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역사의 진보를 믿고, 그래서 낙관적이다. 어려서 역사에 흥미를 가진 것으로 치면 40여 년, 대학에 들어가 전공으로 삼은 때부터 쳐도 만 30년이 되었는데 이런 어지러움은 처음인 것 같다.
1강의 주제는 뉴라이트와 역사 교과서 문제였다.
3강에서는 촛불시위 기간에 죽은 것 같았다가 끈질기게 되살아나는 대운하와 뉴타운 광풍의 진원지라 할 부동산 투기 문제와 토건국가 대한민국의 역사를 짚어보았다.
4강에서는 민영화니 선진화니 하면서 신자유주의에 입각한 우리 사회의 재편 작업을 대한민국 국가 정체성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는 제헌헌법에 비추어 비판적으로 살펴보았다.
경찰 폭력 문제를 다룬 6강에서는 호랑이보다 무섭다던 일제강점기의 순사들, 그리고 친일 경찰의 뿌리를 그대로 이어받은 채 더더욱 군사화된 한국 경찰이 지닌 폭력성을 역사적으로 풀어보았다.
7강에서는 이제 신분 상승의 통로라는 기능을 접어버리고 기득권 세력이 기득권의 보호장벽으로 삼아버린 교육 문제를 살펴보았다.
8강은 전체 강좌를 마무리하는 측면에서 촛불의 역사성을 살펴보았다.
이 땅에서 진짜 술꾼이 되려거든 목숨을 걸고 술을 마셔야 한다. 이 땅에서 참된 연애를 하려거든 목숨을 걸고 연애를 해야 한다. 이 땅에서 좋은 선생이 되려거든 목숨을 걸고 교단에 서야 한다. 뭐든지 진짜가 되려거든 목숨을 걸고 목숨을 걸고…… 2009년 3월 한홍구
뉴라이트 등장의 전조 2003년 6월 21일 오후 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열린 ‘반핵반김 한미동맹 강화 6·25 국민대회’ 모습. 2003년은 보수세력의 ‘행동주의’가 절정에 이르렀고, 이듬해인 2004년부터는 ‘뉴라이트 운동’이 본격화되었다.
여기서 또 제국주의와 반자본주의 문제가 나오는데요. 레닌의 정의에 의하면 제국주의는 가장 고도로 발달한 자본주의입니다.
우리 독립운동은 반자본주의 성격이 굉장히 강해요. 원래 사회주의 성격이 강해서라기보다 제국주의 침략세력이란 본질적으로 자본주의 세력이었기 때문이죠. 그걸 반대하다 보니 아주 자연스럽게 반자본주의 정서가 강해졌습니다. 사회주의가 들어오기 이전부터 자본주의에 대한 반감이 컸다는 말이지요.
태평양 전쟁이 일어나면서 일제는 본격적인 총동원 체제에 들어갑니다. 세계 역사상 최악의 국가주의와 최악의 유사가족주의가 하나로 합쳐집니다. 천황폐하가 어버이가 되는 겁니다.
우리에게는 ‘개인주의’ 하면 이기적이고 집단을 생각할 줄 모른다는 부정적 인식이 깔려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개인주의가 굉장히 좋은 의미더라고요. 독립된 개인이 모여 사회를 만들고, 그 사회가 국가를 구성하기 때문에 한 개인이 출발점이 됩니다. 그 개인은 신과 직접 교통하는 아주 독립된 개체입니다.
만주군관학교 우등생 박정희 1942년 만주군관학교 졸업식에서 박정희가 우등상을 받고 있다. 6년 뒤 그는 좌익 혐의로 한국군에서 숙청될 위기에 몰렸으나, 그로부터 14년 만에 대한민국 대통령의 자리에 오른다.
박정희 개인으로 따지자면 감옥으로 보내야 할 만큼 친일 행적이 수두룩하지는 않겠지요. 문제는 박정희의 사고방식이 전형적인 일본식 교육과 훈련을 통해 형성되었다는 겁니다.
미국과 소련은 취한 정책이 달랐어요. 소련 슈티코프(T. E. Shtikov) 군정 사령관의 담화문이 어떤 내용이었습니까? 축하한다, 모든 것은 조선 인민에게 달렸다, 이제 조선 인민들이 새 나라를 맘껏 건설하라. 반면에 맥아더 사령관의 일반 명령은 한마디로 뭐였습니까? 까불지 마라, 일본법은 살아 있다, 그 법에 따라 법과 질서를 준수하라. 이랬거든요.
반민특위 법정에 끌려가는 친일파 반민특위의 친일파 청산 노력은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의 친일파 등용으로 무산되고 만다. 청산되지 않은 친일파의 역사는 반세기 만에 비슷한 역사를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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