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쿠부 신스케, 너는 진짜 형편없는 인간이야.

시로무쿠
흰색 일본 전통 혼례복

우치카케
화려한 색상의 일본 여성 전통 혼례복

살인자는 하느님에게 기도 같은 건 하지 않는다.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그 순간이 오기를 기다릴 때 불쑥 비참한 기분을 느끼지도 않는다. 설사 대통령을 쏘기 위해 화장실에 숨어 있어야만 한다 해도.

아아, 하느님. 제발 제가 겁먹지 않게 해 주세요. 손이 떨리지 않게 해 주세요. 모든 일이 잘되도록 보살펴 주세요. 다시는 이런 기도를 드리는 일 없을 겁니다.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 기도예요. 그러니 제발.

"총에는 파워가 있단다."
멀리서 누군가 그렇게 속삭였다. 오빠의 목소리다.

"자신이 강해진 기분이 들지.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스포츠로서 사격을 해도 마찬가지야. 인간의 마음속에 잠들어 있는 오래된 투쟁심의 스위치를 총이 찰칵 올려 주는 거지."

친척들이 쓰는 테이블은 다섯 개. 세 개가 신부 측인 오구라 집안, 두 개가 신랑 측인 고쿠부 집안. 단 하나의 테이블 차이가 여러 사정을 상징적으로 드러냈다. 신부 가족 테이블 쪽이 더 중앙에 가까운 위치에 있다는 사실도 무언중에 두 집안의 역학관계를 드러내는 듯했다.

"네 오빠 장모 되실 분이 기모노 전문가잖아."

늘 그랬다. 오빠가 창피하지 않게, 오빠 마음이 편하게. 오빠가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해 주기 위해.

친척들이 신랑 신부 자리에서 멀리 떨어진 자리에 앉게 된 것은 이 축하연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껄끄러운 문제들을 극복해 와야만 했는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이 무의식중에 얼굴에 드러나기 때문에 구석 쪽으로 밀려나 버린 것이다.

"오빠 다음에는 노리코짱 차례네."

맞아. 노리코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때도 당신들이 지저분하게 참견하고 나설 텐가?

그 사람―오빠가, 그리고 고쿠부 집안이 진짜 고개를 숙여야 할 사람―정말로 큰 폐를 끼친 사람―.

비록 잠깐이기는 했지만 정말로 오빠의 아내였던 사람.

마쓰노우치
정초에 대문 앞에 소나무 장식을 세우는 1월 1일부터 7일까지의 기간

게이코는 착했다. 노리코가 불편하지 않도록 마음을 써 주고 있다는 걸 쉽게 알 수 있었다.

돈을 보내지 않아도 된다. 그렇게 이야기하는 건 좋다. 하지만 왜 그 이유를 설명하지 않았을까? 여자와 살고 있고, 그 여자의 도움으로 살고 있다는 사실이 창피했기 때문일까. 그렇다면 시험에 합격한 뒤에 제일 먼저 게이코를 집으로 데리고 와서 그녀에게 감사를 표해야 할 텐데…….

그런데 오빠는 그녀를 완전히 버렸다. 대기권을 빠져나간 로켓이 필요 없어진 연료 탱크를 떼어 버리듯이.

"내겐 결혼도 인생의 계단을 오르기 위한 단계의 한 칸이야. 의미 없는 결혼을 할 수는 없잖아."

이렇게 말하며 시치미를 떼던 오빠의 얼굴은 평생 잊을 수 없으리라.

역시 그렇군. 이 사람은 나하고 같은 핏줄이지만 애당초 양심이란 게 눈곱만큼도 없는 인간이다. 이런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세키누마 게이코는 그저 부잣집 딸에 불과했지만 그 여자는 다르다. 돈 이외에도 큰 부가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선택했다.

모든 것이 타산, 타산, 타산.

"난 다시 태어난 기분이야."

오빠는 그렇게 말했다. 맞다. 다시 태어나면서 인간이기를 포기한 것이다.

‘이미 애인이 있다면 포기할 거니? 그렇게 얌전하게 나가서는 안 돼. 쟁취하겠다는 정도의 각오가 없이는’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사람들이 다 표정으로 드러내는 건 아니야. 특히 심각하면 심각할수록 표정에는 잘 드러내지 않지’라는 말을.

오리구치 자신의 생각, 어두운 계획은 거기서부터 시작되었다. 미완성 퍼즐의 마지막 한 조각을 이때 손에 넣은 것이다.

세키누마 게이코는 엽총을 가지고 있다.

너무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좋지 않다. 정정하자. 이건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다. 개인적인 빚 청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고쿠부 신스케, 너는 진짜 형편없는 인간이야.

시로무쿠
흰색 일본 전통 혼례복

우치카케
화려한 색상의 일본 여성 전통 혼례복

살인자는 하느님에게 기도 같은 건 하지 않는다.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그 순간이 오기를 기다릴 때 불쑥 비참한 기분을 느끼지도 않는다. 설사 대통령을 쏘기 위해 화장실에 숨어 있어야만 한다 해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치카케
화려한 색상의 일본 여성 전통 혼례복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나는 스나크와─어두워진 후 매일 밤─
꿈같은 착란 상태에서 싸움을 합니다.
그 어렴풋한 곳에서 나는 채소를 먹이고
불을 피우는 데 스나크를 사용합니다.

하지만 만일 부점을 만나면, 그날,
단 한 순간에(라고 확신합니다),
나는 조용히 그리고 갑자기 사라져 버릴 겁니다─
이런 생각을 하면 견딜 수가 없습니다!

-루이스 캐럴
<스나크 사냥>, 여덟 장章으로 이루어진 사투

그날 저녁까지만 해도 지도는 아직 공백이었고, 예정된 유혈 사태는 단 하나뿐이었다. 거기서 죽어갈 사람의 이름도 정해져 있었다. 모든 것이 예정된 행동, 예정된 운명에 따를 뿐, 변경의 여지는 없을 듯했다.

후리소데
공식 석상에 입고 나가는 일본 전통 복장

조젯georgette
촘촘하게 꼰 명주실로 오글오글하게 짠 얇은 천

사냥이 취미인 고향의 오빠는 세 가지 조건을 내세웠다. 하나, 제대로 된 사격장의 회원으로 가입할 것. 둘, 차는 벤츠나 볼보로 바꿀 것. 셋, 그 차에 탄약을 종이 케이스째로 수납할 수 있는 완충재가 든 전용 박스를 달 것.

아까 주차장에서 느꼈던 화약 냄새. 그건 트렁크 안에서 났던 게 아니다.

게이코의 마음속에서 났던 것이다.

"마치 다시는 못 만날 사람처럼 말씀하시네요."

오리구치의 입가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그래?"

"그래요. 내일 밤에는 돌아오시는 거죠?"

"물론이지. 그럴 생각으로 돌아올 비행기 티켓도 예약해 두었는걸. 이벤트 준비를 시작해야 하잖아. 안 그래도 일손이 모자라는데 쉴 수야 없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