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 핀 벚꽃
오늘 또한 옛날이
되어 버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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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 묵고 싼 💩 말쑥하다. 매꼼허다
감자묵고 똥을 싸보지 않아 잘 모르겠다.

나뭇짐을 아주 아담하고 예쁘게 잘 꾸리면 사람들은
 "하따, 그 나뭇짐 꼭 감자 묵고 똥 싼 것처럼 매꼼허구만잉" 했고 또 오랜만에 말쑥하게 양복을 입고 집을나서는 사람을 보고도 그 말을 했다. 하다못해 머리만 깨끗이 빗고나서도 사람들은 "감자 묵고 똥 싼 것 같다고 했다.
감자만 먹고 똥을 싸면 여간 매끈한 게 아니었다. 똥도 잘 나왔다.
그래서 산길에서 똥을 보면 감자 먹고 싼 똥인지 고구마를 먹고 싼똥인지 금방 알았다. 감자나 고구마가 그만큼 사람들의 주식을 대행하던 시절이었다.
- P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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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란....바람이란다.

"나랑 사니라고 애 많이 썼구만,
사는 일이 금방이네.
사는 것이 바람 같은 것이여.
사는 일이 풀잎에 이는 바람이구만."
- P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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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식민지와 한국전쟁, 새마을운동과 농촌 공동체의 붕괴, 사회적인 격랑 속에 다친 것은 늘 가난한 농민들이었다. 역사의 격랑에휩쓸려 떠내려가면서도 농토를 지키려 했고, 인간을, 사람을 생각했다. 
어머니에게서 가장 많이 듣는 "야야, 사람이 그러면 못쓴다"
"살다보면 벼라별 일들이 다 있다" "죽은 사람도 있다" "남의 일이아니다" "싸워야 큰다" 라는 말들은 우리 어머니의 역사다. 
오랜 세월 전해내려오면서 다듬어진 사람에 대한 외경감의 경구들이다. 마을 공동체 정신의 지침이었다.
혹독한 시집살이의 기억을 간직한 며느리들이 시어머니가 되었다. 그 아프고 쓰린 시집살이를 통해 며느리들은 자기가 시어머니가되면 며느리에게 잘해야겠다는 각오도 한 번쯤 했으련만, 그러나 시집살이는 아마도 영원할 것이다. 숙명이다.
- P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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