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식민지와 한국전쟁, 새마을운동과 농촌 공동체의 붕괴, 사회적인 격랑 속에 다친 것은 늘 가난한 농민들이었다. 역사의 격랑에휩쓸려 떠내려가면서도 농토를 지키려 했고, 인간을, 사람을 생각했다.
어머니에게서 가장 많이 듣는 "야야, 사람이 그러면 못쓴다"
"살다보면 벼라별 일들이 다 있다" "죽은 사람도 있다" "남의 일이아니다" "싸워야 큰다" 라는 말들은 우리 어머니의 역사다.
오랜 세월 전해내려오면서 다듬어진 사람에 대한 외경감의 경구들이다. 마을 공동체 정신의 지침이었다.
혹독한 시집살이의 기억을 간직한 며느리들이 시어머니가 되었다. 그 아프고 쓰린 시집살이를 통해 며느리들은 자기가 시어머니가되면 며느리에게 잘해야겠다는 각오도 한 번쯤 했으련만, 그러나 시집살이는 아마도 영원할 것이다. 숙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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