 바로 독이기 때문에.

"너, 그 집안에서 쫓겨날지도 모르지?"

모르겠어요. 나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쫓겨나면 집으로 돌아오려고 생각하는 건 아닐 테지?"

"예." 내가 대답했다.

"어디에 있건 무서운 것이나 더러운 것을 만나지. 완전히 차단할 수는 없어."

산다는 게 그런 거야 ―라고 중얼거리며 한 손으로 벽을 쓰다듬었다.

"취미라도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좋지 않으냐, 라고 하더군요."

당신은 사건 뒤처리에 지쳤다고 했습니다. 이젠 지긋지긋했다고 했죠. 좀더 먼저, 뒤처리가 필요해지기 전에 뭔가 할 수 없을까를 생각했다고 했죠.

그건 말하자면 이 세상의 독을 정화시키는 작업입니다. 직장을 버리면서까지 이 세상의 해독제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좋을지, 당신은 생각했습니다. 모색하고, 시도했죠.

"인생에 부족함이 없거나, 또는 행복한 삶을 사는 탐정은 미스터리의 세계에는 무척 드문 것 같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습니다. 평범하고 이렇다 할 장점도 없지만 일상생활을 안정되어 있고 포근한 행복 속에 사는 탐정. 이 작품은 그런 인물이 주인공입니다. 그 결과 그가 추적하는 사건은 아주 사소한 것이 되었습니다. 그 사소함 속에 독자 여러분의 마음에 남는 것이 있다면 좋겠습니다."
_미야베 미유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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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이름은 아메드 이븐 파할란, 이븐 알라바스, 이븐 라시드 이븐 하마드
(안토니오 반데라스)
우리가 생각했던 모든 것과
생각하지 못한 모든 것
우리가 말했던 모든 것과
말하지 않았던 모든 것
우리가 행했던 모든 것과
행하지 않았던 모든 것을
신이시여, 부디 용서하소서!

불바이(블라디미르 쿨리치)
보라 나는 여기서 아버지,
나의 어머니 자매 형제를 만났노라
보라 죽은 조상들의 얼굴도 만났노라
그들이 나를 부르매
발할라 성당안으로 들어오라고 하노라
전사들의 영혼위 쉼
발할라 성당안으로,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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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인간이 있죠, 라고 기타미 씨가 말했다. 저도 그 가운데 한 사람이지만 말입니다, 라고 덧붙이며 재미있다는 듯이 웃었다.

정말이야, 하며 마스터는 나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런데 스기무라 씨는 사건과 인연이 있어."

"그런가?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스기무라 씨가 불러 모으는 거야, 사건을."

"스기무라 씨 말이 맞아."

"무슨 말씀이세요?"

"겐다 씨에겐 트러블이 생겨서 누군가가 그녀와 얽혀 있는 상태가 가장 이상적이라는 말."

딱딱한 글을 쓰는 저널리스트라 해도 그걸 생업으로 삼은 이상 일종의 인기인이나 마찬가지일 수밖에 없다. 그게 요즘 세상이다. 옳고 그름이나 진실과 거짓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얼마나 호감을 주는가, 얼마나 눈길을 끄는가, 얼마나 돋보이는 존재인가로 먼저 평가되고 만다. 그러다 보면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쓰고 싶은 글을 쓰며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예민해질 수밖에 없으리라.

하지만 인간이란 재미있는 동물이다. 예민한 상태 자체를 즐길 수도 있고, 한편으로는 처세를 위해 지금까지 하지 않았던 타협도 하게 된다. 적당히 예민하면 용서가 되기 때문이다. 쓰는 글이 허술해지는 프로세스는 요약하자면 이러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진짜 홍보부 직원이나 회장님 직속 비서실 사원들은 깔끔하게 보여야 해. 다만 지적인 분위기를 잃지 않으면서도 얄밉지 않아야 한다는 아주 중요한 기준이 있지."

나는 고양이나 관엽 식물인 척하기로 했다. 장인은 고양이나 관엽 식물에게 말을 걸고 있는 것이다. 대답 따위는 기대하지도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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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애가 물었다. 아버지 명함에 있는 ‘차장’이란 어떤 일을 하는 자리냐. 다음 장次長이라면 누구 다음이냐. 아버지는 높은 사람이냐 아니냐. 그런 질문에 제대로 답을 할 수 없었다. 실제로 차장이란 묘한 직책이다. 조직이 자신을 필요로 하는지 아닌지, 권한이 있는지 없는지, 아리송할 때가 많다. ‘차장’이란 어떤 자리일까. 과연 존재 의의는 있는가. 그룹 전체 회사에 있는 차장 여러분의 속마음을 듣고 싶다.〉

나는 즐겁게 기획을 추진했다. ‘차장’이란 직책은 엄연히 연공서열을 기초로 한 일본 특유의 샐러리맨 사회를 이루어 온, 질서의 등고선을 구성하는 한 가닥 선이다. 회사에 따라 그 선은 굵기도 하고, 때로는 자세히 들여다보아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가느다란 경우도 있다. ‘계장’이란 선과 구분이 가지 않는 경우도 있는가 하면, ‘주임’과 같은 색이거나 약간 위에 그어져 있는 경우도 있다. 그래도 역시 그 선은 ‘차장’이지 ‘계장’이나 ‘주임’이 아니라는 사실이 나는 재미있었다.

이름 없는 독 | 미야베 미유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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