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여신(餘燼)이 마치 미련 질긴 인간처럼 더얼 불러감이 있어 햇살에도 올올이 사늑거리는 매운 입맛이 죄다 가시질 못한 탓이겠다.
가두에서 가장 예민하게 봄을 표현하는 것은 역시 자연보다도 사람 사람의 옷이다. 그중에도 여인의 옷과 옷맵시다.
지금 내 앞으로 걸어오고 있는 저 젊은 여인의 저고리 고름이야 참으로 좋지 않으냐!
엷은 연둣빛 저고리가 이 봄빛에 차근히 잘 조화되기도 하지만 왼편 가슴께로 드리운 두 가닥의 저고리 고름은 어쩌면 저다지도 귀엽고 보드랍게 날리는고.
옛 시인은 종일 봄을 찾아 돌아다니다가 못 찾고 일모(日暮)51)에 집으로 돌아오니 빈처(貧妻)52)가 나물을 뜯어 저녁상에 올린 것을 보고서 봄이라 했다더니, 약삭빠른 가두의 봄을 현미경 검사를 하고 섰는 나를 꽃장수 일위(一位)53)가 있어 저으기 덜 무료하게 해준다.
"꽃 사시오 봄을 사시오 이 꽃이 지잖어 봄을 사시요 이 봄이 늦잖어 꽃을 사시요." 이렇게 좀 외어 준다면 살풍경스런 이 가두의 춘색이 저으기 윤기도 있고 또 당자도 흥이 나련만.
나는 봄을 대접하여 진달래 한 분 사서 들었다. 아쉬우나마 나는 손에 봄을 든 셈이다.
《조광》, 1938년 4월
봄을 보장한다 동지날 쑨 팥죽이 여태 식었을까 말까 한데(라는 내 엄살도 지독하지만) 편집자는 벌써 봄의 전주곡을 쓰라니 이건 좀 심한 것 같다.
"……추풍령으로 말하면 역사적으로나 지리적으로만 유명할 뿐이 아니라 기상적(氣象的)으로도 조선을 갖다가 남북 두 동강에 잘라놓는 경계선이란 말야. ……터널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이편짝 영동(永同)과 저편 짝 황간(黃潤)이 판연히 달라! ……서울서 정월을 갓 쇠고 나서 북악산 바람이 씽씽 불고 한강에서는 한참 제군이 스케이팅을 하는데, 처억 경부선을 잡아타고 내려가다가 영동을 지나 추풍령 터널을 쑥 빠져나간다 치면 차창에 얼었던 성에가 주울줄 녹아내리고 마을에서는 촌 노파가 무릇59)을 이고 팔러 다닌단 말야! 응? 벌써 봄이거든."
하니 만약 내가 저 아라비아의 마호메트61)와 같은 두두룩한 뱃심이 있었더라면 "산아! 일러루 오라!" 하고 부르듯이 "추풍령 저편 짝의 봄아 얼른 일러루 오라!" 또는 "제주도의 봄아 당장에 서울로 오라!"
생각하면 봄이 즐겁기보다는 눈앞에 닥친 추위가 무섭고 걱정스러 어느 겨를에 올 봄을 미리서 즐길 경황이 없기는 하다.
그러나 일변 추위가 무섭고 겨울이 아득할수록 봄을 기다리는 마음은 더 간절한 법이니 역시 기다리지 않는대서야 거짓말이겠지.
봄아! 어서 오너라? 내 너를 맞이하기 위하여 닷 말 어치의 술과 일곱 말 어치의 떡과 두 마리의 도야지와 한 마리의 소와 그리고 오색 과실을 마련해 놓고 손꼽아 너를 기다리노라.
그때에 가서 만약 봄이 오지 않게 되면 세 켤레의 버선 대신 세 대의 뺨을 맞아도 군소리를 않기로 장담과 다짐을 여기에 두어둔다.
《조광》, 1940년 2월
봄을 맞는다 "봄을 맞는다." 말로만 들어도 좋은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봄을 맞는지 봄이 사람을 맞는지 분간하기 어려운 일이다.
"봄은 단술과 같이 사람을 취하게 한다." 그렇다. 봄은 우리를 취케 한다. 그러나 그것은 술맛은 아니다. 우리의 뇌를 마비시키는 그런 것은 아니다.
우리는 봄을 맞자. 봄은 우리를 맞으라. 우리는 그대를 맞으려고 한다. ‘봄--’ 얼마나 좋은 소식이냐.
우리는 그를 그렸거니와 그도 우리를 그렸을 것이다. 젊은이가 젊은이를 그렸을 것이다. 그리던 그 봄이거니 그리던 그를 어찌 기쁨으로써 맞지 않으랴.
《학생》, 1929년 4월
입춘을 맞으며 소한이 지나고 대한도 지나갔다. 이제 이틀 밤만 자면 입춘이다. 대·소한을 앞에 두고는 태산 너머 아득하게 보이던 입춘도 이제는 내일모레다.
아침에 일어나니 책상머리의 잉크가 얼었다. 나는 몹시 추운 날이라는 것을 생각하면서도 그 추위에 대하는 마음은 긴장되지 않았다.
서리가 뿌옇게 지나간 앞집 초가지붕에 흐르는 맑은 별을 보라. 그 저편에 개인 하늘을 떠이고 얼크러진 앙상한 나뭇가지를 보라. 어디라 없이 봄뜻이 흐른다. 그것은 어떻다고 부족한 나의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봄뜻이다.
어디서 언제 날아왔는지 무너진 담머리에 지절거리는 두어 마리 참새 등에도 윤기가 흐른다. 눈에 비치는 모든 것은 - 그것을 보는 나의 마음까지도 앵두 빛 같은 어린애의 입술에 흘러드는 어머니의 젖에 젖은 것 같다.
천지는 이렇게 한 걸음 두 걸음 만물을 키우는 어머니의 품으로 옮기고 있다. 옮기는 소리는 없어도 옮기는 자취는 어제가 다르고 오늘이 다르다. 이렇게 날이 갈수록 확연히 달라질 것이다.
봄의 넋두리 옆집은 기생 초급(初級) 집이라 요즈음 와서 장구를 두드리고 목을 빼는 소리에 모처럼 안순한 시간을 얻어도 산란하여진다.
봄은 심란스럽다. 다만 우울과 권태다. 마치 술을 얼근하게 먹을 때처럼 불그데데한 절후(節候)71)다.
봄을 그리워하였으되 반가운 사람들 만난 때의 서먹거림과 푸대접하는 것처럼 대접이 성스러는 것은 비단 나뿐만이 아니라. 그렇다고 이 봄이 분에 넘치는 즐거움을 가져다주어도 나로서는 지는 꽃잎이 온 얼굴에 뿌려 주는 것처럼 영원한 애수(哀愁)가 떠나지 아니하리라.
1938년 4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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