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죽는 것이 대상大喪이고, 형제간에 싸우는 소리가 담장 밖으로 넘어가는 것이 대란大亂입니다. 지금 일거에 대상대란이 일어났는데 이를 틈타 보위에 올라서는 안 됩니다."
당시도 정략결혼이 일반화되어 있었다. 중이가 마침내 회영을 부인으로 맞아들였다. 여기서 ‘진진지의秦晉之誼’라는 성어가 나왔다. 두 나라 군주들이 대대로 혼인 관계를 맺어 우호를 다진 데서 나온 말이다. 그러다 후대에 혼인 및 혈맹의 관계를 맺은 국가 관계를 흔히 ‘진진지의’ 내지 ‘진진지호秦晉之好’로 표현하게 됐다.
중이는 그날로 강도에 입성에 곧바로 보위에 올라 진문공이 되었다. 당시 진문공은 이미 62세에 달해 있었다. 패업을 이루기에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상태였다.
"제환공은 바르면서 술수를 부리지 않았으나 진문공은 술수를 부리면서 바르지 않았다."
똑같은 패업인데도 제환공의 패업은 이른바 ‘정패正覇’, 진문공의 패업은 이른바 ‘휼패譎覇’로 나눈 것이다. 훗날 주희는 공자가 정패와 휼패를 나눈 배경과 관련해 이같이 풀이했다.
"제환공은 초나라를 칠 때 대의를 내세워 말하고 속임수를 쓰지 않았다. 그러나 진문공은 위나라를 쳐 초나라를 싸움으로 끌어들이고 음모로써 승리를 취했으니 그 속임이 매우 심했다. 두 사람의 다른 일도 이와 같은 것이 많다. 공자가 이를 언급함으로써 그 숨은 사실을 드러낸 것이다."
"안영은 사람과 더불어 사귀기를 잘하여 사람들이 오래도록 그를 공경했다."
칭송이기는 하나 극찬은 아니다. 안영은 자가 중仲이고, 시호는 평平이다. 시호와 자를 합친 ‘평중’을 이름 ‘영’ 대신 사용해 흔히 ‘안평중晏平仲’으로 불린다.
"우리는 진나라와 결맹했습니다. 신의를 잃으면 자립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제 난씨를 받아들여 장차 어디에 쓰려는 것입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