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또 먹겠어요. 더 못 먹겠어요"

 하고 겨우 거절을 하면 그 편은 내가 체면이나 하는 줄 알고 자꾸 권하니 그런 딱한 노릇이라곤 없었어요. 하는 수 없이 한 자리에서 열 개를 계속해 집어넣었더니 지금까지라도 슈크림이라면 머리가 흔들립니다.

 "무턱대고 먹으라고만 권하는 것은 야만적이에요."

"내야 체면으로 권했지만 당신의 위 주머니도 상당히 야만적이던데."

 하고 비꼬니 내가 체면 차려 억지로 먹은 줄은 모르는 심판입니다.

차와 나 - 금붕어의 일기
금붕어는 물만 마시고 사는 동물이다.
술 먹는 친구들은 나를 만날 때마다 금붕어 종족이라고 빈정댄다. 나 자신도 거기 대하여 아무런 이의가 없이 그냥 받아 치운다.

낙랑 다방기(樂浪茶房記)
운동 부족이 될까를 경계해서 학교에서 나가는 시간을 이용해 다방까지 걸어가고 다방에서 다시 집까지 걸어가는 이 코스를 작정하고도 날씨가 추워지기 시작하면서 부터는 여행(勵行)93)의 날이 차차 줄어져 간다.

집에서 학교까지 10분, 학교에서 다방까지 20분, 다방에서 집까지 30분가량의 거리 - 이만큼만 걸으면 하루의 운동으로 족하리라고 생각한 것이다.

다만 야키니쿠라는 이름이 초라하고 속되어서 늘 마음에 걸립니다. 적당한 명사로 고쳐서 보편화시키는 것이 이 고장 사람의 의무가 아닐까 합니다. 말이란 순수할수록 좋은 것이지 뒤섞고 범벅하고 옮겨 온 것은 상스럽고 혼란한 느낌을 줄 뿐입니다.

명천(明川) 태가(太哥)106)가 비로소 잡아 팔았대서 왈 명태(明太)요, 본명은 북어(北魚)요, 혹 입이 험한 사람은 원산(元山)107) 말뚝이라고도 칭한다.

 수구장신(瘦軀長身)108), 피골이 상접, 한 3년 벽곡(辟穀)109)이라도 하고 온 친구의 형용이다.

배를 타고 내장을 싹싹 긁어내어 싸리로 목줄띠를 꿰어 쇳소리가 나도록 바싹 말랐다. 눈을 모조리 빼었다. 천하에 이에서 더한 악형(惡刑)도 있을까. 모름지기 명태 신세는 되지 말 일이다.

산 사람이 먹고 산 사람 대접만 하는 것이 아니라 경(經) 읽는 경상에도 명태 세 마리는 반드시 오르고, 초상집에서 문간에다 차려놓는 사자 밥상에도 짚신 세 켤레와 더불어 세 마리의 명태가 반드시 오른다(그런 걸 보면 귀신도 조선 귀신은 명태를 좋아하는 모양이야!).

명태란 그러고 보니 요샛날 케이크 한 상자, 과실 한 꾸러미 이상으로 이용이 편리한 물건이었던가 보다.

망치로 두드려 죽죽 찢어서 고추장이나 간장에 찍어, 막걸리 안주로는 덮을 게 없는 것이 명태다.

끝으로 군소리 한마디.

 40년 전인지 50년 전인지 북미(北美)로 이민 간 조선 사람 두 사람이 하루는 어디선지 어떻게 하다가 명태 세 마리가 생겼더란다. 오래 그리던 고토(故土)114)의 미각인지라 항용 생각키에는 세 마리의 명태를 천하 없는 귀한 음식인 듯이 보는 그 당장 먹어 치웠으려니 하겠지만, 부(否)115)! 두 사람은 그를 놓고 앉아 보기만 하더라고.

겨우 젖이 떨어졌을까 말까 한 도야지 새끼를, 속만 그러내고 통으로 푹신 고아, 육개장 하듯이 피어서 국물에 먹는데, 이야기는 많이 들었어도 입을 대기는 비로소 처음이고, 처음이라 그런지 좀 애색했다.

하기야 연계(軟鷄)찜을 먹는 일을 생각하면 도야지 새끼를 통으로 삶아 먹는다고 별반 애색할 것은 없는 노릇이다.

더욱이 원숭이를 꽁꽁 묶어 불 달군 가마솥 위에 달아 매 놓고는 줄을 느꿔 발바닥을 지지고 지지고 한다 치면 요놈이 약이 있는 대로 죄다 머리로 오른다든지? 할 때에 청룡도(靑龍刀)로 목을 뎅겅 잘라 가지고는 골을 뽑아 지져 먹는다는 원뇌탕(猿腦湯)이란 것에 비한다면 애저찜쯤은 오히려 부처님의 요리라고 할 것이다.

사례를 받고 광고문을 억지로 쓰는 것이 아니므로, 먹은 포도주의 상표는 쓰지 않거니와 그 효과만은 보장을 하는 것이니, 누구 나처럼 수면에 힘이 들고 일로 하여 늘 피로한 이는 시험하기를 권한다.

다만 주객은 안될 말이요, 역시 나처럼 작은 잔 한 잔으로도 알콜 기운이 몸에 퍼지는 체질이어야 한다.

여름이 다 가고 가을 기운이 들도록 수박 맛을 보지 못한 나는 밖으로 나갔다. 불 같은 석양 고열(夕陽苦熱)에 비지땀투성이가 된 나의 마음은 그 청피홍심(靑皮紅心)128)을 상상하는 때 일종의 방향(芳香)129)이 어린 양미(凉味)130)를 느끼었던 것이다. 어른 어린애 할 것 없이 수박 구루마에 모여 섰다.

항아리 앞에 서서 들여다보던 나는 미구에 미각을 찌를 향긋하고도 달 양미(凉味)를 상상하고 은근히 침을 삼키던 아까의 내 그림자가 눈앞에 떠올라서 한바탕의 웃음을 마지않았다. 동시에 운명의 불가역도(不可逆睹)138)를 다시금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조선일보》, 1928년 9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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