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릇 윗사람이 되어 백성들이 배불리 먹고 안전하게 살 수 있도록 지켜 주기만 하면 백성들도 그를 믿고 따르며, 부득이한 상황에 이르러서도 차라리 죽을지언정 윗사람 곁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이는 평소 윗사람이 그들의 안전과 식량을 충분히 제공해 주었기 때문이다. 공자가 「안연」에서 ‘거병’과 ‘거식’을 거론한 것은 실제로 군사와 식량을 버리게 하려는 의도가 아니다. 이는 어쩔 수 없는 위기 상황을 전제로 한 것이다. 어쩔 수 없는 위기 상황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백성들도 ‘거병’과 ‘거식’의 부득이한 상황을 감내하면서 윗사람을 불신하는 지경까지는 이르지 않게 된다. 그래서 마지막에 ‘민신’을 언급한 것이다. 그럼에도 어리석은 성리학자들은 이와 정반대로 ‘믿음이 무기나 식량보다 더 중요하다’고 지껄이고 있다. 이는 성인이 하신 말씀의 참뜻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소치이다."

이런 식의 논리를 외적이 쳐들어왔을 때와 같은 비상 상황에 적용하면 군민이 일치단결해 적과 싸울 생각은 하지 않은 채 매일 모여 적을 성토하는 짓이나 하는 것과 다름없다.

실제로 그런 일이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에서 빚어졌다. 김상헌을 비롯한 척화파들은 연일 ‘독 안의 쥐’ 신세가 되었는데도 산성에 들어오기 전보다 더 격한 어조로 매일 청나라 군사를 성토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주화파인 최명길이 쓴 항서를 마구 찢으며 울분을 토로한 게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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